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가해자가 長이면? 부담되죠"…공직 성폭력, 왜 통제 안되나



사건/사고

    "가해자가 長이면? 부담되죠"…공직 성폭력, 왜 통제 안되나

    고 박원순 서울시장 피해자 "위력의 크기, 다시 한 번 느낀다"
    "서울시 내부에 도움 요청했지만…피해 사소화해"
    서울시, 지난 5월 '성희롱·성폭력 재발방지 대책' 발표
    사건 종결돼도 사안에 따라 '징계 의결' 가능
    공무원들 "징계 가볍게 나올까 우려"…지자체 "기관장 조사 부담 있어"
    전문가들 "'젠더 정책' 앞세웠던 서울시, 시스템이 작동 안한 것"
    "남성 중심 조직문화 탈피·성폭력 대응 시스템 재정비"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피해자와 연대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합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 피해자 글 대독)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인이 엄수된 13일, 영결식이 끝나고 5시간여 뒤 서울 은평구 여성의전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피해 호소 여성은 편지를 통해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 번 느낀다"고 말했다. 권력형 성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으면서, 피해자들이 느끼는 '위력'을 해체해 그 실체를 들여다보고 이에 걸맞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피해자 "권력과 위력에 의한 피해입니다"

    피해자 측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비서가 시장에 절대적으로 거부나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업무시간 뿐만 아니라 퇴근 후에도 사생활을 언급하고 신체를 접촉하고 사진을 전송하는 등 전형적인 권력과 위력에 의한 피해가 발생했다"며 피해 사실을 전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린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피해자가 처음부터 수사기관의 문을 두드린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시장의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이라"며, "비서의 업무는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이라며 피해를 사소화하는 반응이 이어졌다고 변호인 측은 설명했다. 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피해자는)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부서 변경을 요청했으나, 승인권자는 박 시장이었다"고 덧붙였다.

    단체들은 "서울시는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를 입었던 직장"이라며 "시는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운구행렬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리는 영결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온정주의' 타파 강조했던 서울시, 진상조사 나설까

    피해 호소 여성이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했으나, 가해자로 지목된 박 시장이 숨지면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박 시장 관련 성추문 의혹을 조사할지 여부를 현재까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2개월 전인 지난 5월, 서울시는 '성희롱 성폭력 재발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연이어 서울시 직원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발생해 재발 방지와 철저한 사건 처리를 위한 대응방안을 수립한다'는 취지에서다. 시는 "사건 발생시 온정주의로 내부적으로 은밀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잘못된 관행이 존재해 사건 처리가 지연된다"며 "은폐, 축소 등의 문제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5년 동안 서울시 고충심의위원회에서 처리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총 26건으로 집계됐다. 이 대책에서 박 시장과 같은 관리자는 사건발생 시 관리감독의 주체일 뿐,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상부 관리자가 가해자일 경우에 대한 대응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경고조치 등을 권고할 수 있는 주체로서 소속기관장의 역할을 정의할 뿐이었다.

    서울시청.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서울시는 자체 진상조사에 착수하기 어려운 이유로 '서울시 성희롱·성폭력 처리 매뉴얼'을 꼽았다. 성희롱·성폭력 피해 직원이 담당 과에 신고 접수해야만, 해당 사안을 조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피해 호소인은 사건과 관련해 시청에 접수한 사항이 없다"고 했다.

    다만, 수사기관의 사건 종결처분과 관계없이 시가 자체적인 진상조사에 착수할 여지도 있다. 시는 전날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자체 조사를 고심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자회견이 어떻게 보면 간접적인 피해자 신고로 볼 수 있는 사안이라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기존 매뉴얼이 아닌, 다른 방식을 적용할지 검토하고 있다"며 "(시청은) 시장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에도 조사 권한이 있다. 예외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특별시 공무원 징계 등에 관한 규칙' 제2조(징계 또는 징계부가금의 기준)는 '징계 등의 대상인 혐의자의 비위 유형, 비위 정도 및 과실의 경중과 평소 행실, 근무성적, 관련 업무 처리의 적극성, 뉘우치는 정도 등을 고려해 징계 등을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지방공무원 징계규칙 제3조에서도 지방공무원의 범죄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 기소중지 결정이나 참고인중지 결정을 통보받으면, 비위 정도·과실 경중 등에 따라 혐의사실이 인정되면 징계를 의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가해자가 기관장이라면?"…불안한 피해자, 부담 느끼는 기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같이 성희롱·성폭력 가해자가 기관장 등 '상급 관리자'인 경우, 피해자인 내부 구성원은 조직에 쉽사리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조직의 '자기 식구 감싸기' 등을 우려해서다.

    경기도 공무원 A씨(28)는 "인사위원회에서 (가해자) 징계가 정직 등으로 가볍게 나올 경우, 그 상급자는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며 "(피해자와) 같은 부서로 가지는 않겠지만, 지방직 같은 경우는 어차피 다시 시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 계속 봐야 하는데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는 당연히 힘들다"고 전했다.

    지방자치단체 등 기관은 상급 관리자의 성 비위를 조사하는 데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는 게 중론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성비위 관련 '가해자'일 경우, 조사·감독 주체는 지자체 청문과·여성가족과 등 담당과 공무원이다. 서울의 한 지자체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기관장이 행위자라면 조사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사건 처리가 어려운 경우 상위기관인 서울시 인권담당관에 사건 (조사)을 위촉할 수 있긴 하다"고 설명했다.

    공적 조직이 내부 성비위 문제 해결에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시와 일선 지자체는 성희롱·성폭력 피해 고충 상담원을 2명씩(남1·여1) 두고 있다. 지자체와 서울시 공무원이 각각 1천명, 1만명 안팎인 데 반해, 성폭력 문제 상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며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법대 김용화 교수는 "형량을 높이는 데 그치는 건 의미가 없다"며 "기관 내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근원적인 부분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권력자가 행하는 성범죄는 현실적으로 내부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피해자를 적극 보호해주는 외부 기관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결국 해답은 비위 문제를 다루는 공공조직과 수사기관의 '인식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조직의 대응이) 남성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사안으로 (권력자를) 흠집내도 될까, 하는 만연한 생각들 때문에 기관 내부의 '처리 기능'이 마비되고, 경찰 등 외부 기관 역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며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에서 탈피해,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사위원회·성폭력 고충위원회 등에 일정 직급 이상의 참여를 배제하고 외부 인사 비율을 늘리는 등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관련 기구가 조직에 있지만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구 교수는 "(서울시청) 내부 시스템에 (피해사실 관련) 시그널이 들어왔을 것"이라며 "당사자가 권력·위력을 갖고 있는 경우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 있다. 내부 해결이 어려우니, 피해자들이 사법부의 문을 두드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젠더 정책'을 앞세웠던 서울시가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피해자가 직급과 상관없이, 자신의 피해를 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