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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도 플러스가 되고 싶어요"…'어린 채무자'들은 희망을 갖고 싶다



대전

    "제 인생도 플러스가 되고 싶어요"…'어린 채무자'들은 희망을 갖고 싶다

    [어린 채무자들-왜 그들은 빚을 지게 됐나⑥]
    사회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자립을 '해야만' 했던 이들의 이후는 결코 평탄하지 않다. 준비되지 않은 자립은 적지 않은 빚으로, 또 그 빚을 갚기 위한 불법행위와 범죄로 이어지곤 했다. 살얼음을 걷는 듯한 이들의 일상은 사회에서 부각되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와 맞물려 위험수위에 이르렀고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전CBS는 위기에 놓인 '어린 채무자'들의 현재부터 구조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내밀히 살펴보고 대책을 찾아보고자 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코로나 1년, 집이 사라졌다…쉼터에 머무는 청소년들
    ②20살 주아의 80만 원 빚은 어떻게 1000만 원이 됐나
    ③사회로 던져진 청소년들이 말했다 "빚이 있다"고
    ④"'그들'은 20살의 1월 1일과 생일을 노린다"
    ⑤'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내 인생을 누르는 빚의 무게
    ⑥"제 인생도 플러스가 되고 싶어요"…'어린 채무자'들은 희망을 갖고 싶다
    (끝)

    '어린 채무자'들은 사회로 떠밀려나온 뒤 빚으로 생존해왔다. 이런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고, 개인의 문제로만 만들어진 빚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질 수 있었다. 집에서 겪은 학대부터 아이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노동시장, 그리고 어렵게 홀로서려는 아이들을 노리는 사회의 문제들이 복합된 빚. 어린 채무자들의 실체였다.

    청소년공방 '만들래'. 김정남 기자

     

    "지잉~"

    날카로운 유리 끝이 부드럽게 갈렸다. 대전 중구에 위치한 청소년공방 '만들래'에서는 빈 병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기계를 이용해 나무를 깎고 구멍을 내고 있었다. 장난감의 하나인 '피젯 스피너'를 만들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보낸다고 했다.

    끝이 매끈해진 유리와 나무처럼, 세상으로 나가는 길도 이렇게 조금은 덜 거칠었으면 하는 이들이 모여 일을 하고 있었다.

    대전지역 청소년쉼터 등이 운영하는 '만들래'에서는 위기청소년들에게 직접 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참여한 청소년들에게는 수당이 지급된다. 코로나19로 최근에는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만든 제품들은 판매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만들래의 가장 큰 역할은 '할 수 없어'가 익숙해야 했던 아이들에게 '할 수 있어'의 경험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만들래 공방을 운영하는 대전남자단기청소년쉼터의 김균섭 소장은 "번번이 떨어지고 아예 무기력하게 생활하는 청소년들에게 마중물처럼 준비할 시간과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제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건강한 자기효능감을 경험하고, 점차 목소리가 커지고 표정이 밝아지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작업에 참여한 한 청소년은 "뭔가 만들어낸다는 게 하면 할수록 즐겁다"며 "경험도 쌓이다 보면 나도 나중에 이 기술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신기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변화가 시작되는 곳이지만, 운영에는 어려움이 있다. 공방 운영비용을 시설 자체적으로 충당하고 있는데다 공방이 있는 곳이 재개발 지역이라 언제 철거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안고 있다. 앞서도 공방을 한 차례 옮겨야했고 안정적인 공간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작업 중인 청소년(왼쪽)과 만들래 공방 청소년들이 만든 제품들(오른쪽). 김정남 기자

     

    여성인권티움이 위기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그냥공방' 역시 기대와 과제를 함께 안고 있다. 이곳을 찾은 아이들은 '생존비'를 받는다. 생존비를 통해 기본적인 생활에 숨통이 트인 아이들은 그제야 자신의 미래를 비롯한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작지 않다. 하지만 위기 상황의 아이들은 많고 각각이 가진 문제들도 복잡하다.

    김유미 전 여성인권티움 팀장은 "만나는 아이들이 한 가지 어려움만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청소년 지원 기관·단체들도 각각의 주된 역할과 지원 대상에 차이가 있다 보니 한 청소년을 근본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데 고민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팀장은 "현재로서는 이곳에 가서는 주거 문제를 호소하고,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또 다른 곳에 가야 하고... 여러 기관을 떠돌며 자신의 문제 상황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단순히 아이들을 돕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어린 채무자들의 문제에서도 통합적인 사례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 그리고 쉬운 접근은 많은 아이들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대전CBS가 만난 아이들은 빚을 지기 전에도, 빚을 진 후에도 어디를 찾아야 할지 모르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도와줄 곳이 있음에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가운데 기존에 있는, 활용 가능한 제도들이 아이들에게 닿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아이들은 빚 문제와 관련해 신용회복위원회나 법률구조공단과 같은 곳들을 스스로 찾고 알긴 어려웠다고 말했다. 미성년자라면, 홀로 생활함에도 보호자와 동행을 해야 이용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보육원 등을 퇴소한 보호종료아동에 대해 지자체별로 자립지원금과 주거 지원 등이 마련돼 있기도 하지만, 사실상 같은 상황에 놓인 많은 어린 채무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가개통, 불법 대출 및 사기와 관련해 민사 등 싸워나가는 과정을 개인의 힘으로 감당해야 한다든지, "결국은 네가 사인한 거잖아"라는 시선과 맞닥뜨려야 하는 것도 또 다른 장벽이다.

    대전지역 청소년 지원 단체들이 머리를 맞댄 '대전위기청소년지원네트워크'는 이 같은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청소년자립지원시설과 일자리지원센터의 마련 등을 제안하기도 한다. 많은 아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주거와 일자리 문제를 중심으로 안정적 여건을 제공하고 맞춤 상담과 의료·법률 지원, 관련 기관 연계 등도 도모한다.

    대전위기청소년지원네트워크의 이계석 대표는 "사회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부터 향후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배우고 익혀나가는 과정 없이 갑자기 거리로 방출된 아이들"이라며 "가정을 대신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자립지원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현재 일부 지역에는 여성가족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자립지원관이 있지만 대전에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사회로 나오기 직전까지, 실질적인 경제교육과 금융교육을 받을 기회도 사실상 없었다. 구정모 목원대 경영학과 교수는 "특히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경제적 자립과 관리능력을 키워주는 교육훈련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모 교수는 "청년층의 악성채무는 사회가 제공해야 할 학습과 성장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개인만의 문제로 볼 수 없다"며 "금융·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취약계층에 대해 이뤄지고 있는 지원을 이들 청년층에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고, 청년의 자립과 사회 진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고등교육의 실행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들을 배려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주는 것이 본질"이라고 구 교수는 말하기도 했다.

    한 번쯤은, 자신이 갖고 싶은 걸 사보고 싶다는 20살 준섭이. 돈을 모아 크든 작든 소박하게 뭔가를 이뤄보고 싶고 '내 인생도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가 되고 싶다'던 준섭이의 '플러스'는 비단 금전적인 부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20살 민우가 사회로 나와 배운 것은 "항상 의심하고 절대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22살 주현이는 인터뷰를 마친 뒤 '후련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빚을 지고 끙끙대던 주현이가 속내를 털어놓을 만한 곳이 그동안 없었다고 했다.

    이들이 믿을 수 있는 곳,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좋은 어른'들이 우리 사회에는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어린 채무자들이 말한, 저마다 바라는 것들을 아래에 싣는다. 얽혀있는 실타래와 같은 아이들의 문제였기에 답은 한 가지 방향만을 가리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실마리는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남긴 이야기
    옆에서 조언해줄 사람도 없고, 이러면 안 된다 해줄 사람도 없고... (23살 지환·가명)

    방법은 있는데 좀 더 찾기 쉽게 도움을 줬으면 하는 거죠. 저희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더 어린 아이들, 또는 대학생들에 대해서는 해당되는 게 있는데 저희는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20살 철민·가명)

    억울한 사람이 좀 없었으면 좋겠고, 당연하진 않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데 가면 이런 걸 상담 받고 도움 받을 수 있어요'라고 알려주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21살 하나·가명)

    주거 지원이나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고... 지금 보면 거의 빚 있는 사람들은 혼자 갚아나가야 되는데 조정도 안 되고 뭐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니까... 도움 받을 방법이 뭔가 있으면 그나마 괜찮지 않을까 하거든요. (21살 상아·가명)

    일단 이런 걸(불법 사금융) 하기 전에 어떤 지원이라든가 그런 게 있으면 그나마 이런 길로는 안 나가지 않을까 싶거든요. 가출청소년들이나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아직까지는 관심이 크게 없으니까. 그러니까 유도하는 사람들도 그런 부분을 이용해서 하는 게 아닐까 싶긴 하죠. (21살 성희·가명)

    저는 그냥 현실감 있게, 청소년들에게 현실감 있게 다가와 얘기해주는 게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면 이렇게 돼'라고 말해주는 게 더 필요할 것 같아요. (22살 주현·가명)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일단 시켜줬으면 좋겠어요. 기회만 줬으면... (21살 준섭·가명)

    최소 잘 곳과 생활비는 있어야 되니까... 금전적인 것, 주거적인 것이 가장 낫지 않을까 싶어요. (23살 상권·가명)

    생계자금이요. (20살 민준·가명)

    일단은 부모님의 사랑도... 그만큼 채울 수 있는 게 없잖아요. (21살 태진·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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