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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던 북한 청년들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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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해서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던 북한 청년들을 찍다

    [노컷 인터뷰]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김소영 감독 ①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인디스페이스 관객 라운지에서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김소영 감독을 만났다. (사진=시네마달 제공)

     

    "조국이 나를 버렸습니다. 조국에 다시 가지 못하게 되니까 울었죠."

    꿈 많은 청춘들이 처음 모스크바 유학길에 올랐을 때만 해도 다시는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1950년대 후반 김일성 1인 체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면서, 그들은 망명을 택했다. '북한'이라는 조국을 사랑했으나, 잘못된 체제까지는 끌어안을 수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다큐멘터리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이다.

    지난 2일 개봉한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은 2014년부터 시작된 김소영 감독의 '망명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다. 러시아 국립영화학교로 간 북한 청년 8명을 이르는 '8진'(정린구·허웅배·한대용·리경진·김종훈·리진황·최국인·양원식)의 이야기를 담았다.

    8명 중 당시 생존해 있던 최국인 감독과 김종훈 촬영감독, 故 한진(한대용)의 아내 지나이다 여사의 증언을 비롯해 다양한 사진, 일기, 서간, 영화, 희곡 등 풍성한 자료가 어우러졌다. 영화감독이자 오랜 시간 영화를 연구하고 강단에 서 온 영화학자로서의 집요함이 발휘된 결과다.

    지난 13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인디스페이스 관객 라운지에서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의 김소영 감독을 만났다. 촬영하려는 대상 다수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고, 끝내 마무리 지은 힘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했다.

    ◇ '망명 3부작'의 시작, 쉽지 않았지만…

    김 감독은 안산 땟골 마을에서 타슈켄트라는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한 고려인 김알렉스와 부인 허스베타 씨의 이야기를 담은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는 데려가는 곳'(2014), 강제 이주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노래와 춤으로 모두를 위로했던 두 디바 방 타마라와 이함덕 이야기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2017)로 고려인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8진을 다루기까지 길을 돌아온 것 아니냐고 묻자, 김 감독은 "꼭 그런 건 아니고, 사실 시작은 두 개였다. 하나는 안산의 이주노동자 중 고려인인 그들의 여행이 하나 있다. 최국인 감독 이야기는 한국영화사를 토대로 하는 저의 연구 작업 일부였다. 각각 따로 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건 사실 연구 프로젝트여서 자료화면으로 찍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찍을 수 있어서 너무 값진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 일제강점기 시기 영화를 연구하려고 했다. 그땐 한국영상자료원에도 관련 자료가 한 편도 없었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연구를 진행했던 경험은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을 만드는 데도 쓴 약이 됐다. 8진 중 2명뿐이긴 했으나 당사자가 살아 있었고, 영화 작업에 필요한 영화도 유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은 김소영 감독의 망명 3부작 마지막 편이다. (사진=822 필름, Akademie Der Künste Der Welt 제공)

     

    김 감독은 이미 상당 부분 사라진 일제강점기 제작 영화를 찾아 연구해 '근대의 원초경: 보이지 않는 영화를 보다'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그는 "(여기서) 트레이닝 경험이 있어서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을 만들 때는)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카이브'(데이터를 보관하는 일)의 중요성이 자주 무시돼 온 한국 사회는 과거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나아갔을까. 요즘 영화 아카이브 상황은 어떤지 물으니, 김 감독은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대만 타이베이 아카이브에서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를 발굴해 영상자료원에 귀환하는 데 기여한 적이 있다. 망실된 영화가 돌아오는 길목에 제가 있었던 것 같다. 김수용 감독님도 엄청 기뻐하셨다. 1960년대에 사람들에게 정말 사랑받은 영화인데도 (국내에) 없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 좋은 청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로망

    그렇다면 왜, 북한 청년들이었을까. 김 감독은 어떤 점에서 그들에 매혹되고 다큐멘터리까지 만들고자 했을까.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말 그대로 '청춘'이었기 때문이다.

    모니노 숲에서 뜻을 세우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이들을 보면서 '한국의 80년대'를 연상하기도 했다는 김 감독. 그는 "붉은 청춘들을 살려내고 싶었다. 처음부터 아카이브 영화이면서 청춘들의 이야기였다. 청춘들을 다시 세계와 마주치게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감독들의 로망 중 하나가 좋은 청춘 영화를 만드는 것이고, 본인도 그렇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을 통해 자칫하면 사장될 뻔했던 역사의 일부를 발견하고 스크린으로 옮겨냈다.

    "이분들은 북한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을 비판해요. 북한과 김일성을 동일시하려는 데(생각)에 거리를 두려는 모습에서 보이는 20대의 '사려 깊음'도 좋았어요. 항상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회의에 부쳐서 토론하고 결의한 것도 인상적이고요. 이런 과정도 그렇고 모니노 숲에서의 결의도 다 눈앞에 그려지더라고요. 그렇게 비주얼라이즈(visualize, 시각화)가 되면 영화가 되거든요. 저는 그래서 된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분들이 다 남성이라는 점은 쉽지 않았지만, 이게 다 청춘의 이야기잖아요. 사실 인터뷰를 하다가 최국인 감독님이 돌아가셨어요. 이분이 유일하게 남긴 건데, 제가 안 하면 정말 시간의 재가 되는 거니까…"

    다큐멘터리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에 나오는 8진 김종훈 촬영감독(위)과 최국인 감독(아래) (사진=822 필름, Akademie Der Künste Der Welt 제공)

     

    흥미로워서 깊이 파고들고 싶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김 감독은 '영화계 선배'이기도 한 이들을 다루면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김 감독은 "이분들의 말은 공중에 떠 있는 거다. 그걸 다큐멘터리 기록으로 남긴 건데, 제가 젊었을 때부터 영화를 했기 때문에 다큐로 만든 거다. (찍으면서 이들을) 선배이면서 거울 이미지 같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사회가 닫혀갈 때 영화를 배우고 만드는 건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분들의 삶을 그려가면서도, 이분들의 말을 너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고 또 (주관적으로) 상상하지도 않았다"면서 "그분들이 인민군 출신이라는 것보다는 끝까지 사회주의자였고 영화를 배우려고 했다는 것에 집중했다"고 부연했다.

    ◇ 최국인 감독의 유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조국을, 고향을 잃고 타지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 했던 8진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다들 의지도 충만하고 재간이 있는 청년들이었지만, 늘 마음에 남는 아쉬움이 있었다. 조국에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했다는.

    카자흐스탄에서 '용의 해'를 만들어 공훈 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최국인 감독은 정작 우리 민족을 위해서는 영화를 만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스스로 "비참한 운명"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김 감독은 "이분들은 한을 가졌고, 열망도 가졌다. 그 긴장감이 참 좋았다. 본인들의 결핍이 얘기할 때 딱 각인이 됐고. 이분들에게 (마땅한) 이름을 돌려주고 싶었다. 분단을 다룬 세계적인 작가이고, 감독이었다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다큐는 어떻게 보면 그분(최국인 감독)의 유언을 담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에 등장하는 8진 초상화 (사진=822 필름, Akademie Der Künste Der Welt 제공)

     

    "만약 더 시간이 있었으면 모니노 숲에서 사상 투쟁한 걸 아카펠라같이 뮤지컬로 하고 싶었다. 그걸 못한 게 많이 아쉽다"는 김 감독. 그러나 다큐멘터리의 '보는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한 방을 넣지는 않았다.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이 '김일성 비판'이 아니라, 김일성을 비판하며 망명했던 '사람들'에게 방점을 찍는다는 것을 뒤늦게 안 김종훈 촬영감독의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될지 안 될지 확신이 안 서는 상황에서 3년을 보내고 나서야 오해가 풀리고, 찍는 자와 찍히는 자가 통하게 된 순간이었다.

    김 감독은 "김종훈 감독이 진짜 너무 감동했다. (이런 순간을 잡는 건) 다큐멘터리 하는 사람들이 '승리'라고 하는 부분인데, 저는 사실 약간 저어하는 편이다. 너무 목적지향적이어서… 오히려 그런 한 방을 약화했다"고 밝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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