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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평에 10~15명 다닥다닥"…코로나19에도 영어유치원 개원 강행



교육

    "2~3평에 10~15명 다닥다닥"…코로나19에도 영어유치원 개원 강행

    "장기간 미등원시 자리 보장 어렵다"…비싼 등록금 내고도 못 보내 '속앓이'
    “학교는 방역 안 해서 개학 미뤘나?"…외부강사 오가고 장시간 학습 '집단 감염 우려'
    강남 유명 유치원,외식·소모임 금지 서명 요구..학부모 "워킹맘은 어쩌라고"
    영어유치원 "경영상 어려움, 방역 최선"…교육당국 "영유는 학원시설, 강제 못 해"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개원을 무기한 연기했지만, 전국 상당수 영어유치원이 13일부터 개원을 강행해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일부 영어유치원은 외식 금지 등 지키기 어려운 수칙을 담은 확인서에 서명까지 강요해 학부모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휴원 권고에도 영어유치원 속속 개원…학부모 "“학교는 방역 안 해서 개학 미뤘나"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전국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총 558곳에 달한다. 서울 시내 어린이 대상 영어유치원은 227곳이 등록돼 있다. 이들 영어유치원 중 다수는 지난 6일부터 대면 수업을 시작했다. 그 전에 이미 문을 연 곳도 있다.  

    지난해부터 영어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던 한 학부모는 "이달 초에 벌써 문을 열었지만, 아직 우리 애는 보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월 150만 원이 넘는 유치원비를 내고도 결석 처리되고 있다"면서 "'불안해서 안 되겠다'고 사정을 얘기했더니, 유치원에선 '다른 아이를 받겠다'고 해 그만두지도 못하고, 걱정돼 보내지도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뿐 아니라 다른 시도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기도교육청은 도내 147개 영어유치원 가운데 대다수가 지난 6일부터 문을 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산의 한 학부모도 "초중고등학교가 온라인 개강을 하고 일반 유치원, 어린이집도 전부 휴원하는데, 이게 방역을 할 줄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라면서 "영어유치원도 집단 밀집 시설인데, 상당수 개원해 아이들이 코로나19에 고스란히 노출됐다"고 말했다.

    광주에서도 영어유치원 개원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지난 2일 대형학원의 잇따른 개원을 비판하면서 "영어유치원의 운영 특성상 외부 강사들이 자주 오가거나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학습을 하는 등 바이러스 유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강남의 유명 A 영어 유치원은 13일 개원을 강행하면서 각서에 가까운 방역 수칙 확인서를 강요해 논란이 되고 있다.(사진=독자 제공)

     

    ◇강남 유명 유치원 '외식·소모임 금지 서명' 요구…"미국강사 많은 곳, 방역 책임 전가 의도"

    이런 가운데 13일 개원을 강행한 강남의 유명 A 영어 유치원은 각서에 가까운 방역 수칙 확인서를 강요해 논란이 되고 있다.

    맘까페와 학부모 등에 따르면 A 유치원은 지난 6일, 일주일 뒤부터 개원하겠다고 안내하면서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한 13가지 생활 수칙'을 지켜달라는 확인서를 각 가정에 배포했다.  예를 들면 △ 마스크를 내리는 장소, 즉 음식점이나 카페, 운동시설, 사우나 등에 가지 않을 것 △ 이태원·홍대 등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지 않기 △ 확진자가 생긴 곳에 다녀온 사람 만나지 않기 △ 종교모임, 소모임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엔 가지 않기 등이다. 학부모는 이 확인서에 자필로 서명까지 해야 한다.

    확인서 하단에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시 역학 조사를 위해 확인서를 6개월 동안 보관한다'. '등원 전까지 확인서를 보내주지 않으면 등원이 제한된다'고 적혀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맘까페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는 하소연으로 가득하다. 한 학부모는 "아이에게 음식점이나 카페를 가지 말라는 건 함께 사는 부모도 가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워킹맘은 식당이나 커피숍을 가지 않을 수도 없고, 만나는 사람이 확진자 동선과 겹치는지 어떻게 일일이 확인하냐"며 반발했다. 

    아빠들도 목소리를 냈다. "소모임 금지 항목은 아이 유치원 보내는 동안엔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건가"라면서 "외부 단체 모임은 당연히 안 하고 있지만, 가족들을 만날 때도 있고, 출근이 모임 자체인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5살 아이를 둔 한 엄마도 "부모님들뿐만 아니라 원어민 교사, 셔틀 기사님, 청소 도우미님들 가족 포함해서 다 지키고 계신지는 어떻게 확인하냐"면서 "다들 대중교통 타고 출퇴근하실 텐데, 아무 데도 안 나가고 단체 합숙이라도 하는 중인지, 아무도 오지 말란 얘기로 들린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강남 지역 확진자는 대부분 해외 입국자이고 미국서 온 입국자가 제일 많은데, 선생님들 조심하신다고 해도 어울리는 친구분들 대부분 미국인 아니면 교포 아닐까요?", 책임 회피를 위한 서명이고, 이렇게까지 요구할 거면 그냥 개학을 늦추는 게 맞다", "면피용 서명이다, 초중고도 개학 안하는데 그 좁은 교실서 다 같이 밥 먹고 재채기하고 어쩌자는 건지" 등 문제가 생기면 전가하려는 것 같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유치원 측은 "장기간 등원하지 않으면 자리 보장이 힘들 수 있다"며 더 압박했다.

    학부모들은 그러나, A 유치원에 직접적으로 항의하지도 못하고 있다. 괜히 목소리 높였다가 내 아이가 혹시나 미움을 사진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더구나 해당 영어유치원은 인기가 높아 수십 여 명의 대기 학생이 밀린 상태다. 내 아이가 가지 않더라도 유치원 측은 아쉬울 게 전혀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 학부모는 "취지는 알겠지만 어린 아이들에겐 너무 가혹하고, 부모들에겐 선택지를 주지 않는 유치원의 일방적인 갑질"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3월 17일 영어유치원 개원에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와 27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영어유치원 "경영 어려움" VS "개원 반대" 국민청원…교육당국 "영유는 학원시설, 강제 못 해"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으로 불리긴 하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영어 과목을 운영하는 학원 시설로 관리된다. 정부가 최근 유치원 개원을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무기한 연장했지만, 영어유치원은 의무 휴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교육 당국도 영어유치원에 대해서는 일반 보습 학원처럼 휴원을 권고할 뿐 강제할 수는 없다.

    이에 따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지난달 17일 영어유치원 개원에 반대하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12일 기준 2765명의 서명을 받았다.

    청원자는 "2~3평이 안 되는 협소한 교실에 10~15명 이상의 아이들이 밀접 접촉을 하며 공동생활을 감내하고 있다"면서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대부분 부모님들의 심정이지만, 환불 및 이월을 거부하고 있어 마지못해 등원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휴원에 관한 강제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아이들은 일부 어른의 탐욕 속에서 전 세계적인 전염병에 무방비로 방치되고 있다"며 사실상 '코로나19 방역 사각지대'라고 덧붙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법령상 학원으로 분류되는 영어 유치원은 제도적으로 개원을 막거나 강제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며 "계속 휴원을 권고하고 시도 교육청 등과 방역, 점검 등에 나서고 있지만 휴원을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도 "학원 시설인 영어유치원에 대해 휴원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면서 "코로나19 방역지침이 잘 지켜지는지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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