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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 참사와 함께 한 사람들…소방관·경찰관·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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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세월호 참사 10주기' 참사와 함께 한 사람들…소방관·경찰관·시민들

    편집자 주

    광주CBS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참사 발생 당시 전남 진도 팽목항 등에서 참사와 함께 한 광주전남 시·도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광주전남 시·도민들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직접 피해를 입은 희생자나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의 아픔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광주CBS가 마련한 세월호 10주기 기획. 15일 첫 번째 순서로 세월호 참사 현장에 있었던 소방관과 경찰관,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기억을 보도한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참사와 함께 한 사람들①]
    김성은 소방관 "10년 흘렀지만 여전히 떠오르는 현장"
    김창길 전 경찰관 "고사리손으로 촛불 들고 가족 기다리던 아이들 잊지 못해"
    김화순 세월호 광주시민상주모임 "사람 많았지만 팽목항은 적막"
    이재웅 광주YMCA 관장 "3개월 동안 600여 명과 연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구급대원으로 활동했던 소방위 김성은씨. 김수진 기자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구급대원으로 활동했던 소방위 김성은씨. 김수진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세월호 참사 10주기' 참사와 함께 한 사람들…소방관·경찰관·시민들
    (계속)

    소방관 김성은 "10년 흘렀지만 여전히 떠오르는 현장"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광주 동부소방서 소속 소방관이던 김성은(45)씨는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구급대원 지원을 나갔다. 경기도에서도 구급차가 내려왔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김씨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가족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유가족들의 건강 상태 등을 살폈다.

    김씨는 "초기에 발견된 학생들은 유족들을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어 안산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시간이 지난 뒤에 발견된 학생들은 신원 확인을 위해 대개 목포와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언론으로만 보던 현장을 처음 갔을 당시를 기억했다. 항구 앞에 앉아있는 유가족들을 보고 마음이 동화되면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대기하는 시간 유가족들이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왜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안타까운 사고를 겪어야 하는지'라는 생각이 들어 감정에 휩쓸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초반에는 현장에 머물 곳이 없어 구급차 안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김씨는 "경기도를 오가는 구급대원들은 6~7시간을 이송하다 보니 피로도가 높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마치 놀러 온 듯 현장을 방문한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었다. "유가족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찍기 위해 온 기자들을 보면 공감이 되지 않았다"라며 "자신이 팽목항에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적절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찾아온 젊은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안 좋고 화가 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10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기억과 아픔은 여전하다. 김씨는 "가족들이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맨바닥에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라며 "말을 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직원들끼리도 말을 아꼈고 현장에 있었던 당시에는 슬프거나 힘든 것도 느낄 수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김씨는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사건 사고 현장을 빨리 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김씨는 "매년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비석에서 새겨진 글처럼 각인됐다"라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대화했다"라고 설명했다.
     

    전 경찰관 김창길 "고사리손으로 촛불 들던 아이들 잊지 못해"

    김수진 기자김수진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임회파출소장으로 근무한 전 경찰관 김창길씨는 관할 구역이던 팽목항을 셀 수도 없이 많이 찾았다. 뉴스 속보를 보고 찾아갔던 팽목항은 고요했다. 하지만 점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참사 당일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구조된 사람들을 구급대에 이송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가도 구조된 사람들은 육지로 오지 않았다.

    구조된 줄만 알았던 아이들을 만나고자 팽목항을 찾은 100여 명의 유가족 모습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김씨는 "아버지들은 상황을 알기 위해 계속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어머니들은 자식을 만날 수 없어 울다 실신하기도 했다"라며 "너무 많은 사람이 구조되지 못하다 보니 누구도 선뜻 말을 꺼낼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팽목항의 치안이 극도로 불안했다고 설명했다. 유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화내는 모습도 목격했다. 김씨는 "우울감을 호소하는 등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을 귀가시키고 달래기도 했다"라며 "초반에는 유가족과 일반 시민을 구분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씨는 "참사 이후 사흘이 흘렀지만 밤마다 세월호에 탄 형제자매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아이들의 촛불 기도가 가장 잊히지 않는다"라며 "고사리손으로 촛불을 들고 추운 밤 바닷가에 있는 아이들을 떠올리면 파출소에 돌아와서 씻다가도 울고, 울다가 다시 팽목항으로 돌아간 적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세월호 광주시민상주모임 김화순 "사람 많았지만 적막했던 팽목항"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을 찾았던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시민상주 김화순씨. 김수진 기자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을 찾았던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 시민상주 김화순씨. 김수진 기자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여러 차례 팽목항을 찾은 시민들도 있었다.

    세월호 광주시민상주모임의 시민상주 김화순(55)씨는 참사 당일 고등학생이던 아들을 학교에 보낸 뒤 집에서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5월 2일 '함께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팽목항을 찾았다. 5월이지만 팽목항은 싸늘했다. 김씨는 당시 희생자들이 올라올 때마다 오열하던 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김씨는 "팽목항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지만 적막했다"라며 "아무도 말을 크게 하지 않고 가끔 유가족들의 곡소리만 한 번씩 들렸다"라고 설명했다.

    세월호광주시민상주모임은 당초 3년상을 함께하자는 취지로 결성됐지만 10년째 활동하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진실규명을 위해 성명서를 모아 전달하자 이를 받은 유가족이 말을 잇지 못했다"라며 "너무 간절했고 힘들었다며 우는 모습에 같이 울며 끝까지 함께한다는 뜻을 전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대형참사를 막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김씨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잠시 멈춰서 묵념하는 것으로도 공감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광주YMCA 이재웅 관장 "3개월 동안 600여 명과 연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을 찾았던 광산구청소년수련관 이재웅 관장. 김수진 기자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을 찾았던 광산구청소년수련관 이재웅 관장. 김수진 기자
    광주YMCA 관장 이재웅씨는 당시 진도 현지에서 유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등 일주일 동안 봉사활동에 참여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씨는 시민 가운데 봉사활동에 자원한 6~8명의 사람들과 '무박 2일'의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이씨는 "곁이 되어주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팽목항을 방문해 3개월 동안 600여 명이 함께했다"라며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는 정말 수많은 봉사자분들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연대의 힘으로 슬픔을 극복했다. 이씨는 "계속 자리를 지키는 봉사자들을 본 한 유가족이 "아직도 계시네요"라고 말을 건넸다"라며 "모든 봉사자들은 상황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기에는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도움을 주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YMCA는 매년 4월 16일에 추모 기도문을 작성하고 배포한다. 이씨는 "연대를 통해서 유가족들에게 혼자만의 고통이 아닌 같이 나누는 장을 만들고 있다"라며 "곁을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준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10년 전 세월호 참사와 함께했던 소방관과 경찰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다시는 유사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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