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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겨울 메뚜기죠" 경제·민원 한파에 쪼그라든 '붕어빵'



경인

    "우린 겨울 메뚜기죠" 경제·민원 한파에 쪼그라든 '붕어빵'

    뜨내기장사에 붕어빵앱 '이중' 표시
    민원+상인 눈초리에 쫓겨나며 영업
    물가 '급등'…12시간 팔아 7~8만 원
    트럭, 이리저리 다녀도 '허탕' 일쑤
    민원·단속까지…붕어빵 제철 '무색'
    취약계층 생계수단, '법 울타리' 밖
    영업권 보장과 세금 규제 필요성 제기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 제정 시급"

    정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수원 도심의 붕어빵 노점 모습. 박창주 기자정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수원 도심의 붕어빵 노점 모습. 박창주 기자"쫓겨나느라 마음 편히 장사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이거 아니면 먹고 살 게 없으니까…"
     
    지난 13일 오후 2시쯤 경기도 수원 권선구의 한 공원 앞. 이용객들의 '하트' 표시로 지도상에 붕어빵집 위치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을 보고 찾아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해보니 근처 사거리 모퉁이에도 노점 표시가 가득했다. 고개를 들어 길 건너로 시선을 돌리자 '황금잉어빵' 현수막이 아련히 눈에 들어왔다.
     
    붕어빵 장사 7년차인 정모(60대·여)씨의 노점에는 손님 서너 명이 짧게 줄을 섰다. 폰 화면을 보던 한 남성이 '돈 보냈어요'라고 하자, 정씨는 틀에서 갓 잡아 올린 붕어빵을 종이봉투에 담아 건넸다. 상자를 찢어 만든 메뉴판에는 '3개 2천 원'이라고 크게 적혀있었다.
     
    이곳에서 겨울마다 붕어빵을 팔아온 정씨는 얼마 전 노점상 위치를 옮겨야 했다. 보행에 방해가 되는 데다 바로 옆 상가 상인들의 민원이 잇따른다는 이유로 떠밀린 것.
     
    "매년 그렇기는 하지만 올해 경기가 안 좋아서 민원이 더 심한 것 같아요. 세금 안 내니까 장사하지 말라는 거죠. 신고가 계속 들어가니 단속도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정씨는 몇 주 만에 다시 원위치다. 옮겨갔던 곳은 200여m 거리에 유명 제빵 브랜드 체인점이 있어 눈치가 보이는가 하면, 인적도 드물어 손님이 끊겨서라고 했다.
     
    "여기나 저기나 어차피 쫓겨날 테니 하나라도 더 팔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다니는 거죠. 리어카에 가스통, 식재료까지 옮기려면 또 반나절은 버려야합니다."
     
    붕어빵 가격이 올라 지난해 2천 원에 5개 정도였던 마리 수가 3마리로 줄었다. 박창주 기자붕어빵 가격이 올라 지난해 2천 원에 5개 정도였던 마리 수가 3마리로 줄었다. 박창주 기자이른바 '메뚜기' 장사에도 벌이는 예년만 못하다. 반죽은 물론 팥, 슈크림 등 재룟값과 LPG 가격 등이 크게 올라, 밤낮으로 12시간 가까이 팔아도 손에 쥐는 돈은 7~8만 원 남짓.
     
    그에게는 15년 넘게 비정규직으로 건물 청소를 해오다 일자리를 잃고 뛰어든 유일한 생계 수단이자 '직업'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른 일을 찾기도 힘든 처지다.
     
    정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나이에 뭘 해먹고 살겠느냐""쫓아내려고만 하지 말고, 세금 내라면 낼 테니 마음이라도 편히 팔 수 있게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소연했다.
     

    고물가 '늪'에 붕어빵 '제철 장사'도 무색해져

     
    뜨내기장사의 서러움은 푸드트럭 형태의 노점도 마찬가지. 수원 팔달구의 한 번화가 일대에서 3년째 붕어빵을 팔아온 남모(30대)씨는 제철 장사가 무색하게도 '원가의 늪'에 허덕이고 있다.
     
    끊임없는 민원과 단속에 수시로 차량 이동을 해야 하는데, 휘발윳값과 엎치락뒤치락 할 정도로 경윳값이 오른 것은 물론 각종 유지비와 재룟값 등도 '줄인상'되면서 부담이 커졌다.
     
    단속이 아니더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해 목 좋은 곳을 찾아다니고는 있지만, 견제가 심한 대형 상가들을 피하려다 보면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허탕 치기 일쑤다.
     
    수원 번화가 일대에서 영업 중인 붕어빵 푸드트럭 앞에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수원 번화가 일대에서 영업 중인 붕어빵 푸드트럭 앞에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 박창주 기자남씨는 "상가나 빵집을 피해 다녀도 단속반이 한번 뜨면 하루 장사는 거의 접어야 된다""노점상 단체에 자릿세는 내고 있지만, 지자체 자리허가 받기는 하늘에 별 따기"라고 토로했다.
     
    이어 "재료비가 50% 올라 남는 게 없고, 비싸지니까 잘 팔리지도 않는다""코로나19로 직장 잃고 뛰어든 장사인데 겨울 지나면 뭘 팔아야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격 급등에 소비 위축…최후 생계수단 '위협'

     
    겨울 한철 장사의 대명사인 붕어빵 노점상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중의 경제 한파 속에 빗발치는 민원과 단속에 쫓기기까지 하면서 깊은 시름에 빠져들고 있다.
     
    2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노점상인들은 각종 재룟값을 비롯한 제반비용 인상으로 붕어빵 1개당 가격을 전년도 500원 안팎에서 올겨울 700원으로 40% 정도 올렸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현재(13일 기준) 밀가루 평균가격이 1㎏에 2244원으로 1년 전(1601원)보다 40%가량 급등했다. 한국물가협회 도매가를 보면 팥 가격도 한 가마(80㎏)에 80만 원으로 5년 전 대비 10만 원 넘게 올랐다.
     
    붕어빵을 굽기 위해 사나흘에 한 번 갈아야 하는 취사용 LPG 물가도 국가통계포털(KOSIS) 기준 지난해 1~3분기에 23% 증가했다. 올해 전기·가스와 대중교통, 상하수도 요금 등 공공요금들이 줄줄이 인상될 것으로 예고돼, 가스요금도 2분기부터 큰 폭으로 인상될 전망이다.
     
    이 같은 물가 고공 행진에 겨울철 대표 간식인 붕어빵을 사먹는 데도 주머니를 열기 힘들만큼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
     
    남씨가 붕어빵 틀에 반죽과 팥앙금을 넣고 있다. 박창주 기자남씨가 붕어빵 틀에 반죽과 팥앙금을 넣고 있다. 박창주 기자마지막 생계수단으로 노점상을 택한 경제적 취약계층에게는 더욱 가혹한 현실이다. 실제 지난해 2월 빈곤사회연대의 노점상 소득감소 관련 자료집을 보면 점포들은 대부분 수도권(서울 68.9%, 경기·인천 18.8%)에 몰려 있는데, 10명 가운데 8명은 노점을 하게 된 요인으로 사업실패와 해고에 따른 실업, 신체장애, 과도한 빚 등 경제난을 들었다.
     
    특히 노점품목은 별다른 기술과 목돈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붕어빵과 같은 먹을거리에 70% 이상 쏠리는데, 청년창업이 늘고는 있지만 상인 평균 연령은 61.5세로 여전히 고령층 중심이다.
     
    이런 가운데 끊임없는 민원과 단속은 붕어빵 장사를 위축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다. 통행 불편 민원을 비롯해 세금을 안 내고 장사를 한다는 이유로 주변 건물 상인들의 시선도 따갑다.
     
    민원을 풀어야하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단속에 손을 놓을 수도 없다. 도로법(무단적치)과 식품위생법(무허가 음식업)으로 ㎡당 10만 원의 과태료 부과나 경찰고발도 가능하다.
     
    상인 사정을 감안해 이동조치만 하는 경우가 많지만, 영업 내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원시 관계자는 "예전만큼 붕어빵 노점이 많지는 않지만 상가 같은 데서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며 "불법 요소는 있지만 그분들(노점상)도 딱한 사정이 있어서 계도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면세 대상 업종…"규율+권리 보장 위해 특별법 필요"

     
    지난달 9일 서울 국회 앞에서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관계자들이 노점상 생계 보호 특별법 제정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열고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지난달 9일 서울 국회 앞에서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관계자들이 노점상 생계 보호 특별법 제정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열고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이처럼 불경기에 민원과 단속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붕어빵 업계가 쪼그라드는 양상이다. 파는 곳이 크게 줄어 '붕세권(붕어빵+역세권)'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다.
     
    그간 불법·탈세 영업 논란에 휩싸여 왔으나 현행 세법상 노점상은 세금계산서·영수증 발급 의무가 없는 면세 대상일 뿐, 합법적인 직업이라는 게 노점 업계의 시각이다.
     
    이에 업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은 지난해 국회 소관위원회에 회부되고도 여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 등 제도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점 영업권을 보장해주면서도, 그에 따른 합리적 세금 납부 의무를 부과하는 맞춤형 규제를 도입하자는 게 핵심이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김나영 대회협력실장은 "붕어빵 장사 같은 노점과 관련한 구체적 규정도 없이 도로법과 식품위생법을 너무 포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며 "국세청 직업사전 코드 번호도 부여돼 있는 직업군으로서 사회경제의 한 주체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입법센터 이주희 변호사(법무법인 다산)도 "도시빈민이 형성된 맥락을 보면 노점은 없어질 수 없는 존재다. 이들을 흡수할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단속도 일관적이지 않아 행정 신뢰도를 잃고 있는 만큼, 보호와 규율을 할 수 있는 법제도를 정비해야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노점 관련 단체들은 지역별 점포 수 조정을 계획하는 등 자정 의지를 갖고 있다"며 "계류 중인 특별법안에도 신고제로 노점들이 세금을 내고 자율질서사업을 하는 내용이 충분히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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