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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 용의자로 몰린 순간 온 가족 불행해져"



경인

    "화성연쇄살인 용의자로 몰린 순간 온 가족 불행해져"

    이춘재 연쇄살인 용의자 19살 청년, 3개월만에 풀려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암 발병…7년 투병 끝 숨져
    친형 "동생 이어 아버지 돌아가셔…혼자 남아"
    진화위 조사 통해 "누명 씌운 경찰관 책임 묻고 싶어"

    윤동기(57·사진)씨의 동생 윤동일 씨는 1990년 경기 화성에서 발생한 이춘재 연쇄살인 9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3개월간 붙잡혔다 풀려났다. 곧이어 윤동일 씨는 암이 발병해 투병 생활을 하다 27살에 숨졌다. 정성욱 기자

     

    "동생이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린 순간부터 온 가족이 불행해졌어요. 동생이 죽고,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남은 건 저 혼자입니다."

    26일 경기도 수원의 한 사무실에서 윤동기(57)씨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윤씨는 20여년 전 동생 윤동일 씨를 잃었다. 7년 동안 암과 싸우다 세상을 등진 동생의 나이는 스물 일곱이었다.

    윤씨는 동생에게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씌운 경찰의 강압수사가 동생 삶을 앗아갔다고 말했다.

    윤씨는 "동생이 암에 걸린 건 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고 경찰에게 고문까지 받았기 때문"이라며 "암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힐 순 없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여성을 살해한 범죄자로 몰리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5일째 행방불명 된 동생…TV에서 살인사건 용의자로 마주해

    동생은 이춘재 연쇄살인 9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경찰에 체포됐다. 9차 사건은 1990년 11월 경기 화성시 태안읍 야산에서 김모(13)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춘재는 9차 사건 등 자신이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하루 아침에 용의자가 된 동생은 가족도 모르는 사이에 경찰에 붙잡혀갔다. 출근하겠다고 집을 나선 동생의 소식이 끊긴 지 5일째. 가족들은 TV에서 동생 얼굴을 봤다. 화면에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9차 범인 윤OO'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윤씨는 "4~5일간 동생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부모님도 경찰서를 찾아가며 동생을 찾았다"며 "그러던 중 TV에서 살인사건 용의자라는 내용과 함께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고 황당했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윤씨는 곧바로 동생을 찾아갔다. 동생은 9차 사건을 재연하는 현장 검증을 하고 있었다. 동생의 얼굴은 그늘져 있었다. 윤씨는 동생을 향해 외쳤다.

    동생은 형을 향해 소리쳤다. "저는 범인이 아닙니다. 경찰 고문에 의해 허위자백을 한 겁니다." 그 자리에서 현장 검증은 서둘러 마무리됐다.

    다음날 만난 동생의 얼굴은 부어있었다. 얼굴엔 연고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순간 '맞았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윤씨는 "경찰이 사건을 억지로 끼워 맞춰서 현장검증까지 갔는데, 기자들이 모인 현장에서 자기가 '범인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화가 나 밤새 동생을 때렸을 것"이라며 "면회실에서도 경찰이 동생 바로 뒤에서 지키고 있어 몇 마디 나눠보지도 못하고 헤어졌다"고 말했다.

    윤씨는 경찰이 동생에게 진술서를 27번이나 쓰게 했다고 했다.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실제로 한 것처럼 조작하기 위한 세뇌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석달이 지나서야 동생은 구치소에서 나왔다. 유전자 검사 결과 동생이 범인이 아니라고 판명났기 때문이다.

    ◇살인범 누명 이후 발병한 암…송두리째 뿌리 뽑힌 가정사

    이춘재 연쇄살인 9차 사건의 용의자로 경찰에 체포되기 이전인 고등학생 시절의 윤동일(1997년 사망)씨 모습. 윤동기 씨 제공

     

    불행은 이내 찾아왔다. 다시 회사를 다니던 동생의 몸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갈비뼈에서 시작된 암은 7년간 동생을 괴롭혔다. 지난한 투병생활을 하던 동생은 27살에 세상을 떠났다.

    윤씨는 "동생은 인생에서 즐거웠던 시절이 없었다"며 "살인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붙잡히고, 풀려나서는 암에 걸려 투병만 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동생의 기구한 인생을 안타까워했다.

    동생이 떠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2년 전에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모아둔 돈은 동생 변호비와 치료비로 모두 썼다. 윤씨에게도 이제 남은 게 없다.

    윤씨는 자신의 삶도 너무나 기구하다고 했다. 윤씨는 이춘재와 중학교 동창이다. 친구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이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시작된 악연이 윤씨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RELNEWS:right}

    ◇진실화해위 조사 신청 "당시 수사 책임자 대가 치러야"

    윤동일(사진·1997년 사망)씨는 살인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붙잡혔다 풀려난 지 1년이 채 되기 전에 암을 얻었다. 윤동기 씨 제공

     

    윤씨는 동생을 죽음으로 내몬 당시 경찰관들에게 더 화가 난다.

    그는 "지금은 사람을 고문한다거나 강압수사를 하는 게 말이 안 되지만 그땐 가능한 시대였다"며 "동생과 우리 가족을 망가트린 사람들 모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씨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피해자들과 함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사건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8차 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 이춘재에게 살해 당한 딸이 30년간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 김용복 씨가 그와 함께 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폭력·인권유린 사건 등 300여 건을 조사할 예정이다.

    윤씨는 "저희뿐만 아니라 이춘재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고, 억울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반면, 당시 수사 담당자들은 사건을 해결했다며 승진도 하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어 "이춘재 사건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경찰이 동생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지 않았더라면 나도 가족들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라며 "당시 수사 경찰관들은 반드시 자신들의 잘못을 책임져야 하며,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는 과거 공권력에 의한 지속적인 폭력이나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생존자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이메일(wk@cbs.co.kr)이나 유선전화(031-239-1000)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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