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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인 대부‧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 주역' 서재송 옹 별세



경인

    '해외 입양인 대부‧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 주역' 서재송 옹 별세

    6‧25때 유엔군 소속으로 인천상륙작전‧장진호 전투 참전
    '서해낙도의 슈바이처' 고 최분도 신부와 아동복지시설 운영
    민주화‧도시 빈민 운동에도 투신…굴업도 핵폐기장 반대투쟁위 공동대표도

    고 서재송 옹의 생전 모습 (사진 제공=서재송 옹 유족)

     

    해외 입양인의 대부이자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이끌었던 서재송옹이 투병 중 22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지난달 23일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가천대길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1929년 인천 덕적도 출신인 고인은 부산 수산대(현 부경대) 재학 중에 유엔군 소속으로 미군 제7사단에 배속돼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다.

    전역 후 귀향한 1962년에는 당시 '서해 낙도의 슈바이처'라고 불린 고(故) 최분도(Benedict A. Zweber‧1932~2001) 신부와 함께 덕적도에서 고아 15∼30명과 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이후 인천 동구 송현동, 부평구 부평동으로 이동하면서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했다. 고인의 아동복지시설을 거쳐 간 전쟁고아와 혼혈아동은 무려 1600여 명에 이른다.

    1970년대에는 고 최 신부와 함께 도시 빈민 운동, 민주화운동에도 투신했다.

    1995년에는 호인수 신부의 요청을 받고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핵폐기장 반대운동에도 헌신했다.

    고인은 아동복지시설에서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의 사진이나 아동카드 같은 입양기록물 1600여 건을 보존‧관리하다가 2016년 이를 중앙입양원에 제공, 입양기록물 전산화 사업을 도왔다. 이 같은 공로로 2017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최근에는 어른이 된 입양 아동들이 가족을 찾을 일을 도왔다.

    고인의 빈소는 인천길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4일이고 장지는 고향인 덕적도 서포리 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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