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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실패' 삼성바이오에피스 나스닥 못가니…모든게 틀어졌다



법조

    '작전 실패' 삼성바이오에피스 나스닥 못가니…모든게 틀어졌다

    검찰이 쥔 삼바 내부문서, 사실상 '범행일지'
    자본잠식 피하려 치밀한 시나리오…범죄 넘나들어

    나스닥에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를 상장시킬 수 있었더라면, 이 작전은 성공했을까.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의 회계사기 의혹은 통상적인 분식회계와는 다르다. 매출을 부풀리거나 자회사 손실을 감춘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는 단조롭게 느껴질 정도다.

    우선 범행의 동기부터 고차원적이다. 앞선 기사에서는 삼성바이오 회계사기 범행의 '동기'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작업이 지목되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삼성전자 지분 헐값 취득) → 유리한 합병을 위한 제일모직 고평가다. 제일모직 고평가를 위해 그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의 회사 가치가 19조원에 이른다고 '질러놓고' 이를 수습하기 위한 회계 조작이 진행된 것이다.

    삼성바이오는 이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고자 했을까. 2015년 8~11월까지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작성한 내부 문건을 토대로 회계 조작 진행 과정을 살펴보았다. 검찰은 이 문서를 사실상 '범행 일지'로 보고 있다.

    ◇아닌 밤중에 '자본잠식' 날벼락 맞은 삼성바이오…분주해진 셈법

    제일모직을 위해 갑자기 기업가치가 '뻥튀기'된 삼성바이오에 중대한 위기가 닥친다. 2015년 8월 31일 기준으로 안진회계법인이 실시한 공정가치평가에서 삼성바이오 가치가 6조9000억원으로 나온 것이다.(해당 보고서는 같은 해 10월 초 삼성에 전달) 이 자산규모라면 2015년 말 결산에서 삼성바이오는 자본잠식에 빠질 것이 확실했다.

    회사 값어치가 6조9000억원이나 되는데 왜 자본잠식 위기일까? 제일모직의 부풀려진 가치 대부분이 삼성바이오였듯이, 삼성바이오 가치 대부분은 에피스였기 때문이다. 안진회계법인은 에피스의 가치를 5조3000억원으로 봤다.

    특히 에피스는 2012년 미국 바이오젠사와 합작해 설립한 회사여서 바이오젠이 에피스 지분 41.2%에 대한 콜옵션도 가지고 있었다. 에피스 가치가 5조원이 넘는 만큼 바이오젠 콜옵션의 값어치도 커서 1조8000억원에 달했다. 6조9000억원짜리 삼성바이오에서 에피스와 부채를 빼면, 빈껍데기만 남게 된 셈이다.

    콜옵션은 과거 정해둔 가격으로 기업 지분을 인수하는 계약이다. 콜옵션이 행사되면 상대방에게 낮은 가격에 지분을 내주면서 사실상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기 때문에 회계장부에는 '부채'로 반영해야 한다.

    2015년 8~9월 문건을 보면 삼성바이오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간 회계장부에 반영하지 않았다. 9월 16일 문건을 보면, '해당 콜옵션의 만기가 확정적이지 않아서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회계법인과 자산평가법인의 의견서를 얻어 감사인을 설득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 자체만으로도 불법성이 짙다.)

    그러나 에피스의 가치가 5조3000억원이라는 공정가치 평가가 나오면서 산술적으로 콜옵션의 값어치가 자동으로 계산되는 상황이 됐다. (5.3조원 × 지분율 41.2% - 콜옵션 행사대금 0.4조원 = 1.8조원) 당연히 안진회계법인도 해당 콜옵션을 파생상품 '부채'로 계상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콜옵션 부채 반영으로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이 되면, 삼성물산 제일모직의 합병 정당성도 깨진다. 이에 2015년 11월 10일 작성된 '(삼성)바이오, 바이오젠사 콜옵션 평가 이슈' 문건에는 대응방안 1·2·3안이 등장한다.

    1안은 바이오젠사와 콜옵션 관련 조항을 수정해 옵션 가치를 확정한 후 부채가 아닌 자본항목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는 구체적 수정 내용상 바이오젠사가 동의해줄리 없어 일찌감치 탈락된다.

    3안은 에피스의 가치를 2조7000억원 수준으로 다시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에피스에 연결된 콜옵션 평가손실을 기존 1조8000억원에서 7000억원 수준으로 줄여 자본잠식을 피하려는 것이다. (비상장사이긴 하지만, 가치 산정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자체도 불법성이 짙다.)

    그러나 이 경우 '옛 삼성물산 주주의 이슈 제기'라는 문제에 부딪힌다'고 기술돼 있다. 에피스의 가치가 곧 삼성바이오의 가치, 제일모직의 가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상황이기 때문에, 에피스 가치를 낮추면 합병 비율이 부당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2015년 11월 10일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작성된 바이오젠 콜옵션 대응방안 문건 중 실제로 실행된 '2안'. 콜옵션 행사 조건으로 에피스 상장신청 등 '중요 이벤트'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음. 관계회사 전환 이후 삼성바이오의 평가이익도 계산함.

     


    결국 2안이 실제로 채택돼 실행됐다. 에피스를 연결 종속회사에서 지분법으로 평가하는 자회사(관계회사)로 변경하는 것이다. 관계회사가 되면 에피스의 지분가치는 삼성바이오의 '투자수익'이 된다. 콜옵션 부채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막대한 이득이 생기면서 자본잠식 상황을 탈피할 수 있는 것이다.

    단, 이 방안이 실행되려면 당연히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에피스를 변경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종속회사라고 볼 수 없는 '지배력을 상실하는 상황'이다. 삼성바이오 사례에서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해 에피스 지분을 절반 가져가는 일이다.

    회계적으로 특정 회사가 콜옵션을 행사할 만한 상황이라고 인정되려면 단순히 기업의 이익이 상승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에피스가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는 등 '객관적으로' 바이오젠이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해야 한다.

    삼성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회계법인에 여러 차례 물어 그러한 자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11월 10일 문건에도 "콜옵션 행사를 예상할 수 있는 에피스의 상장 신청 등 '중요 이벤트 필요'"라고 기재돼 있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데도 자의적으로 종속회사를 관계회사로 전환한다면 '회계사기'라는 것이 금융당국과 검찰의 입장이다.

    ◇에피스 절대 '못 잃어'…나스닥 실패하니 삼바 상장 '집중'

    결국 삼성바이오는 2안(에피스 관계회사로 변경)을 택했는데, 왜 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은 이뤄지지 않았을까? 여기서 회계사기 의혹의 포인트가 등장한다. 삼성은 어쩔 수 없이 작전 2안을 진행시키긴 했지만, 애초부터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넘길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일단 2안 실행을 위한 모양새가 필요했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에 콜옵션 행사를 직접 요청한다. 그러면서도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한 후 자신들이 지분 절반을 되사겠다는 제안을 덧붙인다.

    바이오젠 측에도 파격적인 제안으로 보이지만, 바이오젠이 원한 콜옵션 행사 조건은 미국 시장 판권의 절반을 받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건 불일치로 2015년 10월 말 바이오젠 측은 사실상 '콜옵션 행사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취지의 회신을 보낸다.

    나스닥 등 증권시장에 상장하려면, 일반 공모 투자자들이 갑작스러운 손해를 입지 않도록 대주주들의 콜옵션 행사 여부가 확정돼야 한다. 상장 추진 과정에서 바이오젠이 콜옵션 행사를 연기하겠다는 의사가 확정적으로 기입되면 '지배력 변동'은 일어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에피스를 상장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진, 아니 상장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배력 변동이 없으니) 관계회사로 전환하면 안된다는 것을 2015년 가을쯤 인지한 셈이지만, 삼성바이오는 회계기준 변경을 진행한다. 그리고 당해 11월 문건부터는 에피스가 아닌 삼성바이오의 상장과 관련한 언급이 등장한다. '자본잠식 시 기존 차입금 상환과 신규차입, 상장 불가'라는 식으로 삼성바이오의 상장으로 관심이 넘어가는 모습이다.

    에피스 상장으로 제일모직 값어치를 증명하려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삼성바이오 자체를 띄우는 계획이 등장한 셈이다. 삼성바이오의 주식은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특수관계인이 75% 이상을 가지고 있어 유통주식수가 적은 편이다. 상장 시 주가 상승이 매우 쉬운 구조였고, 실제로 2016년 11월 상장 후 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전년도의 '고평가' 논란을 잠재우는 역할을 했다.

    '우량기업을 해외에 빼앗긴다'는 비판을 받아온 한국거래소는 2015년 11월 이익과 매출이 없는 적자기업도 상장할 수 있는 요건을 신설했다. 당초 에피스를 나스닥이 아닌 국내 증시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지만, 혜택은 삼성바이오가 보게 됐다. 2019년 현재까지도 이 요건을 충족해 상장한 회사는 삼성바이오 한 곳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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