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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약수 뜨기도 힘든데…" 수십 년째 수돗물 안 나오는 아파트



대전

    "폭염에 약수 뜨기도 힘든데…" 수십 년째 수돗물 안 나오는 아파트

    1971년 지어진 노후 주택…당시 관정 뚫어 지하수 공급
    지하수 오염으로 생수 사거나 약수 떠 먹는 주민들
    대부분 차상위·기초생활·세입자…소유주 동의 없이 상수도 공급 어려워
    상수도사업본부 "급수신청 먼저 돼야"

    대전에 수십년 째 수돗물이 안 나오는 아파트가 있다. 지하수마저 오염돼 주민들은 생수를 사먹거나 약수를 떠서 생활하는데, 폭염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이마저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6월 초 대전에서 유일하게 수돗물이 안 나오는 석교동 제일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는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듯 곳곳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헤진 모습이었다. 주민들은 집 앞에 의자를 놓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일 먼저 지어졌다고 해서 제일아파트였죠."

    대전 중구 석교동 제일아파트(사진=김미성 기자)

     

    한 주민은 아파트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벽을 툭툭 치며 "아직도 못을 박으려고 하면 잘 뚫리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졌는데 수돗물이 안 나와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 1971년에 지어진 제일아파트는 준공된 지 49년 된 노후 주택이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주택으로 '대전 기네스'로도 꼽혔다. 현재 대전시 상수도 보급률이 100%에 육박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 아파트는 수돗물 공급이 안 되고 있다. 50년 전 대전시가 직접 지어 분양한 이 아파트는 당시 상수도 보급이 여의치 않아 관정을 뚫어 지하수를 공급해왔다.

    아파트 정문 쪽 지하에는 관정 2공이 설치돼있다. 관정에서 모터를 이용해 옥상 물탱크를 통해 각 가정에 지하수가 공급된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하수 오염으로 수십 년 째 인근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 먹거나, 생수를 구입해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옥상에 설치된 낡은 물탱크(사진=김미성 기자)

     

    주민을 따라 올라간 옥상에는 낡고 오래된 물탱크가 설치돼있었다. "이것도 지난번에 주민들이 돈을 들여 보수한 거에요." 지하수가 담긴 물탱크에는 한 달에 1,2회씩 소독약을 뿌린다고 했다.

    약 2년 전 주민들은 20여만 원을 주고 수질 검사를 의뢰했지만, 당시 석회수가 다량 검출되고 음용수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수십만 원에 달하는 검사비가 부담스러워 최근에는 수질검사를 의뢰한 적이 없는 상태다.

    이곳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박모(66·여)씨는 "빨래나 설거지를 하고 나면 석회석이 가라앉아 그릇이 마르면서 하얗게 된다"며 "(지하수로) 샤워하고 나면 꼭 소금물로 헹구는데도 너무 가렵고 머리가 뻣뻣해서 피부가 벌레 물린 것처럼 빨갛다"고 했다.

    실제로 박씨의 피부는 울긋불긋해 보였는데, 이곳으로 이사를 온 뒤부터 피부염 증상이 시작됐다고 했다. 박씨는 그러면서 "물(생수)이 워낙 귀하다 보니 물을 아껴먹기 위해 음식을 싱겁게 먹기도 한다"고 했다.

    박씨네 집 싱크대에는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흰색 물때가 보였다.(사진=김미성 기자)

     

    물을 끓이고 난 냄비에는 테두리를 따라 원형으로 흰색 가루가 딱딱하게 굳어져있었다. (사진=김미성 기자)

     

    싱크대에는 하얀 물 자국이 없어지지 않았고, 물을 끓여놓은 냄비 테두리에는 흰색 가루가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였다.

    집 안 곳곳에서 약수통과 생수병을 발견할 수 있었다.(사진=김미성 기자)

     

    박씨네 집뿐만 아니라 대다수 주민의 집 안 곳곳에는 생수와 약수터에서 길어온 물통이 가득했다.

    이모(71·여)씨는 "아침에 일어나서 수돗물을 틀면 하얀 세면대에 노란 물이 나온다"며 "물을 항상 틀어놓을 수도 없고 녹물이 노랗게 마른 일도 허다한데 그 물을 어떻게 먹겠느냐"고 하소연했다.

    한 주민은 "스쿠터를 타고 인근 약수터에 물을 떠오면 왕복 1시간이 걸린다"며 "물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사람이 많을 때는 1, 2시간 기다리기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폭염이 다가오는 이맘때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약수터에 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박모(81)씨는 "석회분이 많아 음용유로 부적합하니 국가에서 주민들 먹을 수 있는 수돗물을 넣어줬으면 한다"면서도 "한 번에 비용을 부담할 형편이 못 되니 상수도를 먼저 연결해주고 수도세를 내면서 그 비용을 분할해서 낼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대전 상수도사업본부 측은 각 가정으로 상수도관을 연결하려면 주민들이 직접 신청해야 하는데, 신청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제일아파트는 총 48세대 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상당수 주민이 기초생활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이다. 나머지 주민들도 소유주가 아닌 세입자인 탓에 소유주 동의 없이는 상수도관 연결을 요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상수도사업본부 측은 "가구당 120만 원 정도 부담이 발생하는데 돈보다도 집합 건물인 아파트는 개별 신청이 아닌 전체신청이 돼야 한다"면서도 "현재 신청 자체가 되지 않고 있어서 수돗물 공급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청을 하게 되면 시에서 지원해준다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데 단체가 구성이 안 되다 보니 첫 단계부터 막히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은 지난달 제일아파트를 찾아 "수돗물 공급을 위해선 최소 1억 원 이상의 사업비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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