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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논평] 유대인의 생존 방식에서 - 지형은 목사



종교

    [CBS 논평] 유대인의 생존 방식에서 - 지형은 목사



    제가 독일에서 한인교회를 목회하며 유학할 때니까, 벌써 30여 년 전 일입니다. 한인교회에 예배 공간을 빌려준 도르트문트의 한 독일 교회에서 성지순례를 가는데 우리 교회 성도들이 참여했습니다.

    여행 가이드가 유대인이었고 아주 탁월했습니다. 열흘이 좀 넘는 기간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며, 전문적인 설명이며, 숙식 등이 다 훌륭했고 일행이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일정 중에 히틀러의 나치제국에서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한 사건, 곧 홀로코스트를 기념하는 야드 바셈을 방문하는 날이었습니다. 버스가 기념관 앞에 도착했는데 가이드가 설명은 하고서 자신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기념관 안에 들어가면 너무 감정이 북받쳐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30명이 조금 넘는 일행 중에서 이십 수 명이 독일인이었습니다. 학살당한 비인간(非人間)의 참상을 보면서 일행 모두가 몸을 떨었습니다. 많은 독일인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묵묵히 목불인견(目不忍見)의 비극 속을 걸었습니다.

    특히 독일 교회의 담임목사 사모님은 둘러보는 내내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독일인 몇 명은 도무지 계속 볼 수 없는지 중간에 나갔습니다. 가해자인 독일 민족으로서 심경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한 장의 사진이 제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습니다. 사진의 가까운 지점에는 등을 보이고 서 있는 한 여인과 두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여인이 한 아이의 손을 잡고 더 어린 다른 아이는 한 팔로 안고 있습니다.

    사진의 먼 곳에는 한 남자가 총을 든 독일 군인에게 끌려가면서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남편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여인과 두 아이, 끌려가는 남자가 모두 벌거벗은 상태입니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솟구쳐 오르는 통곡을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기념관을 나와서 모두 버스에 탔습니다. 버스가 이동하는데 아무도 말이 없습니다. 많이 울어서 눈이 벌겋게 된 사람들이 여럿입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버스가 이동하자마자 그 활달한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버스가 한 10분 정도를 달렸을까,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평소보다 한참 차분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여러분 독일 사람들은 여름휴가가 끝나면 바로 내년 휴가 일정을 잡습니다. 하지만 우리 유대인에게는 내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생존합니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은 여러분 독일인들에게 복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이미 용서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는 까닭은 다시는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한일 과거사에 관한 대통령과 정부의 인식이 참 단선적입니다. 부침(浮沈)이 교차하는 역사의 흐름에서 민족이나 국가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생존하는 것인지에 관한 인식이 걱정스럽습니다. 제주4·3사건 75주년과 4·16세월호참사 9주기를 대하는 윤석열 정부의 모습에서 그런 단면이 분명합니다.

    사실(事實) 또는 진실(眞實)의 규명과 그에 따른 합당한 조치가 과거에 관련한 용서와 미래를 향한 희망의 기초입니다. 역사의식이 없으면 생존이 위험해집니다. 유대인의 생존 방식에서 배워야 합니다. CBS논평이었습니다.

    [지형은 목사 / 성락성결교회, 한목협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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