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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욕' 한 번 했다고 전과자…'모욕죄' 남발에 제동



법조

    경찰에 '욕' 한 번 했다고 전과자…'모욕죄' 남발에 제동

    '모욕죄'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뒷문으로 들어온 거 아니야? 저 나쁜. 무식한 경찰이 어떻게 과장까지 됐을까. 어떻게 과장이 됐는지 불쌍하다"

    지난 2014년 4월 3일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규탄 시위가 벌어지던 서울 청계광장 앞.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경찰을 향해 무심결에 이 말을 뱉었다가 법정에까지 서게 됐다. 종로경찰서 과장 A씨가 박 대표를 모욕 혐의로 고소했던 것.

    박 대표는 "경찰이 영장 없이 농성장 압수수색을 시도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했던 말"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불특정 다수가 듣고 있어 '공연성'이 인정된다며 지난해 11월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모욕죄 처벌 근거인 형법 311조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경찰이 공무집행 과정에서 시민들을 모욕 혐의로 고소하는 이른바 '경찰 모욕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가 경찰의 모욕죄 남발 관행에 제동을 걸기로 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형법 311조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서를 오는 24일쯤 법원에 제출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신청인은 1심에서 경찰 모욕죄로 처벌 받은 진보연대 박 대표다. 박 대표의 항소심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이헌숙 부장판사)가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모욕죄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게 된다.

    공익법센터 운영위원 허진민 변호사는 "공권력 집행 과정에서 경찰관의 모욕죄 고소 사례가 늘고 있다"며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하려면 폭행이나 협박 행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처벌하기 쉬운 모욕죄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익법센터 이지은 간사는 "모욕죄는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 감정에 좌우되는 데다 공연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법원의 판단조차 엇갈린다"며 "문제는 경찰이 툭하면 취중에 욕설을 한 민원인을 마구잡이로 고소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근무 중인 지구대·파출소 경찰관을 모욕한 혐의로 붙잡힌 사람은 1038명(2013년), 1397명(2014년), 991명(2015년)으로 해마다 천 명 안팎을 기록했다.

    박 대표처럼 집회·시위 과정에서 경찰관 모욕 혐의로 기소된 사람까지 포함하면 전국의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모욕죄 건수는 연간 천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4년 대책 마련을 권고하면서 경찰관이 자신이 피해자인 모욕 사건을 직접 수사하거나, 동료 경찰관에 대한 목격자 진술을 하는 경우가 많아 경찰 모욕죄 사건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애매모호한 처벌 기준 때문에 법원 판결도 제각각이다. 지난 2013년 8월 6일 대리운전을 하다 중앙선을 침범한 B씨는 단속 경찰관에게 욕설을 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관이 할 일이 없냐, 음주단속이나 하지 왜 (중앙선 침범) 단속을 하냐. 개XX. X나게 열심히 하세요"라고 순간 화가 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가 경찰관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것이었다.

    1심은 "욕설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피해자인 경찰관과 동료 등 4명 뿐인데, 이들을 불특정 다수라 할 수 없고 경찰공무원인 점을 감안하면 공연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차량 안에 대리운전 손님과 일행이 타고 있었고, 순찰차 주변에 성명 불상의 주민들과 봉제공장 주민들이 있었다"며 "당시 주변이 비교적 조용했기 때문에 욕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밖에도 삼성 반도체 노동자 인권단체인 '반올림'의 활동가 이모 씨가 지난 2013년 서울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경찰을 향해 "삼성에서 돈 받았나보다"고 단 한 차례 말한 것 때문에 고소를 당했다가 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수도권의 한 판사는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 범죄를 처벌해야 하는데, 공연성이라는 처벌 기준 자체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면서 "단순히 욕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서나 지구대에서 만취한 채 욕설을 퍼붓는 주취자를 제어하려면 모욕죄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경찰 측 반론도 있는 만큼 모욕죄의 위헌성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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