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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반도체'…이건희 회장의 '결단력'이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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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의 반도체'…이건희 회장의 '결단력'이 없었다면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어린시절 모습(사진=삼성전자 제공)

     

    '반도체'를 빼놓고 지금의 삼성전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 불과 40년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현재 삼성전자는 반도체, 스마트폰 등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지만 1990년대까지도 시장에서는 '2류' 취급을 받았다.

    1980년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1983년 2월, 당시 세계 반도체의 중심이었던 일본 도쿄에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산업에 본격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여기에는 이건희 회장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앞서 이건희 회장은 온갖 비난을 받아가며 1974년 파산 직전에 놓여있던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삼성 반도체'의 기틀을 잡았다.

    1980년대 메모리 시장을 주름잡았던 일본의 D램 시장 점유율은 당시 70%를 넘었다.(2020년 2분기 현재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한국이 73.6%를 차지하고 있다.)

    해외 기술을 수입해 TV를 조립하던 삼성전자가 돌연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하니, 순식간에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실제 일본은 '한국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칼럼을 통해 '삼성의 실패'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반도체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GDP와 교육 수준이 담보된 국가에서만 감당해낼 수 있는 최첨단 산업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주장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삼성전자의 '무모한 짓'은 세계를 놀라게했다.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사진=연합뉴스)

     

    이병철 선대회장 타계 이후, 이건희 회장의 남다른 '반도체 집념'도 서서히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와 관련해 중요한 결정을 해야할 때는 엔지니어들을 직접 불러 의견을 물어보고, 의사결정의 중요한 참고사항으로 사용했다.

    일례로, 1989년 D램의 크기가 4메가를 넘어가자 D램의 저장소 형태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밀도를 높이기 위해 일부 구조물들을 웨이퍼 표면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했는데 그때 나온 대안이 트렌치(trench·참호)형과 스택(stack·위로 쌓음)형이었다.

    문제는 두가지 모두 지금까지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수율과 특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진대제, 권오현 박사가 무언가 잘못됐을 때 구조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스택 방식이 더 좋다고 보고했고, 이를 이건희 회장이 받아들였다.

    당시 후발 업체였던 삼성전자는 IBM, 도시바, NEC 등의 주요 기업들이 트렌치를 택하는 와중에도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소신대로 밀고나갔다. 결국 이 결정은 옳았고, 4메가 D램 개발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이후 삼성전자의 활약은 더욱 눈부셨다. 199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64메가 D램을 개발, D램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면서 반도체 강자가 됐고 이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번도 세계 1위를 내주지 않고 질주했다. 1994년에는 세계 최초 256Mb D램 개발에도 성공했다.

    방호복 입은 이건희 회장(사진=연합뉴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2000년 10월 닷컴버블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D램 시장에 전례없는 불황이 닥쳐왔다.

    64메가 당 20달러에 이르던 D램의 가격이 2001년 2월 3.8달러까지 하락하는 '대폭락'이 발생했고 업친데 덮친격으로 '9.11 테러'까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각 기업들은 300mm 웨이퍼 공장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단 공장 전환에 수조 원의 장비가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자칫 유연성이 필요한 불황의 시기에 유연성을 잃는 악수가 될 수 있기에 각 기업들의 고민이 컸다.

    삼성을 뒤쫓던 일본의 엘피다는 "300mm로의 전환을 9개월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하지만 삼성전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2001년 10월, "300mm 웨이퍼를 기반으로 하는 신형 120나노 기반 D램 양산을 시작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2등 회사가 안정을 추구하고 선두 회사가 모험을 한 셈이었다. 추후 일본의 엘피다도 300mm 레이스에 뛰어들었지만, 이 기간 동안 이미 삼성전자는 기술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해 경쟁업체가 따라올 수 없는 '체급'을 만들었다.

    이후 삼성전자는 2003년 플래시메모리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2011년 모바일 AP 'Exynos' 론칭, 2013년 세계 최초 3차원 V낸드 양산 등 반도체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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