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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닌 '인간'… '나, 다니엘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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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닌 '인간'… '나, 다니엘 블레이크'

    [노컷 리뷰] 모두들 '원칙'대로 하는데도 불행이 빚어지는 아이러니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포스터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 주]

    '가난은 조금 불편한 것이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일견 맞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이 '긍정적인' 말에는 냉정한 현실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난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드러낼수록 초라해지기에, 되도록 숨기고 싶은 것이다.

    형편이 어려워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가 얼마나 못 사는지를 '증명'해 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도, 학교도 지원자의 사정을 헤아리는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 다만 분명하게 확인 가능한 수치들과 서류 뭉치로 수혜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만을 가려낼 뿐이다. 가난한 상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어떤 때는 혜택을 받고, 어떤 때는 받지 못한다. 이 모든 일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부합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지난달 8일 개봉한 세계적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신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도 국가가 제시하는 '기준'에 들지 못해 곤란을 겪는 다니엘(데이브 존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주치의가 혹시나 심장 발작이 일어날 지 모르니 좀 더 쉬면서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밝혔는데도, 그는 고용연금수당 자격심사 후 질병수당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아파서 일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충족시키기에 단 3점이 모자랐다는 이유로.

    고용청에서 내려온 '의료전문가'와의 단 한 차례 만남이 꾸준히 다니엘의 상태를 봐 온 주치의의 소견보다 앞서느냐는 질문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이후 일어나는 일들도 다 꼬이기만 한다. 그동안 컴퓨터를 다루지 못해도 잘 살아왔던 그는, 질병수당이 끊길 위기를 맞고 나서야 자신이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모든 것이 인터넷에 나와 있는 시대이기에, 별 수 없이 컴퓨터로 구직수당을 신청해야 했던 그는 수차례 실패를 겪는다. 다니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고용센터의 앤이 도움을 주자, 앤의 상사는 "잘못된 선례가 남는다고요"라며 오히려 앤을 꾸짖는다.

    우여곡절 끝에 구직수당을 신청했지만 이때도 다니엘은 '내가 열심히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증명해 보이지 못해 '부적격 대상'이 된다.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손으로 직접 쓴 이력서를 돌리고 다녀도, 사진 같은 증거물이 없고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해진 시간에 단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고용청에서의 상담 기회를 박탈당한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의 상황은 더 나쁘다. 낯선 뉴캐슬로 이주한 탓에 길을 헤맸다는 설명은 공무원들이 내세우는 '원칙' 앞에 무력해질 따름이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굶주림에 지쳐 통조림을 따 먹다가 수치심에 우는 케이티를 다니엘이 달래주는 모습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아이 둘을 키우는 싱글맘 케이티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고,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끼니도 거른 채 과일로 버티지만 오히려 비참한 상황만 자꾸 맞닥뜨리게 된다. 생필품을 나눠주는 센터에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통조림을 따 허겁지겁 먹는 장면은 압권이다. 밀려오는 수치심에 울음을 터뜨리고,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음에도 '죄송하다'고 고개숙이는 케이티의 모습은 처연하기 그지없다.

    다니엘과 케이티는 고용청에서 만난 인연으로 서로를 돕고 의지하면서 기운을 얻는다. 둘은 종종 이웃들로부터 선의를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유대는 끝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분명 세상은 '원칙'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사회에 폐를 끼치지도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선량한 시민들은 점점 불행해지는 아이러니.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곁을 돌아보면 정말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국가 시스템의 허점을 짚어내는 영화다.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다니엘은 '일자리 부족'이라는 문제엔 눈 감은 채 "눈에 띄십시오. 영악해지십시오. 여러분의 예리함과 성실함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이력서 전문강사의 조언도, '잣대'만 중시하며 사람들이 처한 각자의 곤란함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시스템'도 거부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쓰인 담벼락 낙서가 보인다.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조금만 비위를 맞추면 구직 수당을 받을 수 있지 않느냐는 앤의 물음에 그는 "나에게 돌아오는 건 수치심뿐이잖소"라며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라고 말한다. 대신, 질병 수당 거부 결정에 대해 항고하기로 한다. 고용청 담벼락에 쓴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 전화의 구린 대기음도 바꿔라"라는 낙서는 그의 '저항'의 표시다.

    하지만 다니엘은 항고 재판 당일 갑작스런 심장 발작으로 숨지고 만다. 케이티는 다니엘의 장례식에서 "(그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줬다"면서 "정부가 너무 빨리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한 후, 다니엘이 항고 재판 때 읽으려고 준비했던 편지를 읽는다. 단지 '한 사람의 시민'이고 싶었던 다니엘이 관객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번호 숫자도,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굽실대지 않고 이웃이 어려우면 기꺼이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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