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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말괄량이 삐삐의 진정한 시작 '비커밍 아스트리드'



영화

    [노컷 리뷰]말괄량이 삐삐의 진정한 시작 '비커밍 아스트리드'

    외화 '비커밍 아스트리드'(감독 페르닐레 피셔 크리스텐센)

    외화 '비커밍 아스트리드' 스틸컷. 알토미디어㈜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우리가 좋아하는 소설, 좋아하는 작가는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기에 이러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를 엿보고 싶은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외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소설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이자 한 여성 그리고 엄마였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시작점을 들여다본다.

    1920년대 스웨덴 시골 마을에 사는 아스트리드(알바 어거스트)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10대 소녀다. 그러나 당시 시골에서 10대 소녀에게 허락된 일이란 집안일을 돕거나, 동생들을 돌보거나 하는 등의 일뿐이다. 게다가 기독교 집안인 까닭에 이성 교제는 물론 머리 모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오빠는 늦게 귀가해도 되지만 아스트리드는 늦어선 안 된다.

    아스트리드는 자유분방하고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러나 당시 사회와 엄격한 집안 분위기는 그를 작은 세상 안에 가둬둔다. 아스트리드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글솜씨를 자랑했다. 이를 알고 아끼던 아버지는 딸이 지역 신문사 인턴으로 일할 수 있게끔 돕는다.

    그곳에서 아스트리드는 이혼 소송 중인 편집장 블롬버그(헨릭 라파엘센)를 만나게 되고,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세간의 이목을 피해 덴마크로 떠나 홀로 아이를 낳는다. 그는 이혼 소송 중인 블롬버그를 위해 아이는 잠시 덴마크 위탁 가정에 맡기고, 이후 덴마크와 스웨덴을 오가게 된다.

    외화 '비커밍 아스트리드' 스틸컷. 알토미디어㈜ 제공

     

    책 내용은 몰라도 '삐삐'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이 <말괄량이 삐삐(Pippi Longstocking·삐삐 롱스타킹)>다. 뒤죽박죽 별장에서 사는 빨간 머리 주근깨 소녀 삐삐는 엄청난 괴력을 가졌고, 때때로 어른들을 놀라게 만든다.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도 잘하고, 괴롭힘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는 착한 마음씨도 지닌 캐릭터다. 삶에 순응하지 않고 자유롭게, 모든 아이가 꿈꾸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삐삐다.

    영화 속 노년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어린 독자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는다. 편지 내용은 대부분 어쩌면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냐는 것이다. 삐삐의 삶을 마주한 어린 독자들은 삐삐를 만들어 낸 린드그렌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까 궁금한 것이다.

    자유롭고 사회에 순응하지 않으려 하는 삐삐의 삶에는 린드그렌 자신이 녹아들어 있다.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이처럼 스웨덴 시골 10대 소녀 아스트리드가 시련을 겪은 뒤 잠시 잊었던 진짜 자신을 되찾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것이 바로 삐삐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외화 '비커밍 아스트리드' 스틸컷. 알토미디어㈜ 제공

     

    보수적이고 여성에 대한 제약이 있던 시기, 스웨덴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아스트리드는 생기가 넘치고 빛나는 인물이었다. 그런 아스트리드는 어린 나이에 이혼 소송 중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고, 홀로 아이를 낳고,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지며 그리움과 아픔을 쌓아간다. 그렇게 아스트리드는 어른이 되어간다.

    이후 블롬버그가 청혼을 해 오지만 아스트리드는 이를 거절하고 미혼모의 길을 선택한다. 혼외 임신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날카롭게 쏟아지던 시기지만, 아스트리드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엄마의 길을 당당하게 걷는다. 스스로 힘으로 엄마로서, 아스트리드로서 정신적 자립을 택한 것이다. 누구보다 용기 있는 여성이자 한 존재의 모습만으로도 감동을 안긴다.

    영화는 여기까지의 모습만 담는다. 흔히 전기소설이나 전기영화 기준에서 생각한다면 아스트리드가 삐삐를 구상하고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까지 담아내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한 엄마이자 한 존재로서 다시 선 시작점까지만 그린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이 사실상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으로서 걸어 나가기 위한 '자기만의 방'을 마련하기까지를 보여준 것이다.

    외화 '비커밍 아스트리드' 스틸컷. 알토미디어㈜ 제공

     

    여기까지 걸어온 아스트리드의 모습은 삐삐와 크게 동떨어지지 않는다. 여자지만 여자라서 할 수 없다는 세간의 시선과 제약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강인하다. 누군가는 말썽꾸러기라 할 수 있지만, 그건 그가 가진 자유분방함에서 유래한다. 무엇보다 그는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다. 삐삐의 기원과 탄생 배경은 아스트리드의 10대, 20대 시절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스트리드가 아이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들을 대변한 듯한 소설을 집필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아이와 당시 10대 소녀가 놓인 위치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와 아스트리드 안에는 '자유'라는 동일한 가치가 내재했기에 삐삐라는 아이들의 우상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수 있다.

    알바 어거스트는 영화 내내 눈빛과 얼굴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10대, 20대 삶과 내면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스크린에서 그의 얼굴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뇌리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된 알바 어거스트의 연기가 맴돈다.

    123분 상영, 5월 12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비커밍 아스트리드' 포스터. 알토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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