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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왜 뒤늦게"…즉각대처 어려운 '권력형 性범죄'



사회 일반

    위험한 "왜 뒤늦게"…즉각대처 어려운 '권력형 性범죄'

    '직장 내 성폭력'도 권력형 성범죄…일상 곳곳 스며들어
    권력형 성범죄, 가벼운 형태로 시작돼…"피해자, 즉각 항의 어려워"
    의전 당연한 구조, 상사가 직시해야…"기성세대 대상으로 한 교육 강화"
    왜 이제 와서?…"권력형 성폭력 끊어내려면 직(職) 걸어야"

    1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연루된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해 '왜 이제 와서 문제제기를 하느냐'는 식의 주장이 나오면서 2차 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권력형 성범죄가 보통 가벼운 형태로 시작해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이를 끊어야 할지 피해자가 판단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또 권력 관계 속에서 피해자가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의 권력형 성범죄가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사실 권력형 성범죄는 직장 안에서도 발생하는 등 일상화된 현상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일반 직장에서 일어난 상사의 성범죄도 권력형 성범죄에 속한다"며 "법률상으로 권력형 성범죄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위력은 직원이 1명인 작은 사업장에서의 고용주와 피고용주 간에서도 성립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권력형 성범죄는 우리 사회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9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현황'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직장 관계에 있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가 39.6%에 달해 성인이 겪은 성폭력 피해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권력형 성범죄, 가벼운 형태로 시작돼…"피해자, 즉각 항의 어려워"

    전문가들은 권력형 성범죄가 대부분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가벼운 형태로 시작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 부연구위원은 "권력형 성범죄가 진행되는 방식은 보통 가볍게 다가가서 관계를 형성하고, 점차 심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런 연속된 과정 속에서 피해자는 어느 시점에 거부의사를 밝혀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권력형 성범죄에서 주로 피해자들은 우회적으로 거부의사를 내비친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권력 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즉각 항의하거나 직접적으로 부당함을 표현하긴 힘들다는 게 김 부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성범죄의 정도가 점차 심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피해자와 연대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전 당연한 구조, 상사가 직시해야…"기성세대 대상으로 한 교육 강화"

    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변론해온 이은의 변호사는 "권력형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을 때 가해자의 입장에서도 '시그널(피해자의 거부의사)'을 알아채기 힘든 경우가 있다. 상하관계에서의 의전이나 커뮤니케이션 방식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가령 상사가 "OO씨, 향기가 좋네"라고 했을 때 부하직원은 기분이 좋지 않아도 "넥타이가 멋집니다"라고 칭찬을 되돌려주는 등 의전을 하는 방식으로 반응하게 된다. 상사의 문제 있는 언행이 계속되더라도 부하직원은 우회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상사는 부하직원의 반응을 오독하고, 점차 심각한 권력형 성범죄의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게 이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모든 의전이 본인을 향해 있는 구조 안에서 '부하직원이 내 기분을 맞추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상사 혼자 로맨스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며 "권력 관계에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강하게 의사표현을 하거나 즉각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 힘들다. 이런 이중고가 권력형 성범죄가 자라나는 바탕이 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세대와 사회 변화 속도의 괴리'도 문제로 꼽았다. 기성세대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언행이 20~30대 여성에게는 일상 속 권력형 성범죄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높은 직급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직장 내 성폭력 예방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박지희 TBS 아나운서는 지난 14일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4년 동안 대체 뭘 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세상에 나서게 된 건지도 너무 궁금하다"라고 말하며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SNS 캡처)

     

    ◇왜 이제 와서?…"권력형 성폭력 끊어내려면 직(職) 걸어야"

    미투 피해자에게 '왜 이제 와서 그러냐'고 따져 묻는 것도 가해자 중심적인 생각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피해자가 권력형 성폭력을 끊어내려면 직(職)을 걸어야 한다"며 "성추행이 아닌 성희롱 사건도 문제제기를 하는 분들의 다수는 일을 그만두고 신고한다. 특히 가해자가 조직 내 수장인 경우 문제제기는 더 힘들다. 가해자의 권력이 뻗치지 않는 곳으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공직사회나 직장 등에서) 징계에 관해선 웬만큼 규정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작동이 잘 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조직에 성폭력 피해를 알렸을 때 사실을 은폐하려 하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관행이 남아 있다. 이런 관행이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에게 '본인의 행위가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형성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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