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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장‧차관들, 토론회 와서 기념촬영만 끝나면 다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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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끝작렬] "장‧차관들, 토론회 와서 기념촬영만 끝나면 다 가더라"

    靑 약속 대신 日수출규제 관련 토론회 자리 지킨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쏟아진 호평
    "업계 목소리 듣는 것 더 중요한 것 같아 양해구해…생생한 목소리 전할 것"

    김성수 과학기술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를 계기로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7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 과학기술계 3대 기관이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학계와 산업계를 누비며 반도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인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가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글로벌수준 육성 중장기 전략'을 주제로 주제 발표를 맡았고, 국내 유수의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소재‧부품‧장비 업체 대표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약 200석 규모로 준비된 토론회장은 400여명이 몰리며 인산인해를 이뤘고, 토론회는 예정된 시간을 넘긴 210분 동안 이어졌다. 토론회장의 맨 앞자리에서 업계와 학계의 목소리를 분주하게 받아 적는 백발의 양복 입은 신사가 있었다.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었다.

    김 본부장은 본격적인 토론회에 앞선 축사에서 "'왜 우리가 미처 잘하지 못했을까'라는 마음을 담아서 먼저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겠다"며 "오늘 토론회에서 고견을 듣고 돌아가서 핵심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R&D(연구개발) 정책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각종 토론회에서 봐왔던 특별하지 않은 축사였는데, 조금 특별한 장면은 그 다음에 나왔다.

    김 본부장은 쉬는 시간 10분을 포함해 210분간 진행된 토론회에서 수 분여 자리를 비웠을 뿐 3시간 넘게 진행되는 토론회 내내 쉼없이 펜을 움직였다. 박재근 교수의 주제발표를 포함해 소재 분야 업체 대표 3명, 부품 업체 대표 2명, 장비 분야 업체 대표 2명, 학계 전문가 2명, 법조계 전문가 1명 등 10명의 토론내용을 분주하게 메모하는 모습이었다.

    토론회 내내 정부에 대한 쓴 소리를 아끼지 않던 한 기업인은 토론회 말미에 1분간 주어진 정리발언 시간에 김 본부장을 거론하며 정부에 대한 희망을 드러냈다.

    그는 "반도체 경기가 좋지 않은 연초부터 국회에서 진행되는 토론회 등 토론회를 굉장히 많이 쫓아다녔다"며 "장차관이 참석하는 토론회도 많이 갔는데 그분들은 축사를 하고 기념촬영만 하고는 모두 가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차관급으로 알고 있는 김성수 본부장이 이 시간까지 남아있는 것을 보면 올해는 (정부가 내놓을 대책에 대해) 기대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토론회가 끝난 뒤에야 김 본부장이 토론회 중 자리를 잠시 비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김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김 본부장이 청와대에서 마련한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도) 안 가고 '꼭 한마디를 하겠다'고 해서 모신다"며 김 본부장을 세웠고 김 본부장은 "오늘 BH(청와대)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데 토론회 참석이 더 중요한 것 같아서 양해를 구했다. BH에 직접 오늘 나온 말씀을 전달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이어 최근 정부가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방안을 소개한 뒤 이에 대한 후속 대책의 일환으로 이번 달 범 부처 R&D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날 나온 의견들을 꼼꼼하게 담겠다고 말했다.

    이날 김 본부장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정부가 산업 정책을 발표하며 얼마나 산업계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일지 모른다. 정부 당국자가 최선을 다했다고 할지라도 업계는 "정부가 그 의견을 경청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밝힌 뒤 의견을 구했던 이홍배 동의대 무역학과 교수도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반드시 산업계의 의견을 여러 차례 수렴하고 정책이 실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이 교수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이던 2002년부터 한‧중‧일 등 동아시아 부품‧소재 산업의 상호 의존도 연구를 해온 학자다.

    김 본부장의 약속대로 이번 달 발표되는 범 부처 R&D 경쟁력 강화방안에는 산업계, 특히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긴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업계에 정부, 특히 고위 당국자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가서 기념촬영만 하고 간다는 인상만 남아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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