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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죽자"던 흙수저 사제 '애증의 10년' 화려한 피날레의 꿈



스포츠일반

    "같이 죽자"던 흙수저 사제 '애증의 10년' 화려한 피날레의 꿈

    여자 탁구 간판 전지희-소속팀 포스코에너지 김형석 감독 인터뷰

    한국 여자 탁구 국가대표 전지희(왼쪽)와 소속팀 포스코에너지 김형석 감독이 일본 도쿄 출국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올림픽 필승을 다짐하는 모습. 인천=노컷뉴스한국 여자 탁구 국가대표 전지희(왼쪽)와 소속팀 포스코에너지 김형석 감독이 일본 도쿄 출국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올림픽 필승을 다짐하는 모습. 인천=노컷뉴스

    한국 탁구 '흙수저 사제'가 10여 년 애증의 세월의 화려한 마무리를 꿈꾸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 메달로 땀과 눈물로 점철됐던 지난날을 웃으며 추억하겠다는 각오다.

    여자 탁구 간판 전지희(29)와 소속팀 포스코에너지 김형석 감독(59)이다. 탁구계의 비주류였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는 둘은 10여 년 동안 부녀처럼 지내온 세월의 마침표를 준비하 고 있다. 5년 전 리우데자네이루의 아픔을 딛고 도쿄에서 부활을 정조준한다.

    전지희는 오는 23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에서 여자 단식과 단체전, 혼합 복식에 출전한다. 여자 대표팀에는 무서운 막내 신유빈(17·대한항공)이 있지만 역시 간판은 전지희다. 세계 랭킹 15위로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전지희는 두 차례 아시안게임과 리우올림픽까지 국제 대회 경험이 풍부하다.

    한국 나이로 30살이 된 전지희에게 이번 올림픽은 마지막일 수 있다. 전지희도 "선수 인생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 모른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어 "준비하면서 이미 하늘이 감동할 만한 과정을 이겨냈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마지막은 김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다. 올해를 30년의 지도자 생활의 사실상 마지막 해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그동안 각종 국내외 대회를 치르면서 성과도 냈지만 지도자 생활의 마지막 목표는 올림픽 메달"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둘은 올림픽 무대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셨다. 5년 전 리우올림픽에서 김 감독은 여자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전지희와 함께 나섰지만 노 메달에 머물렀다. 전지희는 여자 단식 8강에서 탈락에 메달이 무산됐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지난 10여 년 동고동락했던 노력의 세월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지난 2009년 중국 허베이성 출신의 청소년 대표 출신 전지희를 눈여겨보고 한국으로 데려왔다. 전지희는 당시 중국 국가대표 상비 2군으로 밀려난 상황. 이대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하는 기로에서 김 감독과 함께 한국에서 제 2의 인생을 열기로 결심했다.

    반대도 많았다. 국내 선수 육성보다 귀화 선수를 데려온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국 탁구 저변이 너무 열악해 좋은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일본의 경우처럼 귀화 선수가 아무래도 선진 탁구로 실력이 낫기 때문에 국내 선수들을 이끌면서 좋은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영입을 관철시켰다.

    지난 2017년 대만유니버시아드대회 당시  전지희는 여자 단식과 여자 단체전, 혼합 복식(파트너 장우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3관왕에 올랐다. 포스코에너지 지난 2017년 대만유니버시아드대회 당시 전지희는 여자 단식과 여자 단체전, 혼합 복식(파트너 장우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3관왕에 올랐다. 포스코에너지 

    과연 전지희는 한국 여자 탁구를 선도했다. 귀화 선수 국가대표 자격을 얻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혼합 복식 동메달을 따낸 전지희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도 여자 단식과 단체전 동메달을 수확했다. 세계 최강 중국과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강호들이 출전하는 아시안게임은 올림픽만큼 메달 획득이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준수한 성과였다. 국내 대회에서도 전지희는 2011년 창단한 신생팀 포스코에너지를 단숨에 정상급으로 올려놓았다.

    이런 성공에는 김 감독의 헌신적인 지원이 있었다. 김 감독은 전지희를 국가대표로 만들기 위해 국제대회에 출전하느라 전 세계 각지를 돌았다. 김 감독은 "1년에 12번 정도 해외에 나갔는데 11년이면 아마 지구를 30바퀴는 돌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지진이 나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칠레오픈 등 너무 힘들어서 '우리 같이 죽자' 이런 적도 많았다"고 지난날을 돌아봤다. 그렇게 세계 강호들과 겨루면서 실력이 늘었고, 세계 랭킹도 오르면서 태극 마크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무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던 김 감독의 아픈 사연이 힘이 됐다. 김 감독은 유남규 삼성생명 여자팀 감독,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 김택수 미래에셋증권 감독 등 화려한 선수 경력의 후배와 달리 인하대 졸업 뒤 실업 생활 없이 지도자에 입문했다. 당초 김 감독은 군 제대 후 명지여고 교사로 부임하려 했지만 '한국 탁구의 대부' 이유성 전 대한항공 스포츠단장이 1992년 전격 대한항공 코치로 발탁한 것.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에 김 감독은 한 발 더 뛰었다. 김 감독은 "(선수 경력이 화려한) 다른 지도자들이 장교라면 나는 이등병부터 시작했다"면서 "대표팀 훈련을 할 때마다 매일 2시간 넘게 운전해서 지도 방법을 배웠다"고 돌아봤다. 그런 노력에 김 감독은 국가대표 코치로도 발탁돼 1999년 세계선수권 복식(박해정-김무교), 2000년 시드니올림픽 복식(김무교-류지혜) 동메달을 수확해냈다.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이상수(삼성생명)-박영숙(은퇴)의 혼복 은메달도 이끌었다.

    포스코에너지 전혜경 코치(왼쪽부터), 김형석 감독이 경기 중 전지희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모습. 더 핑퐁 안성호 기자포스코에너지 전혜경 코치(왼쪽부터), 김형석 감독이 경기 중 전지희에게 작전을 지시하는 모습. 더 핑퐁 안성호 기자
    그런 김 감독에게 전지희는 지도자 생활의 마지막 작품. 특히 무명이었던 자신처럼 전지희도 중국 탁구에서 밀려났던 만큼 더 애정을 쏟았다.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대표팀에서 전지희에게 중국 출신 개인 코치를 붙여야 한다는 것도 김 감독의 주장이었다. 지도자의 자존심보다는 어떻게 하면 선수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까 하는 배려를 더 생각한 것이다.

    김 감독과 전지희는 아시안게임에서는 나름 성과를 냈고,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메달 4개를 따냈지만 올림픽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올림픽에서 반드시 메달을 따야 한다는 압박감은 있다. 전지희는 "메달 획득에 대한 부담은 분명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늘이 감동할 노력을 한 만큼 최선을 다하고 승패는 하늘에 맡기겠다"는 각오다.

    김 감독도 "이제 나는 국가대표 지도자로서도, 팀 감독으로서도 역할을 다했다"면서 "소속팀은 유능한 전혜경 코치가 감독을 맡으면 된다"고 지도자 은퇴를 암시했다. 이어 비록 도쿄 현장에 오지는 못하지만 "전지희가 마지막 올림픽을 메달로 장식해 스승에게 멋진 선물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자를 응원했다.

    귀화부터 태극 마크를 달기까지 울고 웃으며 10여 년 세월을 보낸 '흙수저' 사제. 과연 각각 선수와 지도자 인생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 도쿄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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