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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걸린 증권 집단소송, 결과는 '허무'



법조

    9년 걸린 증권 집단소송, 결과는 '허무'

    대법, 주관사 명백한 실수에도…책임 제한
    도입 15년…제도 정착은 '아직'

    대법원 청사.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결과가 좋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대법원이 씨모텍 관련 증권 집단소송에 대해 '일부승소'를 확정한 지난달 27일, 소송 대표당사자 A씨는 변호인에게 착잡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2011년 소제기 후 무려 9년 만에 얻은 승소 판결이었다.

    그러나 승소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액 14억5000여만원은 당초 청구한 금액의 10% 수준에 불과했다. 집단소송의 기판력이 미치는 총원 4972명이 모두 금액을 청구했을 때 평균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약 29만원이다.

    ◇ 증권사 명백한 과실에도 책임은 10%…왜?

    이번 소송은 2010년 씨모텍 유상증자에 참여해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제기한 것이다. 당시 유상증자 대표주관회사였던 동부증권(현 DB금융투자)은 증권신고서에 씨모텍의 차입금 220억원이 자본금으로 전환됐다는 허위 사실을 기재했다. 이 사실을 믿고 증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이후 자본금 변동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씨모텍의 주가조작까지 차례로 드러나면서 큰 피해를 봤다.

    투자자들은 피해금액의 최소 70% 이상은 대표주관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증권 집단소송 절차 자체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본안 판단에서도 주관사가 투자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점이 쉽게 인정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1심 재판부는 주관사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범위를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했다. 당시 씨모텍 주가 하락이 동부증권의 증권신고서 거짓 기재 때문에 하락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씨모텍 사측의 횡령이나 배임 등 다양한 요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도 "증권신고서 거짓기재 외에도 손실이 발생할 때까지 씨모텍이나 주식시장의 전반적인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같은 판단을 내렸다.

    투자자 측을 대리한 송성현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대법원이 주관사의 책임을 들여다 본 사실상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책임을 극도로 제한한 판결이 나와 아쉬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어 "투자자와 회사 간 정보가 불평등한 자본시장에서는 공시제도나 외부감사, 상장·증자 시 주관사 선정 등으로 균형을 잡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때 패널티는 너무 약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 증권 집단소송 도입 15년…정착은 아직

    2011년 제기된 씨모텍 집단소송이 처음 소송 허가를 받은 것은 2013년 9월이었다. 이후 동부증권이 항고, 재항고하면서 2016년 11월에서야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소송허가를 확정했다. 본안 판단을 받기까지만 5년이 걸린 것이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증권시장의 투명성 제고와 분쟁의 일회적 해결을 통한 사법자원·사회적 비용 절감 등을 목적으로 2005년 도입됐다. 그러나 소송의 남용으로 기업 비용이 증가하거나 화해·손해배상 금액이 과도해질 것을 우려해 소송 허가 요건을 매우 제한적으로 설정하면서, '남용'이 아니라 사실상 '무용'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 증권관련 집단소송 공고에 따르면 2009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제기된 집단 소송은 15건 내외에 불과하다. 이중 소송허가 결정을 얻은 사건은 8건 안팎으로 절반 수준이다. 자본시장에서 연일 주가조작·횡령·배임 등으로 피해를 보는 투자자가 발생하는데도 증권 집단소송 제도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 셈이다.

    이에 학계는 물론이고 법원 내부에서도 사실상 '6심제'(소송허가 3심+본안 3심)로 운영되는 증권 집단소송의 비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상복 서강대 교수는 씨모텍 사건을 통해 증권 집단소송 절차를 들여다 본 2018년 논문에서 "법원이 소송허가 절차에서도 본안에 준해서 실질적으로 심사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신속한 재판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증권 집단소송의 모델이 된 미국의 경우에는 별도의 소송허가 제도를 두지 않고 1심에서 소송허가 여부와 본안 판단을 동시에 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2심이나 3심까지 소송이 계속 진행되기보다는 1심에서 양 당사자간 합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미국 아이폰 소비자들이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소송에서 애플은 1심에서 소비자와 합의를 통해 상호 적정한 배상금액을 확정하기도 했다.

    길게는 10년씩 걸리는 소송에 국내 로펌들도 증권 집단소송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다수가 참여하는 소송이기 때문에 소송 초기 비용은 로펌이 부담하고 승소 시 배상액의 일부를 환급받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패소할 경우 대표 당사자로 나선 소송인이나 로펌이 소송비용을 책임지는 식이어서 더욱 제도에 대한 관심과 이용률이 떨어진다.

    궁극적으로는 법 개정을 통해 증권 집단소송의 소송허가 절차를 간소화 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법 개정 전이라도 법원이 정책적 결단을 통해 소송허가 항고·재항고 판단은 일정 기한 내로 제한하는 등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송 변호사는 "소송허가 1심에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충실한 심리를 통해 양 당사자간 화해 가능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소송허가를 계속 구하게 된다면 가능한 빨리 본안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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