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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명 생명 앗아간 2년 전 그날…'인재 꼬리표' 밀양 참사 "잊지 말아야"



경남

    47명 생명 앗아간 2년 전 그날…'인재 꼬리표' 밀양 참사 "잊지 말아야"

    화재 상흔 남아 있는 밀양세종병원 새 주인 찾아…발길 끊긴 주변 상점
    올해 추모식도 열리지 않아 "잊혀지는 것 같아 쓸쓸"

    2년 전 1월 26일 밀양 세종병원에 불이 나 47명이 숨지고 112명이 다쳤다. (사진=자료사진)

     

    2018년 1월 26일 오전 밀양세종병원에 불이 났다는 다급한 신고 전화가 119에 걸려왔다.

    1층에서 시작한 불은 유독 가스를 내뿜으며 순식간에 6층 전체를 삼켰고 입원 환자와 의료진 등 47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리고 112명이나 다쳤다.

    '인재'라는 꼬리표는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세종병원 화재에도 따라붙었고, 병원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징역 8년 형이 확정됐다.

    2년이 지난 지금, 참사의 아픔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 화재 상흔 여전한 세종병원··"말도 못 한다" 발길 끊긴 상점들

    23일 기자가 찾은 밀양 세종병원 건물은 유리창이 깨지고 그을림이 남아 있는 등 화재의 상흔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병원 간판은 아픔을 잊으려는 듯 하얀 천으로 가려져 있고 철제문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다.

    병원 뒤로 가봤더니 공사 인부들이 내부에 있던 그을린 쓰레기를 트럭에 싣고 있다. 밀양의 한 병원이 흉물로 방치된 세종병원 건물을 인수해 올해 4월 개원을 준비 중이다.

    병원이 운영될 때에는 환자와 가족들로 붐벼 인근 상가도 북적였는데 지금은 문을 닫은 곳도 있고 썰렁하기만 하다.

    2년이 지났지만 밀양 세종병원 건물은 유리창이 깨지고 그을림이 남아 있는 등 화재의 상흔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진=이형탁 기자)

     

    16년째 방앗간을 운영하는 김모(75)씨는 "말도 못 한다. 불나기 전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간호사들이 참기름도 많이 사갔다"며 "지금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주민 이모(83)씨는 "듬성듬성 마을이 비어 있어 이 빠진 동네 같다"며 "얼른 병원이 들어서 동네가 바빠져야 한다"고 말했다.

    ◇ "들춰내고 싶지 않겠지만 그래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해에는 1주기 추모식이 열렸지만, 올해는 열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이제는 덮자고 그만 잊을 때도 됐다며 아픈 기억을 꺼내기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유족은 아직 고인을 보내지 못해 길고 긴 법정 다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박모(30)씨는 참사 때 10여 년간 세종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한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는 2017년 12월 교통사고로 입원하고 참사 당일 병원 2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년이 흘렀다. 아픔의 기억은 여전히 가슴의 상처로 남아 있다.

    유족은 아직도 한 달에 2~3번 어머니가 놓인 밀양 한 추모관을 찾는다. 어머니 자리에 놓인 수첩에는 자녀들이 남긴 '사랑한다', '보고싶다'는 메모가 가득하다. 이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이곳에 제사상을 차린다.

    박 씨 동생은 어머니가 '롤모델'이었고 영웅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빈자리로 남겨진 '간호사'가 됐다.

    추모관에는 자녀들이 남긴 '사랑한다', '보고싶다'는 메모가 가득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이곳에 제사상을 차린다.(사진=박모씨 제공)

     

    박 씨는 "엄마가 일하던 병원을 자주갔고, 엄마를 보면서 간호사란 꿈을 키웠다. 자연스레 간호사로 지금 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박 씨 유족은 밀양시에 1주기 추모제를 열어달라고 요구해 열렸지만, 올해는 시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요구를 하지 않으니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씨는 "사람들이 대형참사라는 아픈 상처를 더이상 들춰내고 싶지 않다는 건 이해하지만 국가 만큼은 절대 이 사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병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1년 넘게 이어져 몸과 마음도 지친 상태다. 고생만 하고 간 어머니를 쉽게 보낼 수 없어서다.

    설령 길고 긴 세월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아도 문제다. 세종병원재단은 돈이 없어 보상을 받을 가능성도 희박한 상태다.

    박 씨는 "지자체나 국가는 이렇게 유족들을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숨진 딸만 찾다가 아버지도 병 얻어 "누구도 관심없어 쓸쓸"

    문모(45)씨는 세종병원 화재로 3살 터울의 언니를 잃었다. 언니는 참사 전날 감기로 입원했다가 하루 만에 생사가 뒤바뀌었다.

    아픈 노인들을 돌보겠다며 요양 보호사로 10여 년 간 일했던 언니를 문씨는 그대로 보낼 수가 없었다.

    언니가 숨진 후 가족들에게는 또다른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거의 매일 추모 공원을 찾아 가슴 치면서 울었던 문 씨의 아버지가 근육이 쇠약해지는 희귀병인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문 씨는 "충격을 먹고 사경을 헤매다 지금도 병마와 싸우고 있다"며 가슴 아파했다.

    지난해에는 참사 1주기 추모식이 세종병원 주차장에서 열렸다. (사진=이형탁 기자)

     

    문 씨도 올해 열리지 않는 추모식에 마음이 좋지 못하다.

    지난해에는 정치인들까지 참석하며 떠들석했던 1주기 추모식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올해는 총선이 있는 해여서 그런지 2년 만에 대형참사가 잊혀지는 것 같아 못내 씁쓸하다.

    문 씨는 "유족들은 흩어지고 재판은 벌써 1년이 넘게 진행 중"이라며 "곧 참사 2주기인데 누구하나 관심가져 주는 사람이 없어 쓸쓸하다"고 답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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