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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같은 사람 있어야 조직이 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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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장 같은 사람 있어야 조직이 살죠"

    • 2011-01-24 09:41

    [노컷피플] ''간장의 달인'' 오경환 샘표식품 상무

    간장을 단 하루라도 먹지 않는 한국인이 있을까요? 발효기술의 정점이라 불리는 간장은 김치보다 더 오래된 우리의 전통 발효식품입니다. 오늘 노컷피플이 소개하는 인물은 지난 33년 동안 오로지 뛰어난 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우리나라 최고의 간장 전문가입니다. 간장공장 공장장인 샘표식품 오경환 상무를 만나 간장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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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오후. 샘표식품 오경환 상무(60)를 만나기 위해 물이 좋기로 이름난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매곡리에 자리 잡은 이천공장을 찾았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오 상무는 마치 시골아저씨처럼 편안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공장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간장의 제조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해내는 그의 모습에서는 30년 간장전문가의 관록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간장 발효탱크를 보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300톤짜리 42개, 110톤짜리 56개 등 총 98개의 간장발효탱크가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건물로 치면 3층에서 5층 높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거대한 장독대인 간장발효탱크에서 메주는 소금물과 섞여 발효과정을 거친다. 간장발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곰팡이와 균 등 발효미생물이다.

    그래서 간장공장에는 각각 자기회사만의 균이 있다고 한다. 어떤 미생물을 이용해 발효하는지가 관건이다.

    한가지 균을 이용해 발효하는 것도 어려운데 여러 미생물을 이용해 최적의 맛과 향을 만들어내야 하니 간장을 발효기술의 정수(精髓)라고 부르는 것이 과언이 아니다.

    "간장 맛을 결정하는 것은 메주에 피는 곰팡이에요. 그래서 간장 회사마다 자기 곰팡이를 가지고 있지요. 곰팡이가 삶은 콩 등을 효소로 분해하는 과정에서 아미노산이 나오는데, 이런 아미노산의 양이 간장 맛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효소를 많이 내는 똘똘한 곰팡이를 골라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오경환 상무는 곰팡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지난 1986년 그가 일본의 유명 간장제조업체인 ''야마사''에 견학 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가 당시 가장 알고 싶었던 비밀은 야마사가 도대체 어떤 곰팡이를 활용하는가였다.

    오 상무는 예닐곱 차례의 거절 끝에 간신히 야마사의 제국실(메주 띄우는 방)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가 한 일은 반복해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것이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곰팡이의 씨앗인 포자를 자신의 코안에 최대한 많이 담아오기 위해서였다.

    "제국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호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코를 풀었어요. 그리고 그 휴지를 한국으로 가져와서 분석했죠. 결국 야마사가 어떤 곰팡이균을 쓰는지 알아냈어요. 휴지에 묻어 있던 야마사의 곰팡이 포자를 분리하는 데 성공한 거죠."

    간장발효탱크의 문을 열었다. 순간 신기하게도 포도주 냄새가 났다. 일반적으로 간장은 검은색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간장은 초기 단계에서는 진한 보라색과 브라운의 중간 빛깔을 띤다. 이 때문에 간장을 빛에 비추어 보면 와인처럼 붉고 투명한 아름다운 색깔을 볼 수 있다.

    각각 다른 날짜에 발효를 시작한 98개의 간장발효탱크는 최소 6개월의 발효과정을 거친다. ''빨리빨리''에만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6개월은 너무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우리 속담에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 꿰어 못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몸에 좋은 간장은 충분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시간과 순서가 정말 중요하죠. 바쁘다고 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순서를 뒤바꾼다면 일을 망칩니다. 간장을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은근과 끈기가 필요한 일이죠."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다 똑같다. 비록 더디 가더라도 순서와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으면 꼭 탈이 나기 마련이다.

    오 상무의 삶도 간장을 닮아있었다. 남 보기에 결코 화려한 삶은 아니었지만,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묵묵히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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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 간장인생 진한 ''관록''

    그가 지난 1978년 처음 샘표식품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 놀림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봉급도 적은데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장에서 야근하기도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비웃던 친구 중에 아직도 현직에 남아 일하는 사람은 지금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이처럼 그가 30년 이상 ''간장'' 하나에만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사명감''과 ''즐거움'' 때문이었다.

    "내가 만든 간장을 온 국민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고 있다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일이 참 중요하구나! 정말 잘해야겠다!''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죠. 그래서 좋은 간장을 만들기 위해 메주제조실에 딸린 사무실에서 수도 없이 밤을 샜어요. 하지만 전혀 힘든 줄 몰랐죠. 좀 더 좋은 간장을 만들어 낼 때마다 보람도 있었고 너무 너무 일이 즐거웠어요."

    오경환 상무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매우 과학적인 우리의 전통음식을 계승하고 세계화하는 일에 더 많은 젊은이가 뛰어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연봉을 많이 주는 대기업이나 금융업종 등에만 몰리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이 정말 즐겁게 일할 수 있는지, 또 일을 통해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지 꼼꼼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저는 우리의 전통음식을 계승하고 세계화하는 일도 매우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음식의 제조과정을 보면 매우 과학적인 면이 많거든요. 그만큼 발전의 가능성이 크고 많은 젊은이의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오 상무의 변함없는 목표는 가장 한국적인 간장으로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한국적인 간장은 요리에서 간장의 맛은 최대한 줄이는 대신 재료 본래의 맛과 향을 더욱 그윽하게 하는 것이다.

    "올해 안에 세계시장을 겨냥해 가장 한국적인 간장을 새롭게 출시할 것입니다. 어느 요리와도 잘 어울려 세계의 모든 요리사가 즐겨 찾는 그런 간장을 말이죠."

    국내 최대 간장 공장을 책임지고 있는 오경환 상무는 1978년 샘표식품의 연구원으로 간장과 첫 인연을 맺은 이후 지금까지 33년 동안 간장만 만들면서 살아온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간장전문가로 통한다.

    색깔과 맛을 보는 것만으로도 간장 제조공정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바로 알아내는 그에게 "간장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어느 모임이나 조직에도 이런 사람은 꼭 있어요. 자신은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 뒤에서 남들을 챙겨주고 빛나게 하는 사람 말이에요. 대개 이런 사람들 때문에 그 모임이나 조직이 잘 돌아가기 마련이죠. 그래서 있을 때는 잘 몰라도 없으면 바로 티가 나는 보배 같은 사람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순서와 절차를 지켜내는 성실함. 자신은 감추면서 남을 빛내주는 겸손함. 오경환 상무의 간장이야기를 통해서 배운 삶의 지혜다.

    처음에는 공장을 맴도는 짭조름하고 들큼한 냄새가 낯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구수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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