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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음식은 특별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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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중음식은 특별한 게 아니다"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

    한복려

     

    새벽빛이 어슴푸레하게 물드는 아침이면 어머니는 가족 중 제일 먼저 일어나, 밥을 지으셨습니다.

    달그락 달그락 그릇 부딪치는 소리, 타닥타닥 도마 위 칼질 소리에 잠 깨어 부엌에 나가보면 구수한 밥 냄새와 달콤한 찌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습니다.

    요리 잘하는 어머니가 자랑스러웠습니다. 밥상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가족과 대화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니는 조선시대 마지막 수라간 상궁에게 궁중음식 조리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국가중요무형문화재 38호로 지정되셨죠.

    그 어머니 밑에서 자연스레 우리 음식과 친하게 지낸 한복려 씨……. 그녀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궁중음식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음식에 혼을 담아내는 사람, 천천히 정성스레 요리하는 사람, 먹는 이의 건강과 행복까지 염원한다는 사람, 궁중음식 연구원의 한복려 원장을 6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계절과 함께 순환하는 우리 몸엔 제철 음식이 최고

    ▶ 작년 12월에 어머님(황혜성 여사)이 별세하셨는데 아직도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떨 때 가장 어머님 생각이 나시는지요?

    저희 형제끼리 만나도 한구석에 기둥이 없으니까 만나도 즐거움이 없고 뭔가 빠진 것 같아요. 열심히 뭘 하려고 해도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없다는 것이 많이 허전하지요. 오래 투병하셨는데 존재한다는 것과 안 계시는 것과는 정말 다른 것 같아요.

    ▶ 음식을 만드실 때 더 특별하실 것 같아요.

    계실 때도 궁금했는데 실제로 어머님이 한 상궁님에게 음식 배울 때 어떻게 받으셨는지 이야기를 꼭 해주셔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요즘 밖에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를 그렇다고 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어머님이 한 말씀만 해주시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있어요. 저는 한 다리 건너라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제가 말하는 것은 다르거든요.

    ▶ 지금이 초여름인데 요맘때 궁중에서는 어떤 음식들이 올라가나요?

    6월 19일이 더위의 중심이 시작되는 단오더라고요. 그때가 되면 임금님이 내의원에 하사를 해서 원로 대신들에게 여름을 잘 날 수 있는 음료인 제오탕을 부탁해요. 제오탕은 요즘 흔하게 먹는 매실 음료인데 열을 식혀주는 약재들을 꿀과 함께 고아서 얼음과 함께 귀한 분들만 드실 수 있었죠.또, 단오선(端午扇)이라고 해서 부채와 선물이 내려지고, 여름에는 기력이 떨어지니까 소의 위인 양을 중탕해서 즙을 짜서 마신다든지 국을 끓여서 먹는다든지 이열치열의 보양식을 드셨어요.

    단백질식품인 육개장, 구장국도 먹었다고 하고, 죽도 여름철 탈이 났을 때 먹었다고 해요. 차갑게 먹는 것으로는 임자수탕이라고 깻국인데 일반 서민은 콩국을 먹는데 궁중에서는 깨를 갈아서 닭 국물과 섞어서 먹었어요. 그밖에 증편, 장미화전, 앵두화채, 수리취떡을 먹거나 그렇습니다.

    ▶ 말씀을 들으니까 요즘처럼 칼로리를 따지고 그렇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건강을 생각해서 계절마다 만들어 먹는 음식이 다 따로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음식도 그렇고 특히, 궁중음식도 그렇고 얼마만큼 계절 음식을 잘 활용해서 먹느냐가 약이었던 거죠. 몸은 계절과 함께 순환하기 때문에 건강하려면 그것에 맞춰서 먹는 수밖에는 없어요.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새롭게 해석된 한국의 궁중음식

    ▶ 드라마 ''''대장금'''' 열풍으로 궁중음식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증폭되고 일본과 중국에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거기에는 한 원장님이 굉장히 큰 역할을 하셨잖아요. 그때 연기자들이 직접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는지 궁금했어요.[BestNocut_R]

    드라마에서는 음식을 하는 것도 연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연기자가 2주 전부터 와서 배웠어요. 연기에는 대본만이 아닌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나 맛, 칼질도 누구를 위해 어떻게 만들 것이며 먹는 사람이 어떻게 먹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가면서 해야 하잖아요. 손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손의 모습에 얼굴이 표현되기 때문이죠. 탤런트 이영애 씨는 본인이 칼질을 굉장히 해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런데 옛날 무쇠 칼을 제작해서 쓰다 보니 무겁고 무뎌서 손을 베었어요. 몇 바늘 꿰맸는데 그 뒤로는 절대 칼질 못하게 하고 대역을 쓰게 했지요. (웃음)

    ▶ 화면에 나오는 손은 전부 원장님의 손이었나요?

    대본이 워낙 급박하게 나와서 저는 대본부터 봐야 해요. 이 음식이 맞는지의 여부와 어떤 음식을 나가게 할 것인지 그런 것을 지시하면서 이틀 사이에 다 만들어야 하거든요. 서너 명의 연구원들이 촬영장 근처에 상주를 하면서 일했고 선임연구원이 대역을 했지요.

    ▶ 드라마 촬영하시면서 원장님 보시기에 왜곡된 부분들도 있었나요?

    음식이 역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드라마는 재미있고 보기 좋아야 하잖아요. 400~500년 전 음식을 재현해 놓는데 식감과 재료들을 현대인들이 보기에 화려하고 먹기 좋은 궁중음식의 이미지로 표현하려면 그 당시에는 쓰이지 않았던 식재료가 필요하기도 해요. 식감이 잘 보이게 가공을 하고,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되지요. 사실은 드라마는 드라마이고 진실은 이런 것이라는 내용의 글들을 게시판에 올렸었어요. 또, 작가는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음식의 내용은 말을 할 수가 없잖아요. 거기에 넣어줘야 하는 부분들이 있지요.

    ▶ 대장금 드라마 촬영 중에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아요.

    대부분이 흥미 위주라 경쟁 위주의 음식이 많이 나갔지요. 전혀 궁중음식에 없었지만 작가가 임금님에게 고래 고기를 자꾸 올리는 신이 있었어요. 완성된 것도 준비해야 하고 과정별로 준비해야 하는데 고래 고기 색감이 소고기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해서 하기도 했고, 만두를 가지고 경쟁을 했었는데 작가는 요새 찐 호박이 옛날에는 주렁주렁 달렸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옛날에 노란 호박은 없었거든요. 결국 서민이니까 박으로 하자고 했는데 박은 칼질이 힘들죠. 그래서 박을 하나 구해서 놓고 수박으로 중간과정을 보여주는 대목도 있었어요. 그때그때 맞춰서 즉흥적으로 돼야 하더라고요.

    ▶ 드라마 이후에 일본이나 중국에도 많이 다녀오셨죠?

    관광공사라든가 특히 일본의 신문사나 학계 쪽에서도 한국 음식의 건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일들이 생겨서 많이 갔다 왔어요.현재는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식당을 하는 사람들 쪽으로 많이 흘러가더라고요. 한국의 궁중 음식문화와 함께 음식이 전해지면 좋은데 드라마에 나왔다는 식으로 상품으로 많이 전달이 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한국의 음식문화가 세계에 전달이 되겠어요? 이제껏 음식이 집중적으로 조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요.

    궁중음식 무형문화재 38호로부터 시작된 궁중음식 연구원

    ▶ 궁중음식연구원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1971년 조선왕조의 마지막 상궁이었던 한희순이라는 상궁이 계셨어요. 황혜성 선생님의 스승님이시죠. 어머님이 조선왕조 궁중음식 무형문화재 38호로 지정이 되면서 전수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해서 본원이 개원을 했어요. 전수자를 배출하고 그 과정이 끝나면 이수를 하는데 저는 전수자로 지정이 되어서 그 과정을 밟은 것이죠. 10년을 하다가 이수가 되어서 이 일을 계속 하게 되었어요.

    ▶ 지금도 많이 배우러들 오시나요?

    국가지정도 있지만 일반전수라고 해서 배우고 싶은 분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단위별로 나누어서 배울 수 있는 과정도 만들었어요. 자기가 필요한 부분은 더 집중적으로 배울 수가 있지요.

    ▶ 중국에는 옛날 황제들의 음식을 사흘에 거쳐 체험해보는 음식점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도 임금님 수라상을 제대로 차려주는 음식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거든요.

    양면성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을 해요. 정말 한국의 궁중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제대로 된 궁궐의 재현을 통해 왕이나 왕비가 되어 궁중음식을 먹으면서 체험해 보는 공간도 필요할 것이고, 관광객들이 쉽게 오셔서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궁중음식도 있어야 하거든요. 그에 앞서 이탈리아나 타이는 국가정책으로 식문화 정착을 위한 학교를 설립해 놓고 공부하고 전파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 우리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 저희 한군데밖에 없어요. 궁중음식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그런 왕실학교 같은 것이 제도적으로 있었으면 좋겠는데 연구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 임금님들은 진짜로 맛있는 음식은 많이 못 드실 것 같아요. 밑에서 다 맛보고 드리잖아요. (웃음)

    궁중음식이라고 하면 일상적으로 아침, 점심, 저녁에 먹는 음식이 있고 손님을 접대하는 잔치 음식으로 볼 수가 있는데 그 많은 음식을 다 먹어볼 수는 없고 몇 가지만 맛을 봐서 탈이 없으면 드시도록 했어요. 기미(氣味)한다고 하는데 임금님 음식을 먼저 맛본다는 것이 그런 차원은 아니기 때문에... (웃음)우선 어떤 재료를 쓰느냐가 중요한데 임금님이 계신 곳은 어떤 특정한 곳이 아니고 전국의 모든 물자가 한 곳으로 집중이 되잖아요. 나라의 최고 특산물들이 올라오는데 지역적인 수송의 문제도 있고 해서 생것보다는 말리거나 저장 음식 종류가 많아요. 신선한 것을 가공해서 올리죠. 13세부터 조리를 위해 들어온 궁녀들이 단련을 하고, 정 5품의 벼슬인 상궁을 하기 위해서는 오죽 기술이 좋았겠어요. 대부분 궁중음식은 보통 사람들이 못 먹는 음식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현대인들이 지금 다 먹고 있거든요.

    고종의 밤참과 순종의 수프, 임금님의 식성도 각양각색

    ▶ 임금님도 식성이 다 달라서 조리 방법도 다 다를 것 같아요.

    오랫동안 상궁들과 식사를 하시면서 알게 되고 그랬다고 하는데 저희가 알고 있기로는 조선왕조의 고종, 순종 정도의 식성이죠. 고종은 먹는 것과 이야기를 즐기셨다고 해요. 망국의 한 때문에 불면증이 있어서 새벽에나 잠이 들기 때문에 밤참으로 배를 많이 넣은 동치미 국수라든가 시원한 식혜를 많이 드셨다고 하고 식사를 하시다가 이 음식이 누가 만든 솜씨인지 알 정도였다고 해요.

    순종은 워낙 허약하고 위가 약해서 그때 당시 서양요리가 막 들어올 때라 수프라든지 식이요법처럼 잡수신 게 많더라고요. 연산군 같은 경우는 육식을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 소를 몇 마리를 잡았다는 얘기도 있고, 정조의 경우는 효성이 극진해서 자신의 반찬 수는 줄이고 어머님을 극진히 모셨다고 하더라고요.

    ▶ 황 선생님의 스승이셨던 한 상궁님은 언제 궁중에 들어오셨나요?

    고종 때, 13살에 입궁해서 원래는 한대 임금이 끝나면 다른 임금을 또 모시는 것이 아니라고 그래요? 결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끝나는데 그때는 이미 나라가 망했을 때라 순종도 모시고 윤비도 모시고 그랬답니다.

    ▶ 임금님의 퇴상은 누가 먹나요?

    수라상을 받으시면 보통 12첩이 올라간다고 하는데 백성들로부터 거둬드린 식재료들이 올라갑니다. 백성들 삶의 표현을 수라상이라고 하는데 흉년, 풍년, 전쟁 등을 알 수 있는 지침들이 되는 것이죠. 제대로 차려져 나오면 나라가 잘되고 있구나 하고 알았다고 해요. 퇴상이 되면 제일 위에 상궁부터 밥을 새로 지어서 반찬을 물려주면서 더 보태서 먹었다고 해요.

    ▶ 황혜성 선생님이 원장님 어렸을 때, 맛있는 것을 많이 만들어 주셨나요?

    저희 소학교 때는 어머님이 학교 가정과 선생님이셨고, 저희 대학 때는 가정과 교수셨기 때문에 일하는 어머님이시라 저희 기억에 보통 어머님들처럼 앞치마에 가정음식해주는 모습은 별로 없어요. (웃음) 학생을 지도하는 선생님인데 그중에 저희는 보조의 역할을 했거든요. (웃음) 집에서 해주신 것으로는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셨기 때문에 특별 식으로 생선을 달게 조리거나 어묵요리를 해주셨죠.

    ▶ 몇 남매셨어요?

    오빠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고, 제가 세 자매의 첫째고, 남동생이 막내로 있어요.오빠가 등산을 좋아해서 산에 많이 올랐는데 경기고 2학년 때 지리산에서 태풍을 만나 조난을 당했어요. 그 후로 산악부원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작년 어머님 장례식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는데 그때의 공부 잘하던 큰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상처로 덕산 시골에서 과수원 가꾸시면서 혼자 조용히 사셨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희 집에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고요.

    한복려

     

    요리는 눈치! 갓 시집온 며느리를 향한 내리사랑

    ▶ 자녀분이 어떻게 되나요?

    아들이 하나 있고, 지난달에 결혼을 했어요.

    ▶ 며느님 보시니까 어떠세요?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가족을 맞으니까 좋죠. 음식 잘하느냐는 말을 가장 많이 물어보는데 유학 갔다 오고 배울 시간이 있겠어요? 저는 눈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는데 어제 표고버섯 짜는 것을 보고 어떻게 알았느냐고 그랬더니 어깨너머로 제가 하는 것을 봤데요. 그래서 너는 눈치는 있구나 하면서 앞으로 잘할 거라고 그랬죠. (웃음)

    ▶ 한 원장님은 집에서 음식을 많이 하셨나요?

    남편 입맛이 까다로워야 반찬솜씨가 느는 것 같아요. 결혼 초기에는 오히려 시어머니를 통해 많이 배웠어요. 시골 음식, 가정음식...남편은 편집기자로 어머님의 요리 대백과 편찬 일을 하면서 만났는데 어머니께서 그 사람 괜찮더라 하면서 만나보라고 해서 만났지요! 남편은 한국일보 편집장까지 하고 제 나이 33살,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너무 일찍 혼자되어서 남편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요.

    ▶ 황 선생님은 한 상궁님에게 어떻게 해서 전수를 받기 시작하셨어요?

    어머니께서는 일본유학을 다녀오시고 숙명 여전 가사학과에 교수로 가게 되셨고, 조선요리를 가르치셔야 하는데, 유학 생활을 하시다 보니까 가정 음식이고 뭐고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그때 일본인 교장선생님이 윤비를 모시는 한 상궁한테 데리고 가셔서 마지막 상궁한테 전수를 좀 해달라고 소개를 시켜주셨는데 처음엔 많이 힘드셨데요.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배우시다가 이 궁중 음식이 보통 음식이 아니고, 나라가 망한다고 해서 이 음식들이 없어지면 어쩌나 싶어서 실제로 배운 것을 정리하고 한 상궁님과 책을 내고 궁중의 기록물들을 다 합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으신 거죠.

    ▶ 일본인 교장선생님이 데리고 가셔서 소개를 시켜 주시고 배우게 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네요.

    조선인이 자기 나라 것을 모를 수 가 있느냐고 하시면서 데리고 가셔서 배우게 되셨다고 하세요.

    ▶ 자매 3분이 다 요리를 하시는데 어머님께 언제부터 배우시기 시작하셨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어머니 조수역할을 하다가 71년부터 전수를 해야 하니까 조교를 하면서 배운 거죠. 많은 어머님들의 솜씨를 알고 하면서 직접 체득하는 것이 좋은 것인데 남을 가르치기 위해 배웠다는 것이 좀 아쉬워요.둘째 한복선은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요리연구가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고, 셋째 한복진도 학교에 있고, 저는 전수원 일을 합니다.

    ▶ 어렸을 때부터 꿈이 요리셨어요?

    어머님이 강요하신 것도 아니고 그냥 흘러오다가 대학입시 때 어머님이 한문이니 고문서를 공부하시면서 역사공부를 해보라고 저에게 권하시더라고요. 제일 싫었던 과목이 역사라 그것은 접고, 원예학과를 권하셔서 갔더니 화훼에서부터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치더라고요. 먹을 것을 1차적으로 어떻게 하는가가 저에게는 큰 공부가 됐고, 진로가 정해지니까 모자라는 공부는 식품공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하면서 채우게 됐죠.

    성의와 배려는 가장 아름다운 요리

    ▶ 요즘은 주로 대체음식을 먹거나 외식을 많이 하는데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우선은 맛있게 먹을 줄 안다는 것이 중요하고 먹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음식을 생활하는 일상의 도구라든가 수단으로 생각하면 즐거움이 덜할 것 같아요. 한 가지 음식을 하더라도 내가 직접 해봤고, 누가 먹어봤고, 누구를 위해 해 준다는 성의와 배려만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 문제인 것 같아요.

    ▶ 우리나라에 귀한 손님들이 오시면 음식도 많이 하시고, 외국도 많이 가보셨는데 우리나라 음식과 외국음식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무엇이 한국 음식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하고 매력이 있느냐 인 것 같아요. 한국 음식은 동물성 식품과 식물성 식품을 같이 섞어서 쓰는 음양과 오방이라는 5색, 5관, 5행이 바탕이 되어서 다섯 가지 색깔을 조화롭게 쓰기 때문에 건강과도 밀접해요.또, 우리나라 음식은 채소가 많아서 지금 가장 건강 음식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발효음식인데 장, 김치 이런 것으로 기본 맛을 내는 것으로 양념을 했다는 것이죠.

    깨소금, 파, 마늘이라는 양념 자체가 약으로 생각하고 썼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고로, 한국 음식은 요즘 세계인이 추구하는 건강식, 소위 웰빙음식이라고 얘기를 해주는 것이지 궁중음식만이 웰빙음식이 되는 것은 아니죠. 한국음식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런 것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음식을 먹게끔 해주어야 하는데 몸에 좋고 약이 된다고 무조건 먹으라고 하는 것은 맛이 없죠. 이야기를 문화와 함께 전달이 되는 음식을 사람들이 알고 있어야하는 것인데...

    ▶ 문화행사에도 많이 참관을 하셨고 북한의 문화행사에도 참관을 하셨는데 북한 음식은 어떻던가요?

    북한 음식은 정체성이랄까, 사진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들어진 음식이 많아요. 물론, 가정 음식은 본 적이 없지만 어떤 응용이나 그때그때 따른 멋보다는 미리 각본에 짜여진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이 제가 본 북한 음식이었어요. 국가의 행사로써 궁중음식을 제대로 -일시적이 아닌- 표준을 만들어서 청와대 영빈관을 비롯해 크고 작은 행사에도 선보였으면 좋겠고 현재 문화관광부에서 관광과 결부를 시켜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 앞으로 궁중음식과 관련해서 계획이 있나요?

    우리가 궁이라는 곳을 건축물이라든가 관광에만 치중하고, 궁중사람들의 생활문화가 그 안에 좀 보여져야하는데 좀 삭막한 것 같아요. 그 안에서는 절대로 무엇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닌, 그런 것을 합리적으로 잘 풀어내서 궁에 가면 그 삶이 어떻다는 것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뭔가가 마련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국립이 되는 뭐가 되든 궁중음식을 배울 수 있는 학교가 마련됐으면 좋겠고 작게는 어머님 기념관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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