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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설날 맞는 장점마을, 암 투병에도 '자식 걱정'



전북

    [르포]설날 맞는 장점마을, 암 투병에도 '자식 걱정'

    공장은 멈췄지만, 묻힌 연초박 그대로
    명절에 가족들 오면 오래 머물지 못해
    이사 권유에도 고향 떠나기 힘든 주민
    "집 팔고 떠나려해도 살 사람 없어요"

    2006년 4월 13일 장점마을 경노회원 청와대 방문 기념사진. 이 중 12명은 암에 걸려 세상을 등졌다. (사진=남승현 기자)

     

    익산 장점마을 주민들은 비료공장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오염된 곳'이라며 폄하하는 곳, 누군가에겐 평생을 살아야 하는 고향. 암이 주는 고통도 있지만 주변의 시선으로 올해 설날은 더 차갑게 다가온다. 행여나 피해를 물려 주지 않을까, 객지 생활을 하는 자식을 더 걱정하는 장점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설날을 이틀 앞둔 지난 23일, 점심시간이 되자 장점마을 어르신 10명이 모였다.

    암 발병으로 마을 분위기가 삭막해지자 어르신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며 안부를 묻는 풍경은 일상이 됐다.

    이날은 흰 쌀밥에 된장국과 김치, 콩나물·깻잎 무침, 구운 김이 상에 올랐다.

    장점마을에서 혼자 사는 박종근(65)씨는 지난해 7월 건강 검진에서 신장암이 발견됐다. (사진=남승현 기자)

     

    장점마을에서 혼자 사는 박종근(65)씨는 지난해 7월 건강 검진에서 신장암이 발견됐다.

    박씨는 여전히 공장에 묻혀 있는 담배 찌꺼기(연초박)를 우려하면서 설날에 찾아올 가족들을 걱정했다.

    "가족들도 잠깐 있다가 보내야죠. 오래 있으려고 하지도 않고…"

    이어 박씨는 "가족들이 장점마을에서 나온 음식은 갖다 먹으려고 않는다"고 말했다.

    위암에 걸린 김영환씨(82)가 청와대 방문 기념 사진을 보이고 있다. (사진=남승현 기자)

     

    위암에 걸린 김영환(82)씨는 수술 5년 만에 몸무게가 16㎏이 빠졌다.

    비료 공장 때문에 16명이 죽었다. 현재 장점마을 주민 100여 명 중에서는 김씨를 포함한 17명이 암에 걸려 있다.

    김씨의 아내도 피부병을 달고 산다.

    김씨는 벽면에 붙은 사진을 가리켰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2006년 4월 13일 청와대를 찾았을 당시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도시로 나간 가족들은 김씨에게 이사를 권유한다.

    "늙어서 어디 가서 뭘 먹고 살겠어요. 농촌에서 살다가 죽어야지…"

    경로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장점마을 주민들. (사진=남승현 기자)

     

    부엌에서 밥을 짓던 정앵자(79)씨도 근심이 가득하다.

    손녀와 손자들은 할머니에게 "빨리 집을 나오라"고 말하지만 집은 쉽게 팔리지 않았다.

    도시에 사는 친구가 던진 말은 정 씨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건강해지려고 농촌에 갔는데 왜 더러운 데로 갔냐고 말하더라고요. 내가 해준 밥도 먹지 않았어요…"

    연초박으로 비료를 만든 금강농산에 남아있는 폐기물. 마을주민들은 산업폐기물과 화학약품들이 아직도 묻혀 있다고 말한다. (사진=남승현 기자)

     

    집단 암 발병이 마을 주변 비료 공장이 묻은 연초박 때문인 것으로 원인이 밝혀졌지만 주민들을 위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1995년 장점마을에 집을 지은 김순덕(66)씨는 항상 목이 잠겨 있다. 다행히 암에 걸리진 않았지만 갑상선 혹과 피부병을 앓고 있다. 지금은 출가한 막내딸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집 바로 옆에는 비료공장이 있다.

    비료공장은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에도 가동됐다. 도란도란 둘러앉아 차례를 지낸 가족 모두가 매연을 들이 마신 것이다.

    연초박은 '현재 진행형'이다. 매립된 폐기물을 치워야 하는 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김씨는 말했다.

    "공기 좋은 시골에 집은 짓고 살고 있는데, 갑자기 공장이 들어오고 비가 오면 연기가 가라앉아 더 힘들었어요. 가족들은 걱정하죠. 집을 팔아서 나가라고. 누가 사야 나가죠."
    연초박으로 비료를 만들었던 금강농산은 폐업해 텅 비어있다. (사진=남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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