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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전봉준 묘를 찾습니다' 정읍시 집착과 집념 사이



전북

    '녹두장군 전봉준 묘를 찾습니다' 정읍시 집착과 집념 사이

    장군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옹동면 비봉리 야산서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3차례 발굴조사
    무덤 양식이나 유전자 대조 결과, 모두 관련성 없어
    후손 및 전문가 의견 토대…추가 발굴 검토

    서울 종로구 전옥서 터에 자리한 전봉준 동상. 황진환 기자

     

    동학농민혁명군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이 묻힌 묘를 찾기 위한 전북 정읍시의 발굴조사가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읍시는 전봉준 장군이 자라고 동학농민혁명이 촉발된 고부봉기의 주무대다.

    2일 정읍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3차례에 걸쳐 진행한 전봉준 장군 추정묘 발굴 결과, 무덤 양식과 유전자 감식 결과 등으로 비춰볼 때 장군의 묘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정읍시는 전주문화유산연구원에 의뢰해 지난해 10월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일원에서 장군 추정묘를 처음 발굴했다.

    무덤 속 유해는 1700~1800년대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시신의 형태가 온전하고 손과 발이 가지런히 안장된 1차 매장 형태였다.

    전봉준 장군은 동학농민혁명 때 조선정부에 의해 한양 서소문 밖에서 교수형에 처해졌고, 이후 시신을 옮겨 매장했기 때문에 2차 매장 형태여야 한다.

    옹동면 비봉리 주민들 사이에서 전봉준 장군 무덤이라고 전해져 온 이 묘역 일대에서는 30여년 전 '將軍天安全公之墓'(장군천안전공지묘)라고 새겨진 1m 높이 작은 비석이 발견됐다.

    일부 학자는 전봉준 장군이 '천안 전씨'이며, '녹두장군'으로 불렸던 점과 주민들의 증언과 기록을 바탕으로 비봉리 야산을 전봉준이 묻힌 곳으로 주목했다.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의 한 야산에서 발견된 장군천안전공지묘.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1차 발굴에 이어 정읍시는 지난해 11월 말, 1차 발굴지 인근의 '장군천안전공지묘' 묘역을 발굴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현장 감식 결과, 무덤 속 유해는 사망 당시 40~50대 남성으로 교수형이나 다른 외상의 흔적이 없었다.

    1차 발굴 때와 마찬가지로 유해는 1차 매장 형태였다.

    추가로 전문기관을 통해 전봉준의 증손자로 알려진 전장수 씨와의 유전자 대조를 시도했지만, 유해 상태 등으로 인해 감식이 불가능하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어 올해 3월 2차 발굴지 인근에서 무연고 묘를 파냈지만 이 무덤 속 유해의 경우 DNA검사 결과, 전장수 씨 유전자 정보와 일치하지 않았다.

    또한 유해에 교수형 흔적이 없고, 묘 양식도 조선 중기에 유행한 회곽묘였다.

    회곽묘는 석회·세사·황토로 회곽을 만들고 그 안에 목관을 안치하는 전통적 유교 방식으로 임진왜란 직후 조선 사대부 장례 때 사용했다.

    정읍시는 3일 옹동면 비봉리의 전봉준 장군 추정묘 발굴 현장에서 전장수 씨, 송정수 전북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추가 발굴지를 찾아볼 계획이다.

    정읍시 관계자는 "장군의 후손으로 알려진 전장수 씨가 장군이 묻힌 곳에 대해 기억하는 것과 증언을 토대로 추가 발굴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봉준 장군은 1894년 12월 전북 순창에서 체포돼 한양으로 압송된 뒤 이듬해 교수형을 당했으나 그의 묘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확인된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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