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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다고요? 헐크는 성낼지언정 눈물 흘리진 않습니다"



스포츠일반

    "울었다고요? 헐크는 성낼지언정 눈물 흘리진 않습니다"

    강동궁, 2021-22시즌 프로당구 개막전 극적 역전 우승

    '헐크의 포효' 강동궁이 22일 끝난 블루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경주=PBA

     

    당구 3쿠션 사상 역대 최대 우승 상금이 걸렸던 지난 3월 프로당구(PBA) 투어 왕중왕전. 'SK렌터카 PBA 월드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우승 상금 3억 원을 거머쥔 29살의 스페인 청년은 물론 1만km 떨어진 고국의 여자 친구도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다비드 사파타(블루원리조트)가 주인공이었다. 팀 동료 서한솔을 비롯해 SK렌터카 소속인 에디 레펜스,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까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극적인 승부였기 때문이다. 당시 결승전에서 사파타는 4시간이 넘는 혈투 끝에 9세트 풀 세트를 견디며 5 대 4 승리를 거뒀다. 상대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친 가운데 거둔 드라마였다.

    하지만 당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를 펼친 아름다운 패자는 울지 않았다. 사파타와 띠 동갑 선배인 '헐크' 강동궁(SK렌터카)이었다. 강동궁은 눈물 대신 미소를 지으며 사파타의 우승을 축하해줬다.

    지난 시즌 PBA 왕중왕전 결승에서 명승부를 펼친 사파타, 강동궁이 경기 후 포옹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 PBA

     

    3개월여가 지나 이뤄진 재대결. 둘은 21일 경북 경주 블루원리조트에서 열린 2021-22 개막전인 '블루원리조트 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다시 맞붙었다.

    PBA 출범 시즌인 2019년 12월 'SK렌터카 챔피언십'까지 얄궂게도 3번 모두 결승에서 이뤄진 대결이었다. 이전까지는 1승 1패, 누가 진정한 PBA의 승자인지 가를 한 판이었다.

    결승 초중반은 사파타의 분위기였다. 사파타는 팀 동료인 '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가 전날 여자부 우승을 차지한 기운을 잇는 듯했다. 1~3세트를 내리 따내며 타이틀 스폰서 블루원리조트의 동반 우승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헐크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3세트 승리를 1점을 남겨놓고 뺏기며 벼랑에 몰린 강동궁은 4세트 10점을 몰아치며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5세트에서도 사파타가 먼저 매치 포인트를 맞았지만 실수를 범했고, 강동궁이 이를 놓치지 않고 세트를 가져갔다.

    6세트에서도 강동궁의 뒷심이 빛났다. 6 대 13으로 뒤진 가운데 상대의 3뱅크샷이 실패한 틈을 타 연속 7점으로 세트를 따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7세트에서도 5 대 9로 뒤진 가운데 강동궁은 힘이 넘치는 앞돌리기 대회전으로 분위기를 바꾼 뒤 연속 6득점으로 다음 날로 이어진 3시간여 승부를 결정지었다.

    강동궁(왼쪽)이 블루원리조트 윤재연 대표로부터 우승컵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주=PBA

     

    경기 후 강동궁은 "이렇게 이기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면서 "편찮으신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꿈에 나와 웃으셨는데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좋은 징조가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당구 인생에서 이런 역전승을 거둔 적이 없었는데 이뤄낸 성취감에 기분이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3개월 전의 승부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동궁은 "당구에서 그렇게 큰 상금은 최초였고, 다시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마지막에 아깝게 져서 진짜 한두 달 잠을 설쳤다"고 돌아봤다. 이어 "당구 인생에 큰 아픔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헐크는 울지 않았다. 강동궁은 "왕중왕전 준우승을 했을 때도 눈물은 흘리지 않았고, 사실 오늘 우승했을 때도 울려고 수건을 덮고 감정을 잡아봤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강동궁이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 결승에서 극적인 우승을 이룬 뒤 수건으로 얼굴을 덮은 채 감격스러워 하고 있다. 경주=PBA

     

    대신 헐크처럼 더 강하게 밀고 나갔다. 강동궁은 "3세트 세트 포인트를 먼저 잡고도 지면서 승부에 대한 욕심은 없어졌다"면서 "져도 강동궁다운 파워 넘치는 샷을 보여주자고 생각하고 팔꿈치 부상에도 힘을 다해 스트로크를 구사했다"고 돌아봤다.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강동궁은 "한 세트만 지면 끝이니까 지더라도 앞에서 보이지 못한 강한 모습을 보이자고 했더니 팔도 가벼워지고 4세트부터 잘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승부에 대한 마음 접고 나다운 멋있는 공을 치려고 했는데 당구에 대한 실력보다 상복이 따른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사파타도 "강동궁이 공격적이고 PBA와 한국에서도 훌륭한 선수"라면서 "그래서 이기고 있었지만 끝나지 않았다 생각을 했다"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아쉬웠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눈물 대신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했던 헐크의 각성이 우승으로 연결된 강동궁의 대역전 드라마였다. PBA 역사에서 결승전 3세트를 먼저 내주고 4세트를 이긴 것은 강동궁이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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