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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의사 업무', 저긴 '강제 휴무'…간호사들 이중고



보건/의료

    여긴 '의사 업무', 저긴 '강제 휴무'…간호사들 이중고

    • 2020-09-04 06:00

    PA간호사가 의사업무 다 맡아…"불법 의료행위 내몰려"
    일반 간호사한테 드레싱 등 맡기기도…의사 업무 강요
    반면, 다른 쪽에서는 "환자 없으니 휴무 써라" 압박
    "5분 대기조도 아니고"…열악한 처우에 지친 간호사들
    "숙련된 인력이 일할 수 있는 여건 필요" 文한테 주문

    대한의사협회가 2차 총파업에 돌입한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의료진이 내원 환자를 안내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전공의·전임의들이 정부의 4대 의료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2주째 집단휴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의료 현장에 남아 있는 간호사들의 이중고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법상 의사가 해야만 하는 시술이나 약 처방을 간호사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대신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입원·재원 환자 수가 줄었다는 이유로 근무 직전 갑자기 휴무를 통보하는 이른바 '점오프'를 강제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전공의 업무 떠맡는 PA간호사…일반병동 간호사도 '진땀'

    "우리가 의사들이 떠난 진료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 악화와 업무부담 가중이다. 특히 위계와 권력적 업무 관계 아래 놓인 간호사들은 일부 불법적인 진료 업무까지 떠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27일, 대한간호협회가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다. 협회는 "전공의 등 의사들이 떠난 의료현장에서 의사들이 하던 업무를 상당수 대신하고 있는 것은 소위 PA(Physician Assistant)라고 불리는 간호사들"이라며 "의사들이 파업이 끝난 뒤 돌아오면 또다시 불법행위라고 고발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협회의 이 같은 주장은 기우가 아니었다. 실제로 전공의들이 떠난 빈자리의 상당수는 '진료보조인력'이라고 불리는 PA간호사들이 채우고 있다.

    (이미지=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 A씨는 "PA간호사가 인턴이나 주치의의 업무를 어느 정도 받아서 한다고 해도 처방전을 매번 내지는 않았다"며 "그런데 지금은 퇴원요약지, 퇴원지시, 처방을 거의 다 PA간호사를 통해서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병원에서는 전공의 없이 교수와 PA간호사들이 수술을 진행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병원 PA간호사 출신 B씨는 "수술방에 집도의 1명과 보조의 2명이 들어가는 게 원칙이지만, 보조의 1명의 자리를 PA간호사가 대신해왔다"며 "현재는 파업으로 집도의 1명만 남게 됐으니, 수술방에 들어가는 PA의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오선영 정책국장은 "전공의들이 업무 거부를 하니, 모든 업무가 PA간호사로 넘어오고 있다. PA간호사가 전공의 당직을 대신 서기도 한다."며 "(PA간호사가 불법이라는 그간 의료계의 논리라면) 이번 파업으로 더 많은 불법 행위를 하게 되는 셈"이라고 밝혔다.

    지금껏 PA간호사들은 전공의가 부족한 대학병원의 외과·산부인과·비뇨기과 등에 배치돼 부족한 의사 인력을 보충해왔다. 수술 보조·진단서 작성·시술까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PA간호사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불법 의료 행위에 내몰려 왔다.

    문제는 이번 파업으로 인해 간호사들에게 '더 크고, 더 많은' 불법행위가 강요되고 있다는 점이다. PA간호사 뿐 아니라 일반병동 간호사에게도 의사 업무가 넘어오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에는 최근 간호사들로부터 "드레싱·도뇨업무를 하고 있다", "수술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한다"는 등의 제보가 다수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B씨는 "동맥혈 채혈 등의 업무를 일반 병동 간호사들이 맡게 되는 경우도 생길 것"이라며 "법적으로 보호가 되지 않는 일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반대하는 의료계가 집단휴진 중인 3일 오전 서울대병원에 응급실 진료 지연을 알리는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학병원 등 '점오프' 강제 빈번…"내가 5분 대기조냐" 반발

    반면, 다른 쪽에서는 '강제 휴무'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점오프'라고 불리는 '응급오프'는 간호사들에게 근무 직전 휴무를 통보하는 것을 말한다.

    '점오프'가 난무하는 이유에는 파업으로 일부 병동에서 입원, 재원 환자들이 줄은 점이 크다. 최근 병원들은 신생아실·분만실·응급실 등 필수 의료를 제외한 외래와 수술 등을 일부 줄이고, 입원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파업에 대응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병동 간호사 C씨는 "최근 의사파업으로 데이와 이브닝 근무가 3명에서 2명으로 축소됐다"며 "여기에 P(책임)근무자인데, 수간호사님이 연락이 없으면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라고 한다. 제가 5분 대기조냐"고 억울해했다.

    수도권 대학병원 간호사 D씨는 '간호사 대나무숲'에 "최근 의사 파업으로 입원환자가 많이 줄었고, 재원 환자도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환자 수가 줄자, 병원에서 연차를 강제로 쓰게 하는 응급오프를 하루에 적게는 1~2명, 많게는 5명까지 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차를 제가 사용하고 싶을 때 정작 쓰지 못하는 데 화가 난다"며 "다른 대학병원들도 이렇게 응급오프를 많이 주는지, 연차로 소진하게 하는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간호사들은 "인력이 부족할 때는 충원조차 해주지 않았다"며 허탈감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점오프'는 유급휴가가 아닌데다, 원치 않는 날짜에 자동으로 연차 또는 정해진 오프 중 하루를 당겨 쓰는 구조여서 오랫동안 간호계의 '나쁜 관행'으로 지적돼왔다.

    병원은 공식적으로는 '점오프' 강요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상급자인 수간호사가 이를 강제할 경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 간호사들의 말이다.

    A씨는 "외래에 오전에 출근해 근무하고 있으면, 오전 중에 간호부에서 나와 오전 진료에 사람이 많이 없으니 반차를 내고 들어가라고 강요를 한다"며 "만약 신청한 사람이 없으면 계속 반복적으로 찾아와 반차를 쓰도록 압박한다"고 토로했다.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이승아 노동안전부장은 "점오프 강제는 단체협약 위반인 데다가 간호부를 제외한 타 직종은 모두 정상출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만약 점오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복무규정을 읽게 하면서 코로나 병동으로 보내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중환자가 대부분인 코로나 관리 병동에 사전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 병동 간호사를 보낸다고 하는 것 자체가 압박"이라고 덧붙였다.

    열악한 처우 등에 지친 간호사들도 이제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일 젊은간호사회는 SNS에 올린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숙련된 인력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들은 "열악한 근무와 가중된 근무환경, 감정노동이 이번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며 "수년간 간호사 배출을 늘렸음에도 2019년 기준 신규 간호사들의 사직률이 45%가 넘는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매년 수많은 간호사가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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