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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피해호소인'이란 단어, 선택적 정의의 끝판왕



뒤끝작렬

    [뒤끝작렬]'피해호소인'이란 단어, 선택적 정의의 끝판왕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한 회사에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사장이 비서에게 4년간 성희롱을 했다는 의혹이 경찰에 신고된 것이다. 우리는 그 비서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고소인 또는 피해자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이 정치권에 왔더니, 의혹의 당사자가 여권의 유력 정치인으로 지목되자 생경한 단어가 나왔다. '피해호소인'. 피해를 호소한다는 사람인가? 피해를 당한 사람이 아닌? 들으면 들을 수록 얄팍한 꼼수의 말장난으로 들리는 건 혼자만의 느낌일까.

    단어의 힘은 놀랍다. 단어를 통해 이미 판단을 내리기도 하고 이미지를 갖기도 한다. 결국 그것은 '프레임'으로 연결된다. 어떤 현안에 대해 자신들만의 단어를 만들어 자꾸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더욱 그렇다. 단어 하나하나가 이미 그 사람의 사상과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어서다.

    청와대와 여당, 서울시까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얘기할 때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배경에는 피해자를 강조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의도가 읽힌다. 서울시장, 여권의 강력한 대권주자의 성추행 의혹인데다 벌써 세 번째 여당 지자체단체장의 성범죄 이슈다.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드러날 수록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으니 당장에 소나기를 피하는 심정으로 피하고 싶었을 테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더 나아가 피해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허윤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완전히 허위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분 말이 100% 진실이라고 하기도, 망자가 자기 변론을 못 한다는 점에서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말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생각은 해봤을까.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성범죄는 대체로 피해자의 진술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등에 따라 인정되었는데 그마저 다 무시하겠다는 건가 싶다.

    정체불명의 단어를 쓰다보니, 말장난이 아니냐는 비아냥섞인 자조마저 나오는 지경이다. 서울시는 해당 직원이 아직 시에 피해를 공식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라고 지칭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내부에 공식적으로 피해가 접수되고 조사 등이 진행되는 시점에는 피해자라는 용어를 쓴다는 것이다. 이같은 답변에 줄줄이 풍자 댓글이 달렸다. "그럼 가해자는 가해의혹자냐", "앞으로 어떤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재판 결과 나오기 전까지 피해호소인으로 하자는 거냐"

    성범죄에 대한 부담을 벗어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이를 위해 프레임을 지키려하면 할 수록 '선택적 정의' 또는 '내로남불'의 덫은 더 강하게 여권을 옭죌 것이라고 본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한 여권 아니었나. 그런데 자신들과 친한 사람이 성범죄에 연루되면 피해호소인이고 자신들과 관계 없는 자들이 저질렀으면 피해자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는 몇몇이 벌써 손가락에 꼽힌다. 성범죄에 대한 부담 뿐 아니라 이제껏 강조했던 여권의 진정성까지 외면받을 수 있다는 사안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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