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상구 한 호텔 나이트클럽 입구가 막혀 있는 모습. (사진=박진홍 기자)
부산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이 임차인과 호텔 간의 계약을 둘러싼 분쟁 때문에 나무판에 가로막혔다.
사기계약을 주장하는 임차인 측에서 배상을 호소하며 농성에 돌입한 가운데, 호텔 측은 임차인이 먼저 임대료를 미납했다며 맞서고 있다.
부산 사상구 한 3성급 유명 호텔 앞. 지하 나이트클럽으로 내려가는 문이 검은색으로 칠한 나무판과 현수막으로 가로막혀 어디가 입구인지 알 수 없었다.
현수막에는 "매매할 호텔을 속여서 임대차계약을 한 호텔은 각성하고 책임져라", "사기계약 호텔 측은 세입자와 종사자들의 피해 금액을 즉시 배상하라"는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나무판 옆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이트클럽 소액투자자 A씨가 텐트와 컵라면 등 식료품에 둘러싸인 채 난롯불을 쬐며 홀로 앉아있었다.
A씨는 "이달 초부터 이곳에서 소액투자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밤낮으로 농성하고 있다"며 "호텔 대표와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계속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A씨 등 나이트클럽 투자자들이 농성 중인 장소 내부 모습. (사진=박진홍 기자)
A씨는 지난 2018년 10월 이 호텔 나이트클럽이 문을 열기 전 5천만 원을 투자했다. 나이트클럽 영업 수익을 지분에 따라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이렇게 A씨처럼 나이트클럽에 투자한 소액투자자는 모두 10명이고, 금액을 모두 합치면 5억 원에 달한다.
새로 문을 연 나이트클럽은 몇 달간 정상 영업을 했다. A씨 등 소액투자자들은 수익금을 가져갈 생각에 기대가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호텔 측이 갑자기 나이트클럽 측에 명도소송을 걸어 영업이 중단되면서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이트클럽 임차인 "호텔 정상화 약속 지키지 않아"A씨는 "갑자기 호텔 측에서 3년 뒤에 계약을 종료한다는 화해조서를 쓰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인테리어 비용까지 다 합치면 수십억을 투자했는데 3년 안에 투자금을 어떻게 다 회수하겠느냐. 그래서 화해조서를 안 쓴다고 하니 호텔 측이 명도소송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월 임대료를 내려고 했는데 호텔 측이 안 받으려고 통장을 막아버렸다. 이후 호텔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며 "리모델링으로 호텔이 활성화될 거라고 해 수익을 기대하고 계약을 했는데, 갑자기 매각한다는 건 결국 우리는 사기계약과 호텔의 일방적 갑질을 당한 셈"이라고 말했다.
나이트클럽 대표 B씨는 "계약 당시 호텔 측 실무를 맡은 모 과장이 '호텔에서 50억 원을 투자해 호텔과 부대업장을 리모델링해 재개업할 예정'이라고 분명 이야기했고, 우리는 이를 믿고 계약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문구가 계약서에 들어간 건 아니다. 이유는 호텔 대표를 만나 확인을 받고 싶다고 하니,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돈을 일부라도 걸면 대표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해 호텔이 만들어 온 계약서에 그대로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며 "약속을 지키지 않아 제대로 장사도 못 했는데 3년 뒤에 무조건 나가라고 하니 수십억 손실을 본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덧붙였다.
◇호텔 측 "임차인이 보증금 일부·임대료 미납"호텔 측은 임차인들의 사기계약 주장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다"면서, 계약을 위반한 임차인 측이 오히려 호텔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정면 반박했다.
이 호텔 실무를 맡은 C 전무는 "당시 계약을 담당한 과장은 리모델링 후 개업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며, 이는 검찰에서도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사안"이라며 "계약 당시 임차인 측 대표로 온 사람도 '그런 말 들은 적 없다'고 했으며, 이에 대한 녹취도 있다"고 주장했다.
임차인에게 제기한 명도소송에 대해서는 "임차인 측이 약속한 보증금 일부와 월세 수개월 치를 미납해 '3개월에 걸쳐 연체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계약조건에 따라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6월 1심에서 호텔이 승소한 뒤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며 "이후 법원에서 나이트클럽 유체동산에 대해 지난 10월 말 명도집행을 하자 입구를 막고 농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차인 측이 나이트클럽 홍보용 화물차에 항의 현수막을 걸어놓은 모습. (사진=박진홍 기자)
호텔 측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18년 10월 계약 기간 3년, 보증금 2억 5천만 원에 월 임대료 2500만 원을 주고받는 조건으로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임차인 측이 보증금 잔금 5천만 원을 정해진 기한 안에 내지 않았고, 월 임대료도 1개월분만 낸 뒤 수개월 치를 밀렸다는 게 호텔 측 주장이다.
C 전무는 "이후 임차인이 1달 치 월세만 내려고 시도했고, 호텔에서는 그동안 밀린 보증금과 월세를 한 번에 다 내지 않으면 안 받겠다고 통보했다. 이를 두고 '일방적으로 통장을 막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그러자 1달 치 월세를 공탁했는데, 그런 절차를 알고 있으면 나머지 밀린 월세도 얼마든지 공탁해 낼 수 있음에도 임차인은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호텔을 매각할 거라는 임차인 측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최근 호텔 1층에 은행과 5년 임대계약을 맺었는데 매각할 호텔이면 왜 계약을 하겠느냐"며 "현재 임차인 측이 입구를 불법점유하고, '사기계약'이라는 현수막을 걸어 호텔 이미지 훼손과 영업 방해 등 피해를 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경찰에 고소해 사건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임차인 측은 호텔 대표가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설 때까지 호텔 앞 농성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호텔 측은 나무판을 스스로 치우지 않으면 철거에 나서겠다고 밝혀, 양측의 '강 대 강' 대치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