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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최희석 경비원 사망 뒤에도 서울서만 갑질 신고 81건



사건/사고

    故최희석 경비원 사망 뒤에도 서울서만 갑질 신고 81건

    지난 5월 25일부터 서울에서만 갑질 신고 81건
    폭력·협박 가장 많아…가해자는 '입주민' 대다수
    경비원들, 초단기 노동계약에 '항의' 못하고 '꾹'
    故최희석 사건 이후…사회 관심 환기 등 긍정적 변화도
    갑질 문화 근본 개선하려면 사회 각층 노력 필요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었던 고(故) 최희석씨는 지난 5월 10일 입주민의 끈질긴 괴롭힘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억울하다. 결백을 밝혀달라"는 유서를 남긴 후였다.

    논란이 되자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5월 25일부터 재발방지를 위해 아파트나 대형건물에서 벌어지는 경비원 갑질 행위에 대한 특별신고기간을 운영해왔다. 갑질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3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서울지역에서 경찰 신고가 들어온 건수만 81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입주민 등 '갑'은 스스로의 힘과 위치를 잘 알고 있는 반면 경비원은 '갑질'을 당해도 해고가 두려워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비원 갑질 특별신고 기간, 서울에서만 81건 신고… 폭력·협박 가장 많아

    CBS노컷뉴스가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서울지방경찰청은 경비원 갑질 행위 특별신고 기간인 지난 5월 25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총 81건의 신고를 접수했다. 이 중 59건(61명)을 입건했고, 22건은 상담종결 처리됐다. 아울러 28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주요 혐의별로 보면 폭력·협박이 28건(29명)으로 가장 많았고 △업무방해 14건(15명) △강요 9건(9명) △모욕 4건(4명) △기타 4건(4명) 순이었다.

    피의자 61명의 신분은 △입주민이 52명 △관리소장 3명 △방문객 2명 △직원 4명으로, 입주민이 주된 가해자로 드러났다. 신고자의 73%는 피해자였고, 27%는 사건 등을 목격한 제3자였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입주민인 60대 남성 A씨가 술에 취해 화단에 소변을 보다가 이를 제지하는 경비원을 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바 있다.

    같은달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동대표가 경비원들에게 자신과 자녀의 개인 이삿짐을 옮기도록 강요하고 자녀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도록 하는 등 갑질을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동대표를 강요죄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故최희석씨 사건 일어났던 강북구 보고서 보니…7명 중 1명 '갑질' 경험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사법처리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갑질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입수한 '강북구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잘 드러나 있다.

    강북구는 최희석씨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경비노동자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관내 아파트 60곳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시행했다. 총 317명의 경비노동자가 설문에 참여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참여자의 14.5%인 46명이 입주민으로부터 부당 대우 경험을 받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약 7명 중 1명 꼴이다. 사업장에서 근속 기간이 짧을수록, 세대 규모가 큰 대규모 단지일수록 부당 대우를 경험한 빈도가 높았다.

    경비노동자들은 "음식물 쓰레기에서 냄새가 난다며 수거차량에 빨리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가라고 요구했지만, 해당 분야의 일은 경비원의 일이 아니었다"거나 "술을 마시고 와서 복장을 지적하는 등 시비를 걸지만, 불이익이 올까 봐 참고 있다.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경비실 안에서 핸드폰만 본다고 시말서를 쓰게 했다"거나 "휴식시간에 경비실 밖에 나와서 쉬지 말고 경비실 안에서 쉬라고 한다. 밤에는 왜 경비를 서지 않느냐고 계속 민원을 넣는 주민도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갑질 원인 이면에는 3개월 단위 '초단기 계약'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경비노동자들이 갑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데는 3개월 주기로 이뤄지는 '초단기 계약' 형태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북구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5.1%가 1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고 있었고 37.6%는 3개월 단위의 계약을 하고 있었다. 3개월 이하 단위의 계약이 전체의 62.7%를 차지하는 셈이다.

    그보다 앞서 2019년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사업단)이 전국 15개 지역 경비노동자 33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3개월 이하 근로계약을 맺었다고 응답한 비율이 21.7%에 달했다. 6개월 계약은 8.7%에 불과했다.

    사업단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3개월 계약이 대부분이다. 고용이 불안하니까 갑질에 쉽게 대응할 수가 없다"며 "오늘 하루에만 2명의 경비노동자가 해고 상담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1월, 12월이 되면 아예 집단 사직서를 받아놓고 일을 시키는 곳도 있다"며 "어떻게든 일을 더 하려면 갑질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용보장이 되지 않는 데다가 사실상 입주민의 입김 또한 크다 보니 속수무책으로 갑질에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강북구 실태조사 보고서는 "강북구 사건에서 가해자는 피해자를 '머슴'이라고 표현한다"며 "입주민은 자신이 내는 관리비에서 경비원의 임금이 지급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이 관리사무소에 문제를 제기하면 경비원을 얼마든지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비원 고충에 대한 사회적 관심 환기는 '긍정 변화'…장기적 노력 필요

    전문가들은 최희석씨 사건 이후로 경비노동자의 고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된 점은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노동 안정화 등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센터장은 "자조 모임 등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입주민들이 조금 긴장을 한다든지 태도가 조심스러워졌다"며 "경비노동자들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문제가 생기면 전화나 상담을 통해 도움을 구하려고 한다"고 변화를 설명했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각종 조례 제정에 나선 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강북구는 지난 6월 26일 '강북구 경비원의 고용 안정 및 인권 보호 조례'를 공포했다. 해당 조례는 △노무관리 상담 제공 △사용자의 노동관계 법령 준수 권고 △고용안정 상담소 설치 등 경비원의 인권보장과 복지증진 노력 등을 규정했다.

    다만 그는 "노동조합이 있는 정규직 사업장에서도 갑질이 일어나는 만큼 자치구, 정부, 국회 등 다각적이고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갑질이 일어났을 때 대응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예컨대 근로계약이 1년으로 보장이 되는 경우에는 갑질에 좀 더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남우근 정책연구위원도 "단기 계약의 문제, 실질적 사용자 역할을 하는 입주자 대표회의 문제 등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입주민들이 경비원에게 법에 정한 일 이외의 허드렛일을 시키지 못하도록 규정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은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법은 경비원이 경비 업무 외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를 법 시행령을 통해 규정하고, 입주민 등은 법이 정한 업무만 경비원에게 시킬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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