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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비극'을 '용서'로 ③ 우리가 몰랐던 1950년 '임자도'의 핏빛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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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집중취재] '비극'을 '용서'로 ③ 우리가 몰랐던 1950년 '임자도'의 핏빛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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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자 진리교회 단일 사건 최대 48명 집단 순교 당해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2주년입니다. 하지만 민족상잔의 상흔은 아직도 곳곳에서 증오와 갈등으로 남아있습니다. CBS는 진실화해위원회와 함께 72년 전 적대세력에 의한 기독교인 집단 학살 사건을 집중 취재했습니다. 서남해안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전남 신안군 임자도. 그러나 1950년 임자도는 전쟁과 이념의 총칼 앞에 핏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1만여 명의 인구 중 1,700여 명 정도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북한 인민군과 좌익세력에 의해 예배당을 빼았겼던 임자 진리교회는 48명의 교인이 집단 순교 당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임자도 전경.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 임자도는 1950년 전쟁과 이념의 총칼을 빗겨나지 못하고 핏빛으로 물들고 말았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임자도 전경.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 임자도는 1950년 전쟁과 이념의 총칼을 빗겨나지 못하고 핏빛으로 물들고 말았다. 
    [앵커]

    한국전쟁 발발 72주년, 기독교인 집단 학살 사건을 집중 조명하는 시간입니다.

    서남해안에 위치한 전남 신안군 임자도는 천혜 비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핏빛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임자도 진리교회를 중심으로 발생한 민간인 집단 학살 당시로 시간 여행을 떠나봅니다.

    송주열 기자의 보돕니다.

    [기자]

    임자도 주민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150년의 세월동안 6개의 섬을 흙으로 메워 지금의 풍요로운 땅을 개간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끈질긴 생명력조차 전쟁과 이념의 칼날은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임자도에서 나고 자라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을 모두 겪은 강대필 장로는 1950년 10월 어느날 마을 주민 간 살육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인터뷰] 강대필 원로장로(84세) / 임자 진리교회
    "군가를 부르고 수류탄을, 휘발유를 소주병에 넣어서 사제 수류탄을 만들어서 터트려서 그 사람들을 죽이는거야. 그래가지고 수류탄을 안 맞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창, 죽창으로 일일이 확인해서 다 찌른 거야. 그래서 죽여가지고 배를 이쪽에다 대서 그 사람들을 포승줄로 묶어서 배에 싣고 가서 돌을 메달아 여기서 100미터 쯤 나가서 수장을 시켰어요."

    강 장로는 임자도를 인민군으로부터 수복할 당시 좌익세력으로 오인 받아 총탄을 맞은 마을 주민들 모습도 생생합니다.

    [인터뷰] 강대필 원로장로(84세) / 임자 진리교회
    "여기서 군함이 함포사격을 하는 데 포가 이 산 넘어가 조그만 산이 하나있어요. 거기다가 함포 사격을 하고 그러니까 가정에 있던 사람들이 보따리, 아기들 업고 식구들 다 피난을 가는데 그 사람들이 총에 맞아서 많이 죽었어요. 양민들이 다 양민들이죠."

    임자도에서 나고 자라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을 겪은 강대필(84세) 임자진리교회 원로장로가 주민 학살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임자도에서 나고 자라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을 겪은 강대필(84세) 임자진리교회 원로장로가 주민 학살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50년 한국전쟁 전후 1만 여명 하던 임자도 인구 중 1,700여 명 정도의 민간인이 희생 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말그대로 1950년 임자도는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임자도의 영적 허파였던 진리교회 역시 순교의 피로 물들었습니다.

    한국교회 최초 여성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가 세운 진리교회는 이판일, 이판성 형제 일가를 중심으로 성장했고,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해 교회가 폐쇄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광복 후 예배당을 되찾았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인민군과 좌익세력에 의해 교회를 또 다시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예배를 포기할 수 없었던 교인 48명은 이판일 장로 가정에서 밀실 예배를 드려오다 발각돼 모래 산으로 불리던 백산으로 끌려가 죽창에 찔려 구덩이에 생매장됐습니다.

    일부는 손발이 묶인 채로 바다에 수장됐습니다.

    [인터뷰] 이성균 목사 / 임자 진리교회
    "10월 밤에 이판일 장로님 가정에서 밀실예배를 드리다가 체포당해서 여기까지 글려오게 된 거죠. 미리 저들이 계획을 가지고 파놓은 구덩이에다가 장소를 삼고 여기로 끌고 온 겁니다. 여기서 우리 교회로서는 이판일 장로님과 12가족이 여기서 희생당하셨고, 일부 성도들과 임자도 전체로는 3백여 명의 주민들이 여기서 희생당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리교회는 교인들이 집단 생매장 된 이 곳을 임자도 골고다 언덕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최초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가 세운 진리교회.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으로부터 교회를 빼앗겼던 교회는 이판일 장로 가정에서 밀실예배를 드리다 발각돼 교인 48명이 순교를 당했다.한국교회 최초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가 세운 진리교회.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으로부터 교회를 빼앗겼던 교회는 이판일 장로 가정에서 밀실예배를 드리다 발각돼 교인 48명이 순교를 당했다.초창기 임자 진리교회를 이끌었던 이판일 장로 일가 묘원. 마을 인근 백산에서 순교를 당한 뒤 교회에서 마련한 묘원에 이장됐다.초창기 임자 진리교회를 이끌었던 이판일 장로 일가 묘원. 마을 인근 백산에서 순교를 당한 뒤 교회에서 마련한 묘원에 이장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지방좌익 등 적대세력에 의해 피해가 가장 큰 호남지역 안에서도 신안군 임자도, 지도, 자은도 일대 피해가 크다고 보고 직권조사하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4월부터 임자도 순사자 992명 명부를 확보해 진실규명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미경 조사과장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신안 진리교회에서 1950년 10월 3일 발생한 진리교회 48인 희생사건을 진행하고 있고, 현재까지 신청인 이성균 목사 진술 조사가 끝났고, 저희가 7월에 다시 내려가서 참고인 조사 또 기록조사를 통해서 순사자 명부와 관련 기록들을 다 확인해서 48명의 희생 사실을 모두 확인할 예정입니다."

    서남해안 섬들 중에도 손꼽히는 비경을 자랑하는 임자도. 그곳에도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잊을 수 없는 핏빛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CBS뉴스 송주열입니다.


    영상기자 이정우
    영상편집 서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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