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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불 영화 '지푸라기', 잔혹한 장면 강조 안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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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불 영화 '지푸라기', 잔혹한 장면 강조 안 한 이유

    [노컷 인터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김용훈 감독 ②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김용훈 감독을 만났다.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거액이 든 돈 가방을 둘러싼 사람들의 악전고투를 그린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여성 종업원이 나오는 술집을 운영하는 사람, 거기서 일하는 사람, 돈 안 갚으면 뭐든 하려는 고리대금업자가 나온다.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위법·탈법을 저지르고, 성실한 노동자도 남의 것을 탐낸다. 돈을 차지하기 위해 폭력과 협박, 나아가 살인이 동원되니 '청불'이 안 될 리 없다.

    그런데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보기 위해 '엄청난 비위'가 필요하지는 않다. 물론 소름 돋는 잔인한 상황이 묘사되긴 하지만 뉘앙스를 흘리는 편이지, 굳이 가까이서 길고 자세하게 노출하진 않는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용훈 감독은 관객들의 피로도를 고려해 이런 선택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 보는 행위를 조금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이다.

    또한 김 감독은 끝내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은 순자-영선 고부 관계, 영화에서 좋아하는 장면, 끝까지 가지고 가려고 했던 원칙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화 일을 하게 된 계기, 여러 창작물 중 '영화'라는 매체였던 이유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일문일답 이어서.

    ▶ 극중 영선(진경 분)과 순자(윤여정 분)의 관계가 알쏭달쏭하다. 영선은 남편 중만(배성우 분)에게 치매 걸린 시어머니의 난동 때문에 피로하다고 호소하고, 순자는 아들 중만에게 며느리가 사납게 군다며 날 선 말을 늘어놓는다. 끝까지 알쏭달쏭하게 남긴 이유가 있다면.

    그런 관계라고 생각했고, 관객도 알쏭달쏭한 상태를 더 재밌게 느낄 것 같았다. 진경 선배님 기존에 봤던 이미지 생각하면 뭔가 세련된 느낌이 있지 않나. 이 캐릭터(영선)는 찌들어 있는 현실 때문에 순응하는 며느리다. 그걸 그런 느낌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아닌, 뭔가 한 방 할 것 같은 이미지의 진경 선배님이 하는 게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강화한다고 생각했다.

    윤여정 선생님도 평소 옳은 말, 직설을 많이 하시고. 그런데 영화에서는 헛소리를 한다? 평소 가진 이미지와 캐릭터가 충돌하는 게 재미있다고 봤다. 둘의 관계가 정확하게 정리 안 되는 게 엔딩까지 연결되는데, 어찌 됐든 (영선이) 집으로 가는지 안 가는지는 모른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그 선택이, '돈 가방이 쥐어졌을 때 당신들은 어떤 선택을 할 거냐?'라는 질문과 맥락이 닿는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메시지가 아주 뚜렷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가방이 (사람들을) 지나오면서, (사람들이) 이걸 탐하기 시작했을 때 재앙이 벌어졌다. 그런 가이드라고 봤다. 뜻하지 않은 재물이 자기한테 닥쳤을 때 그걸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만약 영선이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게 해피엔딩 같지는 않더라. 재앙이 찾아오는 물건이니까, (집에 가면) 또 다른 재앙이 올 것 같은. 생각해 보면 무서운 거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출연한 배우들. 왼쪽 위부터 아래로 허동원, 배성우, 진경, 윤여정, 배진웅, 정가람. 오른쪽 위부터 아래로 전도연, 박지환, 정우성, 김준한, 신현빈, 정만식 (사진=㈜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공)

     

    ▶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인데도 잔혹하거나 선정적인 부분을 비교적 잘 숨겼다는 인상이었다. 이렇게 연출한 의도가 궁금하다.

    폭력적인 상황이 많이 발생하니까 계속 전시하듯이 보여주면 관객들의 피로도가… (웃음) 보다가 뛰쳐나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웃음) 영화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놔 버리는 경우도 있지 않나. (이 영화는) 어찌 보면 되게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가졌기 때문에, 너무 황당해서 관객이 웃음 터지는 상황이 있다. 그게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코엔 형제의 '파고'를 보면 분쇄기에 시체를 가는(갈아버리는) 장면이 있는데 카메라가 저 멀리서 되게 아무렇지 않게 잡아서 황당하다. '잔인하다'라는 게 아니라 황당해서 '허' 하고 웃음이 나온다. 그게 되게 리얼하더라. 멀찍이 그 상황을 보면 사람의 죽음이 더 서늘하더라. 그게 더 실제 같으니까 인상에 더 남는 것 같다. (저도) 이 영화가 가진 피로도를 희석하면서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표현하려고 했다.

    ▶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나 장면이 무엇인가.

    마지막에 윤여정 선생님이 내뱉는 독백.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그게 테이크를 두 번 갔는데, 첫 번째 테이크는 선생님이 생각하는 거로 갔고 두 번째가 제가 디렉팅한 거였다. 저는 담담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현장에서는 두 번째 것을 썼다. 그것도 좋았는데 편집실에서 첫 번째 테이크를 다시 한번 봤다. (기억에선) 나쁘지 않았다 정도였는데 다시 보니 그게 훨씬 더 좋더라.

    약간 묘한 미소를 띠면서 대사를 하는데, 그 웃음이 노모가 정신이 돌아온 건지 안 돌아온 건지 미스터리 같은 느낌을 주더라. 그런 상태에서 중만의 머리를 털어준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노모가 (영화의) 주제를 얘기할 때, 누군가를 가르치듯이 교조적으로 하기보다는 살짝 '이게 뭐지?' 싶은 게 낫다고 봤다. 집엔 불이 났고, 엄마(윤여정)는 여전히 이러고 있는데 거기서 너무 페이소스가 생기는 거다. 음악도 아주 신파적인 게 아니라, 블랙코미디가 살짝 묻어나게 썼다. 저는 그 장면을 여러 가지로 좋아했다.

    ▶ 여러 명의 주인공이 나오고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는, 연출하기 만만치 않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감독으로서 흔들리지 않고 지키려고 했던 부분이 있다면.

    '이건 오케스트라 같은 영화다'라고 얘기를 많이 나눴다. 한 명의 독주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앙상블을 이뤄서 좋은 합주를 만들어내는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물의 조합에 신경 썼다. 이 캐릭터가 저 캐릭터랑 마주칠 때 느낌이 어떤지. 악기도 다른 악기와 부딪힐 때 다른 느낌이 나오지 않나. 그런 재미를 관객에게 선사해야겠다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 언론 시사회 후 어떤 반응을 체감했나.

    그래도 좋게 봐주신 분들이 있어서 저는 힘을 많이 얻었다. (관계자 중에) 불안함이 있었던 사람도 있더라. 영화 다 만들고 이틀 뒤에 로테르담으로 떠났다. 관객과 처음 만나는 거였는데, (그때) 반응이 뜨거워서 자신감을 얻고 왔다. 정작 한국은 (개봉 전에) 초조한 반응이었던 것 같은데… (웃음)

    ▶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저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워낙 좋아했고 영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고2 때였다. 영화만 좋아했지 감독이 구체적으로 뭔지 몰랐다. '히치콕과의 대화'라는 책을 읽고 영화감독이 이렇게 많은 요소를 결정하는 사람이구나, 이런 이야기를 관객한테 전달할 때 연출로서 이런 걸 보여줄 수 있구나 알게 됐다. 되게 재미있었고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연출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연출부 생활도 좀 하고 졸업작품으로 단편 다큐멘터리 찍고 하다가 다른 회사에 잠깐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나오는 캐릭터는 각자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어떤 상황에 부닥치느냐에 따라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부문에서 일한 것으로 안다. 회사 생활이 지금 감독을 하면서 도움이 많이 됐는지.

    기획·제작이랑 투자 쪽에 있었다. 많이 도움 됐다, 사실. 영화는 기획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않나. 아이디어로 시작하는 거라 시놉시스를 많이 섰다. 보통은 제가 좋아하는 취향으로 쓴다면, (회사에선) 의뢰받아서 쓰다 보니까 여러 장르를 써 봐서 많이 도움 됐다. 제작팀에선 또 다른 면을 알게 됐고, 투자팀에 있으면서는 좀 전체적인 걸 보게 되었다. 다행히 좋은 감독들과 작업 많이 해서 배우들, 스태프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옆에서 봤다. 좋은 감독은 영화 속에서 본인이 추구하려는 바가 되게 명확하지 않나. 그걸 어떻게 지켜나가는지를 보면서 저도 체득하려고 했다. (회사는) 한 10년 다닌 것 같다.

    ▶ 좋은 감독은 본인이 추구하려는 바가 명확하다고 방금 말했는데, 본인이 추구하고 싶은 바는 무엇인가.

    결국은 새로운, 뻔하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을 시도해 보려고 하는데 너무 어렵다, 사실. 이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전해 보려고 한다. 기본적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 같다. 이번 '지푸라기'처럼,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이자 이런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영화. 그런 것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서스펜스가 깔린 상태에서 유머가 들어간 영화를 좋아하고, 저 역시 그런 것들을 시도해보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뭔가 유머가 있거나, 긴장감 있는 스릴러를 만들거나 그 사이에서 복합적인 걸 추구할 것 같다. 긴장과 유머는 사실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출할 때 제일 재미있는 포인트이기도 하고. 아, 저는 멜로나 휴먼 장르는 안 들어가지더라. (웃음)

    ▶ 직접 감독으로서 현장을 이끌어 보니 어땠나. 이번에 느낀 감독의 애환이라든가, 그런 게 있을까.

    뭐라 그럴까 겸손해진다. 영화는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더라. 저는 아직은 초급 단계의 연출자이지 않나.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알아가야 하는 게 너무 많다. 이번 작업은 너무 좋은 스태프, 배우들과 작업해봤기 때문에 저한테는 확실히 좋은 자양분이 되었던 것 같다.

    ▶ 창작욕이 '영화'라는 결과물로 이어진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영화는 관객이 극장 안에서 딱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콘텐츠다. 두 시간 안에 관객을 어떻게 끌고 갈지 이야기 포맷을 가지고 있다는 게 영화만의 매력이다. 시네마틱한 매력! 그리고 영화는 오래 남지 않나, 사실.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영화만!' 이런 생각은 안 한다. 그럼에도 영화만의 매력은 너무나 뚜렷하다.

    ▶ 차기작 계획은.

    다 여쭤보신다. (웃음) 저번 주에는 사실 로테르담 다녀오고 개봉 준비하고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최근에는 조금씩 이걸 해 볼까, 저걸 해 볼까 아이템을 정리하고 있다. 원래 썼던 시나리오를 해 보려고 하다가 조금 다르게 하고 싶은 아이템이 떠올라서 그걸 정리하는 단계다. <끝>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2018년 8월 30일 크랭크인해 2018년 11월 30일 크랭크업했다. (사진=㈜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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