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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업계로 확산된 임금인상 도미노…출혈경쟁 vs 마땅한 댓가



기업/산업

    플랫폼 업계로 확산된 임금인상 도미노…출혈경쟁 vs 마땅한 댓가

    디지털 전환↑ 인력수요 늘고 인재 영입 치열…"비정상의 정상화"
    "인재 빼앗길까" 회사 규모 상관없이 일단 인상하고 보자
    연봉 인상, 가격 인상 우려…"신입초봉, 기존 경력직보다 높으면 내부혼란 가능성도"

    연합뉴스

     

    IT업계에 연봉 인상 바람이 거세다. 코로나19가 디지털 전환 속도에 불붙이면서 IT기업들은 인력 유출을 막고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파격적인 보상을 내세우고 있다.

    그동안 '개발자 착취'나 다름없었던 업계 풍토가 바로잡히는 현상이라는 분위기도 있지만, 과도한 출혈 경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연봉 인상 도미노' 행렬에 끼지 못하면 유능한 인재를 타사에 빼앗길 수 있기 때문에 성과에 따른 보상이나 기업의 전략이 아닌 경쟁적으로 연봉을 올린 측면도 있어 큰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넥슨發 게임 업계 '몸값' 전쟁, 배달 등 플랫폼 업계로 확산

    16일 IT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 넥슨으로 시작된 연봉인상 릴레이가 게임 업체는 물론 야놀자, 요기요, 리디북스 등 플랫폼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5일 전자책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텐츠 기업 리디는 신입 개발자 초봉을 5천만 원으로 올려잡고 시니어급 개발자 등이 이직할 경우 5천만 원의 보너스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배달앱 요기요를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도 연구개발(R&D) 조직을 최대 1천명까지 확대하고 평균 연봉을 최대 2천만 원까지 인상 지급하기로 했다.

    IT 업계 연봉 인상 경쟁은 앞서 지난달 1일 게임업체 넥슨이 신입 개발자 초봉 5천만 원에 재직자 연봉 일괄 800만 원 인상을 선언하면서 촉발됐다. 넷마블이 아흐레 뒤 넥슨과 똑같은 안을 발표했고, 이어 컴투스·게임빌·스마일게이트도 연봉 800만 원 인상과 초봉 상향을 약속했다.

    그러자 지난달 말 크래프톤이 개발자 초봉 6천만 원에 재직 개발자 연봉 일괄 2천만 원 인상을 선언했다.

    대기업·중견기업이 개발자 확보에 나서자 중소 게임사들도 잇달아 연봉 인상 대열에 합류하면서 재직자 사수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중견 게임사 웹젠도 지난 9일 연봉과 인센티브, 전사 특별 성과급(200만 원)을 더해 임직원 연봉을 1인당 평균 2천만 원씩 인상했다. 조이시티와 자회사 모히또게임즈도 연봉 1천만 원 인상을 발표했고, 베스파는 연봉 1200만 원 인상을 약속했다. 부동산 스타트업 직방도 개발자 연봉 2천만 원 일괄 인상과 신입 사원 초봉 6천만 원 보장을 내걸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금전적 여유 없지만, 인재 빼앗길까" 회사 규모 상관없이 너도나도 연봉 인상

    게임 업계에서 시작된 연봉 인상 릴레이에 중소 게임사는 물론, 다른 IT업체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특히 수백억 원대 적자를 기록하는 중소게임사마저 연봉 인상 경쟁에 합류할 정도로 '출혈 경쟁'이 심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견 게임사 조이시티의 지난해 연간 매출은 1653억 원, 영업이익은 206억 원이다. 영업이익이 약 58배(1조 1907억 원) 많은 넥슨보다 조이시티의 임금 인상 폭이 더 컸던 셈이다. 심지어 베스파는 지난해 318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음에도 올해 나오는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이유로 임금 인상 릴레이에 동참했다. 베스파는 자금 사정이 계속 좋지 않아 지난달 25일 관리종목 지정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공시가 뜨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 게임사에서도 임직원들이 '다른 회사랑 일의 강도는 똑같은데 왜 월급이 적냐'며 항의하는 일이 많다"면서 "인재를 빼앗기면 게임의 질이 떨어지고 회사가 어려워져 또 인재 수급이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연봉 인상을 고민하는 게임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중견 게임사 관계자는 "연봉 인상은 결국 더 큰 성과 압박과 야근·밤샘을 반복하는 폐해를 뜻하는 '크런치' 모드의 강화, 단기 매출을 노리는 아이템 뽑기 장사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건강한 방향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넥슨 전경. 연합뉴스

     

    ◇"판교의 꺼지지 않는 등대" 비정상의 정상화…"그동안 고생 이제야 보상"

    게임 개발자들은 최근의 연봉 인상 흐름을 '비정상의 정상화'로 보는 분위기다. 국내 게임 산업이 급속히 커지고 있기 때문에 개발자에 대한 대우가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목소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놓은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9년 15조 5750억 원이었던 국내 게임 산업 규모는 언택트(비대면) 서비스가 강세를 보였던 지난해 17조 93억 원으로 10%가량 커졌다.

    그 과정에서 넥슨이나 스마일게이트, 크래프톤, 웹젠 등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게임 출시를 앞두고 "야근이 비일비재했던 게임 개발자에 대한 대우가 이제야 바로잡히고 있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발자는 "게임업계가 '판교의 불 꺼지지 않는 등대'라고 불릴 정도로 근무 강도가 강하지 않았느냐"며 "게임이 주류 콘텐츠로 인정받는 만큼 게임 개발 직군도 이제 우수 인력으로 대우받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른 개발자는 "그동안에는 히트작을 만든 개발팀이나 극소수 리더급만 보너스를 챙기는 구조여서 전체로 보면 박탈감이나 성과 압박이 심했다"며 "그동안 고생한 것이 이제야 보상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봉 인상은 곧 가격 인상…대박 조직에만 인센티브 '평균의 함정'도

    그럼에도 우려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연봉 인상이 기업의 신중한 전략이나 체계적 시스템에 따른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에 의해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다. 이는 곧 지속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진다. 연봉 인상이나 성과급 지급이 일시적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매년 연봉인상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또 릴레이식 연봉 인상이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전가될 것이란 시선도 있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건비 상승으로 늘어난 회사 부담은 신규 게임 아이템을 더 비싸게 내놓는 등 후속 조처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높은 수준에서 신입 초봉이 새로 책정되면서 조직 내부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력이 많은 직원보다 신입사원 연봉이 더 높은 '임금 역전 현상'이 일어날 수 있어서다. 연봉이 기존 연공서열을 중심에서 직무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으나, "한국적 조직문화와 사고방식에 비춰보면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연봉 인상 경쟁에도 '평균의 함정'은 여전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 게임사 임원은 "몇몇 기업을 제외하면 연봉 인상안 발표에 '평균'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지 않으냐"면서 "대박 게임을 만든 조직에만 더 큰 인센티브를 주고, 나머지 개발자들 처우 개선은 별로 없는 회사가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연합뉴스

     

    ◇잇따른 파격 연봉 인상에 네이버·카카오 '난감'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 체계로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네이버와 카카오는 이같은 IT 업계의 연봉 인상 바람에 난감한 처지가 됐다.

    이미 두 회사는 지난해 연말 노사 협상을 통해 임금을 6~7%가량 인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게임업계에 번지고 있는 현금 보상 대신 미래 성장에 방점을 찍은 주식 위주의 보상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IT업계는 물론 비IT업계까지 파격적인 연봉 인상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빛이 바랬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기저 효과에 따른 '착시현상'이 나타났다는 지적도 있다. 엔씨소프트는 'IT업계 최고수준'이라고 자평한 처우 개선을 통해 개발자 5500만 원, 비개발자는 4700만 원 수준으로 초봉을 올렸다. 그런데 이는 현재 네이버·카카오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직원들 불만이 가라앉지 않고 있어 네이버는 이달 24일 주주총회 후 이사회에서 임직원 보상 문제를 논의한다. 카카오도 직원 평가·보상 문제를 논의하는 태스크포스(TF) '길'을 만든다.

    앞서, 지난 12일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전 직원들에 이메일을 보내 "세상이 다들 보상만 이야기할 때 우리는 사업에 대해서 점검하고 고민 먼저 해야 한다. 사업이 잘돼야 결국 좋은 보상이 지속해서 이뤄진다"며 "나도 이 회사를 떠나기 전에 '해진이 형이 쏜다' 뭐 이런 거 한번 해서 여러분에게 칭찬받고 사랑받고 하는 것을 한번 해보고 싶긴 하다"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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