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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스러진 故최숙현의 22년 '늦은 부고'



사건/사고

    폭력에 스러진 故최숙현의 22년 '늦은 부고'

    [편집자 주] 고인의 고통을 몰랐다. 세상을 떠난 뒤 뉴스가 보도 됐지만 아직 제대로 된 부고조차 전해지지 않았다. 너무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CBS노컷뉴스는 고(故)최숙현 선수의 아버지, 지인, 관계자들의 인터뷰와 기타 자료를 토대로 부고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2012년 석전중 2학년 시절 최숙현 선수(가운데)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칠곡신문 제공)

     


    최숙현 선수는 1998년 6월 8일 경북 칠곡군 기산면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최 선수와 트라이애슬론의 인연은 약동초등학교 1학년, 수영을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만 해도 최 선수는 여느 또래 아이와 다름 없었다. 최 선수도 수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 선수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체육부장 선생님이 '수영할 사람 손 들어'라는 말에 딸이 멋도 모르고 손을 들었다"며 수영과 인연을 소개했다.

    생각 없이 시작했지만 수영 코치는 최 선수의 재능을 눈여겨봤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선수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최 선수도 금방 성과를 보였다. 전국동아수영대회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6학년 때는 접영에서 금메달까지 따며 두각을 드러냈다.

    평소 열정이 넘치던 부모도 딸을 위해 헌신했다. 수도권보다 운동 환경이 열악했지만 부모는 수영 배우는 딸에게 온 정성을 쏟았다. 아버지는 딸에게 누구보다 겸손하라고 가르쳤다.

    2011년 석전중학교에 입학하면서도 수영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주변에서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종목 참가를 권유받았다. 수영-사이클-마라톤으로 이어지는 종목 특성상 수영에 남다른 실력을 보였던 최 선수는 일찌감치 트라이애슬론 유망주로 손꼽혔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했다. 뛰어난 수영 실력과 성실함, 강한 정신력은 최 선수의 큰 장점이었다. 그해 제41회 전국소년체육대회 트라이애슬론 여중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2012년 제41회 전국소년체육대회 트라이애슬론 대회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최숙현(맨왼쪽) 선수 (사진=칠곡신문 제공)스마트뉴스

     


    석전중 졸업 후 경북체고에 입학한 들어간 그는 수영과 트라이애슬론을 병행했다. 평소 수영으로 훈련하고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있으면 참가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트라이애슬론으로 완전히 전향했다. 2015년 뉴 타이페이 아시아트라이애슬론선수권 대회에서는 주니어 여자 개인전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2015 설악전국트라이애슬론대회에서 주니어겸 여자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 최 선수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출전하며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다.

    유망주로 손꼽힌 그는 경북체고 소속이지만 경주시청 직장운동부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트라이애슬론 종목은 전국체전에서 고등학교 부문이 없기 때문이었다. 최 선수는 일반부와 경쟁해 출전권을 따냈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던 김규봉 전 경주시청 감독과 주장이자 선배인 장윤정 선수와의 악연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2017년 고교 졸업 후 최 선수는 경주시청에 입단했다. 보다 정확히는 김규봉 감독이 최 선수를 쥐락펴락 하고 있어서 다른 팀으로 갈 수 없었다. 실업팀에 들어간 뒤 폭언과 폭행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경주시청에서 최 선수와 동고동락한 동료 A씨는 최 선수를 '항상 밝은 아이'라고 기억했다. A씨는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이거 먹으러 가자. 저거 먹으러 가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고 주로 빵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최 선수는 A씨에게도 큰 힘이 됐다.

    고 최숙현 선수의 2016년 증명사진. (사진=최숙현 선수 지인 제공/연합뉴스)

     


    하지만 감독과 선배, 가짜 팀닥터 안주현은 최 선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잦은 폭행과 입에 담지 못할 폭언으로 몸과 마음은 멍들어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맞닥뜨린 합숙 생활은 그야말로 감옥이었다. 최 선수 아버지는 "딸이 실업팀 입단 후 힘든 생활을 하다 보니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감독과 선배가 지독히도 딸을 괴롭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최 선수와 A씨는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다른 팀은 이것보다 더 때리고 욕도 더 한다'라는 감독과 선배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고교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들에게 선배의 말은 절대적인 법으로 다가왔다. 최 선수와 A씨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버티는 것 뿐이었다.

    최 선수와 A씨는 선배나 감독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둘이서 꼭 속삭이는 대화가 있었다. '왜 저렇게까지 해서 우리를 힘들게 할까', '서로 조금만 더 참자'였다. 그마저도 누가 들을까 봐 크게 말할 수 없었다. 함께 숙소를 썼던 주장 장윤정은 후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후배들을 이간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2019년 팀을 떠난 동료에게 연락을 남겼던 고 최숙현 선수. 당시 최 선수는 뉴질랜드 전지훈련 중이었다. 팀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최 선수는 동료에게 연락을 남겼다. 주장 장윤정의 감시를 의식한 최 선수는 전 동료에게 연락한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진=최숙현 선수 지인 제공)

     


    시합장에서 경주시청 팀의 분위기는 달랐다. A씨의 어머니는 "시합장에 가서도 애들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팀과 달리 경주시청은 부모가 선수에게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쩌다 가까이 가면 선수들이 먼저 부모를 돌려 보냈다.

    최 선수는 지난 1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보낸 경주시청을 떠나 부산시청으로 소속을 옮겼다. 새끼 진돗개 반려견도 분양받았다. 최 선수는 반려견에게 '행님'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경상도 방언으로 형님이란 뜻이다. 그에게 반려견 행님은 그동안의 아픔을 달래 줄 수 있는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최 선수는 행님을 누구보다 아꼈다.

    최 선수와 가족은 지난 2월 이후 가해자들을 처벌해 달라며 인권위원회와 경주시청, 경찰, 검찰,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에 신고하거나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최 선수는 가해자들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것과 자신이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감, 무엇보다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는 현실에 깊이 낙담했다.

    어머니와 마지막 연락을 주고받은 고 최숙현 선수 (사진=최숙현 선수 유족 제공)

     


    최 선수는 숨지기 열흘 전 불쑥 부모를 찾아왔다. 어머니에게는 집밥을 해달라고 졸랐다. 고기를 먹으러 가자는 아버지의 권유에도 집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날 어머니가 차려준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최 선수는 지인에게 반려견 행님을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지난달 26일, 어머니에게는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마지막 메시지와 함께 부산시청 숙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 최숙현 선수 (사진= 최숙현 선수 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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