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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운동의 상징 건축물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철거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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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노동운동의 상징 건축물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철거 위기

    종교·노동·시민단체 "민주화 유산 보존해야" 대책위 발족
    여성노동운동 상징 '동일방직 사건' 주도
    정부도 '한국 민주화·인권 신장 기여' 인정
    조합 측 "교회 가치는 알지만 10여년 만에 겨우 재개된 재개발인데…"

    옛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현 미문의일꾼교회) 모습. 주영민 기자

     


    우리나라 노동운동 역사의 상징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인천 동구 옛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현 미문의일꾼교회·이하 인천산선) 건물이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 건물의 가치에 대해서는 종교계와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주민 모두 인정하지만 보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 종교·노동·시민단체 "민주화 유산 보존해야" 대책위 발족

    26일 인천 지역 종교계와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등에 따르면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와 대한기독교감리회 중부연회 등 10여개 단체들은 지난 22일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보존대책협의회(이하 협의회)를 발족해 해당 건물에 대한 보존 활동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3일 보도자료를 내 "인천산선은 우리나라 민주화 관련 유산이자 인천지역의 산업유산"이라며 "해당 지역에 재개발조합이 결성된 이후 10년간 계속 건물 보존을 요청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협의회를 발족해 공동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활동 배경을 알렸다.

    이들이 뭉친 건 옛 인천산선 건물이 있는 동구 화평동 1-1번지 일대가 최근 화수화평구역 재개발사업 부지에 포함돼 철거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해당 구역은 지하 3층∼지상 38층, 31개동 3천200여 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로 조성될 예정이다. 최근 현대건설을 시행사로 확정하는 등 사업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09년부터 추진됐지만 이후 지지부진하다가 지난해 다시 재추진됐다.

    교회 소유권자인 기독교대한감리회유지재단은 최근 재개발조합 측에 교회 건물의 보존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의견서에는 경기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교회와 인천산선 건물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관련해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 교회라는 내용이 담겼다.

    제암리 교회는 일제 강점기인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이 벌어졌던 곳이고, 인천산선은 1978년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의 효시 격인 '동일방직 사건' 때 여성 노동자들이 피신했던 곳이다.


    옛 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모습 (사진=인천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 보존대책협의회 제공)

     


    ◇ 우리나라 여성노동운동의 상징 '동일방직 사건' 주도

    인천산선과 관련한 동일방직 사건은 1978년 2월21일 쟁의 중인 동일방직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에게 반대파가 똥물을 뿌린 사건이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초창기 대표 사례이자 여성노동운동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1970년대 우리나라 노동 상황을 연구한 미국 하와이대 구해근 교수가 2002년 발간한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보면 박정희 정권은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강력한 노동탄압 정책을 펼쳤다.

    당시 우리나라 공장노동은 대단히 힘들고 비인간적이었다. 그 근원은 '비자발적 잔업'에 있었다. 잔업은 2~3시간 더 일하는 수준이 아닌 밤새 일하는 것을 의미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요일 하루를 잠으로 보내는 게 일상이었다. 일부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각성제를 제공하기도 했다. 기본 급여가 적었기 때문에 공장 노동자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생활 전부를 공장에 바쳐야 했다.

    당시 노동운동은 소규모 봉제공장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노조가 회사에 요구한 사안들은 “하루에 4시간은 잘 수 있게 해달라”, “다쳤을 때 병원에 갈 수 있게 해달라” 등이었다.

    1970년대 노동운동의 특징은 여성노동자에 의해 주도됐다는 점과 노조활동가와 교회조직 간 긴밀한 결합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투쟁 중인 노동자들이 외부 교회조직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노동자들이 다른 곳에 도움을 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당이나 노동청, 한국노총 모두 노동운동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동일방직 내 노동운동은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낸 사례로 꼽힌다. 여성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수면 시간 보장 등을 요구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회사가 남성노동자들을 동원해 노조를 탄압했다. 이 과정에서 남성노동자들이 여성노동자들에게 똥물을 투척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정부는 동일방직 노조가 인천산선의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며 인천산선을 이적단체라고 선전하기도 했다. 노조는 서울 명동성당과 인천선산으로 각각 단식투쟁을 하는 등 저항했지만 회사는 1978년 4월 1일 노동위원회 승인으로 조합원 126명을 모두 해고했다.

    이후 해고자 명단을 담은 블랙리스트가 각 기업체에 돌면서 이들의 재취업도 이뤄지지 않았다. 2001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해고자 가운데 73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고, 34명의 복직을 권고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일방직 사건은 이후 민주노조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회사와 정부, 노총이 모두 노동자를 탄압한 일은 역설적으로 민주노조의 필요성을 야기했으며, 이 흐름은 훗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설립의 밑거름이 됐다.


    1978년 동일방직 노조 조합원에게 회사 편에 선 남성노동자들이 똥물을 투척한 뒤 모습. (사진=동일방직복직투쟁위원회 제공)

     


    ◇ 정부도 '한국 민주화·인권 신장 기여' 인정

    인천산선 역시 자체적으로 우리나라 노동운동과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 1961년 이 교회를 설립한 고(故) 조지 오글(1929∼2020·한국 이름 오명걸) 목사는 1974년 11월 '인민혁명당 조작 사건(이하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양심수들을 위해 공개 기도회를 열었다가 박정희 정부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

    인혁당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도예종 등의 인물들이 기소돼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날조사건이다. 국가가 법을 이용해 무고한 국민을 살해한 사법살인 사건이자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일어난 대표적 인권 탄압 사례로 손꼽힌다.

    그는 미국 의회 청문회에 나가 인혁당 사건의 부당함을 알리는 증언하는 등 힌국의 인권 실태를 세계에 알렸다.

    이 교회의 총무이자 동일방직 노조 탄생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조화순(86) 목사는 동일방직 사건에 대한 강연을 했다는 이유로 연행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정부는 2007년 조 목사에게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올해 6월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는 오글 목사에게 '민주주의 발전 유공 포상' 국민포장을 수여했다.

    현재 인천산선은 도시빈민의 끼니를 돕기 위한 푸드뱅크사업, 장애인 돌붐, 장애인 야학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조합 측 "교회 가치 알지만 10여년 만에 겨우 재개된 재개발인데…"

    재개발조합 측도 인천산선의 가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선뜻 보존에 동의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원도심인 인천 동구의 낙후된 상황을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동구는 6·25전쟁 이후 형성된 피난민촌이 집중된 지역이다. 저소득 1인 가구 거주지역인 쪽방촌을 비롯해 적산가옥, 노후 한옥 등의 건물 형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역 상권 상가 주민들도 이곳에서 70년 가까이 터를 잡아 살아온 고령 주민이 대부분이어서 개발이 더딘 축에 속한다. 인구도 6만여명으로 강화군과 옹진군을 제외하면 가장 적다.

    청장년층의 인구 유입이 절실한 상황에서 10여년 만에 겨우 재추진되는 재개발 기회를 놓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합 측은 내년까지 사업 시행 인가를 받고 2022년 관리처분인가를 거쳐 이주·철거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조합은 교회 건물을 이주하되 교회가 갖고 있는 노동·인권·민주화 정신을 잘 살릴 수 있는 형태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교회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교회 측의 입장도 완강하다.

    인천산선 김도진(63) 담임목사는 "역사 현장을 보존한다는 건 교육의 의미가 강한데 인천산선은 민주화와 노동 여건 개선이 안된 우리나라의 아픔을 그대로 담고 있다"며 "아직 이 시대의 아픔인 비정규직과 외국인노동자 문제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해결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광화문을 옮기지 않고 개발했듯이 이 건물도 충분히 지혜롭게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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