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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 927일만에 집으로…"9년 걸렸습니다"



사건/사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 927일만에 집으로…"9년 걸렸습니다"

    과거사법, 20일 국회 본회의 통과
    과거사 정리위원회 출범…피해자 배·보상 조항은 삭제돼
    한종선·최승우씨 "첫발 내딛기까지 9년 걸렸다…진상조사 제대로 돼야"
    "피해자 배·보상 조항 등 개정은 21대 국회에 달려"
    서산개척단·선감학원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 "진상규명 서둘러야"
    인권위 "과거사법 통과 환영…배상 조항 없는 건 아쉽다"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최승우 씨(오른쪽) 등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 농성 해단 기자회견을 마친 뒤 농성 천막을 철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이 통과되면서 국가폭력 피해자인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이 927일 만에 국회 앞 천막을 철거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앞서 국회는 20일 과거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사건을 재조사할 근거가 되는 과거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2010년 임기가 만료돼 해산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새로 출범한다. 과거사 정리위는 형제복지원 사건과 선감학원, 서산 개척단 사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등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기에 발생한 국가 인권유린 사건을 진상조사할 수 있게 됐다.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진상조사 길 열렸지만, 앞으로가 중요"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최승우씨와 서산개척단, 선감학원 등 과거 국가폭력 사건 피해자들은 21일 오후 2시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첫 발을 내딛기까지 9년의 세월이 걸렸다"며 "부랑인으로 낙인 찍혔던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국회 앞에서 927일간 농성을 이어온 한종선씨는 "오늘로써 끝났다고 하기엔 이른 면이 있는 것 같다"며 "형제복지원과 같은 수용 감금 시설에 대해서 정확하게 진상을 규명해 명예를 되찾아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대표(오른쪽 노란색 상의)와 곽정례 한국전쟁유족회 여성위원회 부위원장(가운데) 등이 지난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자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해자들은 법안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몫은 21대 국회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 전, 여야가 협의하는 과정에서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이 삭제되고 조사 기간이 '4년간·2년 연장 가능'에서 '3년간·1년 연장 가능'으로 단축되는 등 일부 조항이 당초 발의된 개정안보다 후퇴한 탓이다.

    한씨는 "미흡한 법안에 대해 노력해서 피해자들이 바라는 법안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왜 선언적인 문구에 우리가 집착해야 하는지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피해 당사자들의 운동, 피해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달라"고 당부했다.

    무엇보다도 "어딘가 숨겨져 있을 우리의 자료부터 찾는 게 시급하다"며 "피해자들 가운데 선감학원이나 형제복지원 등 여러 사건에 중복된 이들이 있다. 이 같은 부분들을 풀어나가는 것도 과제"라고 말했다.

    최승우씨는 "첫 발을 내딛기까지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세상에 국가 폭력이 사라지는 날까지 함께 하겠다. 사학 비리, 재벌 폭력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밝혔다.

    아울러 "부산시에서 첫 공식 조사를 했지만 더 많은 자료와 피해 생존자를 발굴해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며 "당시 과정을 보면 경찰, 검사 등 공무원과 국가가 개입했다. 포괄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국회 앞에서 927일간 농성한 천막을 해체했다. 천막을 둘러싸고 있던 비닐과 이불 등을 걷어내자, 앙상한 철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3년여 동안 이들은 밤낮으로 이곳에서 진상 규명을 외쳤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에서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형제복지원이 3천여명의 장애인,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시킨 사건이다. 이 시설이 운영된 12년 동안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달한다.

    최승우씨는 지난 5일 사건 진상 규명과 관련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구내에 진입해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에는 24일간 단식 농성을 벌이다가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인 최승우 씨(앞) 등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농성 해단 기자회견에서 박수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연대'하며 싸워온 국가폭력 피해 생존자들…"진상규명 서둘러야"

    서산개척단, 선감학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사건 등 다른 국가폭력 피해자들도 수년째 진상 규명을 외쳐왔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형제복지원 농성장을 해체하고 오늘 해단식을 하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의 진실을 향한 걸음은 멈추지 않겠다"며 "과거사법 일부 조항이 삭제돼 유감스럽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할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준비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1960년대 전국 남녀 1700여명을 강제 동원해 서해안 간척을 시킨 '서산개척단 사건'의 진상규명대책위 정영철 회장은 "우리에겐 명예가 없다. 짐승에게 명예가 있겠냐"며 "이제라도 과거사법이 통과됐으니 짓밟힌 청춘을 보상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감학원 아동피해 대책협의희 김영배 대표는 "선감학원 피해자 4691명의 명부가 나왔지만 (피해자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과거사법이 조금은 미흡하더라도 만들어졌다는 데 의의를 둘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한국전쟁유족회 특별법 추진위원회' 김하종 회장은 "나이 많은 피해자들이 전부 죽어가고 있는데 국가가 (폭력을) 저질러놓고 진상 규명을 안 하면 누가 해주나"라고 지적했다.

    군 유가족, 상명대 사학비리 공익제보자 등도 이날 현장에 자리해 연대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일 국회 본관 앞에서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 서산개척단사건진상규명대책위,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권위 "과거사법 통과 환영…배상 조항 없는 건 아쉬워"

    인권위는 이날 과거사법 국회 본회의 통과에 대해 최영애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과거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을 재조사할 근거가 되는 과거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성명에서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피해자 명예회복, 보상 및 지원 등 적절한 구제조치가 필요하다"며 "국가폭력 사건의 피해자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거나 고령자임을 고려해 지원 가능한 방안을 신속하게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과거사법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조항이 포함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고 "역사의 진실은 결코 숨길 수 없으며, 왜곡된 역사나 은폐된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며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 진실 그 자체가 목적으로, 진실의 토대 위에서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사법 발의에 참여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이날 현장을 찾아 "여러분(피해자들)의 말씀을 모두 담지 못해 아쉽다"며 "또 다른 약속으로 마지막을 채우겠다는 뜻으로 받아달라. 국회는 이제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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