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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비극'을 '용서'로 ④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대(代) 이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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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집중취재] '비극'을 '용서'로 ④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대(代) 이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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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자도 진리교회·영암군 상월그리스도의교회 값진 순교의 피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2주년입니다. 하지만 민족상잔의 상처는 곳곳에서 증오와 갈등으로 남아있습니다. CBS는 진실화해위원회와 함께 72년 전 적대세력에 의한 기독교인 집단 학살 사건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당시 좌익세력의 집중 표적이 됐던 교회는 수많은 순교의 피를 흘려야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순교자들과 생존 가족들은 원수를 원수로 갚는 대신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을 택했습니다.


    임자 진리교회 교인 48명은 1950년 10월 3일 당시 모래산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적대세력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 이곳에는 '용서하라'는 순교기념비가 세워졌다.임자 진리교회 교인 48명은 1950년 10월 3일 당시 모래산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적대세력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 이곳에는 '용서하라'는 순교기념비가 세워졌다.
    [앵커]

    한국전쟁 발발 72주년, 적대세력에 의한 기독교인 집단 학살 사건을 집중 조명하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원수를 용서로 갚았던 이들의 숨은 이야기들을 전해드립니다.

    순교를 당한 당사자들도, 살아남은 가족들도 원수를 갚는 대신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송주열 기자의 보돕니다.

    [기자]

    한국전쟁은 민족상잔 이상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전남 신안군 임자도 진리에서 나고 자란 강대필 장로는 광복 후 이념 갈등으로 분열된 주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강대필 원로장로 / 임자 진리교회
    "일곱 살 먹었을 때인데 해방이 됐으니까 손 잡고 서로 좋게 살아야 하잖아요. 우리 어린 나이에도 이상한 것이 어르신들이 우통을 벗고 바지는 흰 바지, 몽둥이 이런 것을 들고 저쪽 안에서 진리(마을)쪽으로 나오시면서 누구 죽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수십 명이 몰려오더니 만 조금 있으니까 여기서 반대로 또 누구 죽이라고…"

    마을이 내려 다 보이는 곳에 조성된 6.25 희생자 992명 추모기념탑이 당시 이 마을이 얼마나 피로 얼룩졌는지 가늠하게 합니다.

    신앙을 지키다 마을 적대세력에 의해 교인 48명이 순교를 당한 진리교회.

    진리교회 교인 48명의 죽음은 피도 눈물도 없을 만큼 비극적이었지만, 순교를 당한 가족들은
    이념에 눈멀었던 주민들을 용서했습니다.

    교회 중심이었던 이판일 장로 일가는 12명의 순교자가 나왔지만, 이판일 장로 아들 故 이인재 목사는 기도하는 아버지를 삽으로 쳐 죽인 주민을 용서했습니다.

    이인재 목사는 또, 국군이 임자도를 수복할 당시 원수와도 같은 좌익세력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새긴 흰 당목을 나눠줘 숱한 목숨을 구해냈습니다.

    [인터뷰] 강대필 원로장로(84세) / 임자 진리교회
    "(범인은) 죄수들 쓰는 지푸라기 모자를 쓰고, 당시 이인재 집사님은 우리 마당에 서 있고 범인은 저 앞에 가고 하는 광경을 제가 직접 봤어요. 그런 데 그 분이 결국 살았어. 안 죽이고 살아서 목포로 나가서 그 양반이 70세가 넘도록 살다가 돌아가셨어. 우리 이인재 목사님이 원수를 용서하시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 실천하셨어요."

    [인터뷰] 이성균 목사 / 임자 진리교회 (순교자 이판일 장로 손자)
    "임자도는 본의 아니게 좌익하신 분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런 분들을 적극적으로 구출하고 구명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 하면 흰색 당목 천을 구해다가 거기다가 태극기를 밤새껏 새겨 넣어서 그것을 전부다 찾아오라고 해서 찾아가서 다 나눠줬어요."

    전남 영암군 상월그리스도의교회 교인 35명은 삼줄로 묶여 이곳으로 끌려와 집단 순교를 당했다. 순교비 아래에는 당시 핏빛이었던 하천 물이 흐르고 있다. 이 장소는 순교 영성을 교육하기 위해 침례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전남 영암군 상월그리스도의교회 교인 35명은 삼줄로 묶여 이곳으로 끌려와 집단 순교를 당했다. 순교비 아래에는 당시 핏빛이었던 하천 물이 흐르고 있다. 이 장소는 순교 영성을 교육하기 위해 침례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전남 영암군 상월리 상월그리스도의교회는 적대세력에 의해 교인 35명 순교를 당했습니다.

    당시 교인들은 평소 일손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고 조금 더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눔도 베풀었지만 이념의 칼날은 처참했습니다.

    적대세력에 의해 굴비 역듯 삼 줄에 묶여 끌려와 순교를 당한 이곳에는 당시 핏빛이었을 하천 물이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이곳에서도 용서의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인터뷰] 이성배 목사 / 상월그리스도의교회
    "순교자들이 순교 장소에서 4가지를 기도하거든요. 찬송 부르면서 갔다가 순교하기 전에 기도 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을 해요. 그리고 4가지를 기도하는 데 첫째는 교회를 위해서 두 번 째는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서 세 번 째는 용서를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자신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증언들이 있습니다."

    당시 6살 어린 나이였던 진요한 장로는 친형 3명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등 10여 명의 친인척을 죽인 마을 적대세력을 용서했던 아버지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요한 장로 / 상월그리스도의교회 순교자 후손
    "경찰들이 주둔해서 주동자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데 당신 생각에 달렸다 아버지한테 그랬다고 해요. (아버님이) 다 살려줘라 이왕 이렇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은 어렵지만 용서한다 그래서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 다 살렸다고 해요."

    마을의 산증인인 김동문 장로는 당시 상상하기 끔찍할 만큼 피울음이 가득했던 마을에서 원수를 원수로 갚았다면 더 큰 희생이 있었을 것이라며, 더 큰 희생을 막은 것은 신앙의 힘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인터뷰] 김동문 원로장로 / 상월그리스도의교회
    "신앙의 사랑이 없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을 거에요. 그 사람들 직접적으로 권총을 주면서 쏘아 죽이라고 했어도 거짓말로 산에다 대고 죽였다고 하고 용서한 분들도 계세요."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 상처라는 말로 담기에는 너무 슬픈 역사지만, 그 안에도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이 있었습니다.

    CBS뉴스 송주열입니다.

    영상기자 이정우
    영상편집 서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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