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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 조진웅 "비릿함 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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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머니' 조진웅 "비릿함 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노컷 인터뷰] 영화 '블랙머니' 양민혁 역 배우 조진웅 ②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블랙머니' 양민혁 역을 맡은 배우 조진웅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 영화 '블랙머니' 내용이 나옵니다.

    조진웅 아버지는 조진웅이 대학생일 때 "제발 내 앞에서 지성인이라고 얘기하지 마라. 학비 내는 덩치 크고 아무 생각 없는 애들 같다"라는 소리를 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조진웅은 '아닌데… 꿈도 있고 연극으로 세상을 바꿀 건데'라는 생각을 했다.

    조진웅은 사모펀드 론스타의 대한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땐 재미가 없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재미가 있다, 없다를 떠나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성인이 되어서 이런 중요한 일을 몰랐고 관심도 안 가졌다는 것에 숙연함을 느꼈다는 고백이었다.

    검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는 많았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엘리트가 고액이 걸린 지능형 범죄를 저지르는 이야기도 희귀한 건 아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진웅은 이 영화가 기능적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며 "분명히 존재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영화가 나름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조진웅은 "홍보할 때도 상당히 당당한 마음이 있다"라고 밝혔다.

    ◇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달려든 양민혁이 변한 순간

    '블랙머니'는 '성추행 검사'라는 오명을 쓴 검사 양민혁이 일단 자기 누명을 벗고자 발버둥 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처음엔 좀 특이한 피의자에게 잘못 걸렸다는 생각만 했으나, 동료 검사 최프로(허성태 분)에게 들은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하루아침에 국내 대규모 은행이 부실 은행 취급을 받고 헐값 매각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양민혁은 경악한다.

    양민혁은 부장검사 김남규(조한철 분)가 사건에서 손 떼라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실체에 다가선다. 사적인 목적으로 시작했다가 공익을 위해 움직이게 되는 양민혁의 변화를 조진웅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는 "일단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라며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죽을 수도 있지' 할 만한 건 없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조진웅은 "하나의 생명인데, 아무런 리액팅들이 없다. 이상하잖아. 사람이 죽은 거라니까. 저는 거기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좀 의구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왜 넘어가려고 하는지…"라며 "그럼 오케이. 그럼 내가 수사한다? 그러고 가는 거다. 그때 가장 뜨겁게 달려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진웅은 '블랙머니'를 통해 정지영 감독, 배우 이하늬와 함께 처음으로 작업했다. (사진=질라라비, 아우라픽처스 제공)

     

    양민혁은 자기 수사관들과 자체 수사를 하다가 윗선의 부당한 압력 때문에 손발이 묶인다. 그러나 주저앉지는 않는다. 그때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의 고발을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외친다. 발을 구르면서. 목청이 터지도록. 이때 검사 배지를 집어 던지며 "아이고, 아버지"라고 한 것은 그의 애드리브였다.

    "'아이고, 아버지' 하는 건 사실 애드리브였어요. 검사가 된 이유도 그거고, 그냥 '아버지, 내가 이런 거로 정의구현 못 했어요. 여기까지인 것 같아요. 아버지 미안해요. 그러나 내가 이 말은 해야겠수다' 이런 거였던 것 같아요. 현장 사운드 픽업은 안 됐고 나 혼자 '아후~ 아버지' 이거였는데 그걸 감독님이 보신 거예요. 믹싱실에서. '뭐라는 거냐, 양민혁?' 하시고는 '크게 해 줘, 크게!' 하셨어요. 믹싱 장비가 엄청 좋아요. (웃음) 완전히 진일보됐어. 소리도 심을 수가 있더라고요. 적당히 믹싱된 것 같아요. 그 장면에는 많은 함축적인 의미가 있는데, 김나리(이하늬 분)도 마지막 아버지 문자 받잖아요. 결이 좀 다른 아버지이긴 한데, 아버지가 가지는 게(의미가) 뭉뚱그려서 '기성세대'일 수도 있다고 봤어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지점도 있고요. 아무튼 애드리브하고 나서 (스스로) '잘했네, 새끼~' 한 건 처음이었어요."

    "이렇게 외치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발을 구르잖아요.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동동거리잖아요. '엄마, 나 이거 사 줘' 하는 아이처럼. 아무도 안 알아주니까. 계속 동동거리는데, 엄마는 '이따가 보자~'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러다가 '이노무새끼!' 하고 때리잖아요. 그게 어디가 됐건. (영화 속에서도 저항이 심해지면) 공권력 투입하겠죠. 너무 울분이 터지잖아요. (그걸) 양민혁이가 대변했던 거 같아요. 웃픈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진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죠. 뗑깡밖에 더 있어요? 검찰의 직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해서라도 고하고 알렸어야 했다는 거죠. 배우 입장에서는 (연기하며) 굉장히 신명 났었어요. 한 세 테이크 더 갔으면 득음할 뻔했어요. 제 앞에 보조출연자분들이 계시니까 공연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조진웅이 되고 싶은 '좋은 사람'

    하지만 이 고발이 완전히 통쾌하지는 않다. 우선 극 안에서는 은행의 헐값 매각 결정이 뒤바뀌지 않는다. 론스타 사태 관련자 중 구속된 사람이 아무도 없고,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자막은 현실도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진웅은 "암담한 건 사실이지만 절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말을 시작했다.

    그는 "정부 패소율이 99%라고 한다. 누가 똥 싸고, 또 누가 치우냐 (이렇게만 보면) 암담할 것 같은데, 이번에 똥 깔끔하게 치우고 안 밟으면 되지 않을까.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우리는 영화인이라서 영화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블랙머니'는 검찰 개혁 요구가 뜨거운 시기에 개봉하게 됐다. 조진웅 역시 "신기하다. 이걸 의도했다면 정지영 감독님이 모피아(경제 관료 출신 인사들이 퇴임 후에 정계나 금융권으로 진출해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는 것을 마피아에 빗댄 말) 아닐까?"라고 너스레를 떨어 폭소를 유발했다.

    '블랙머니' 촬영장에서의 조진웅 모습 (사진=질라라비, 아우라픽처스 제공)

     

    그러면서 "우연이긴 한데, 거기(검찰 개혁)에 대한 힘을 더 보탤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국민이 염원하고 있고, 준비도 된 것 같다. 자료도 탄탄한 것 같고, 지금 안 되면 (검찰 개혁) 기회는 없다는 정도의 인식이 됐으니까"라고 덧붙였다.

    다른 연예인들이 정치·사회 이슈에 굉장히 말을 아끼는 것과 달리, 조진웅은 어떤 주제로도 거침없이 본인 생각을 전달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오랫동안 공식석상에 달고 나왔고, 부마항쟁 기념식에서 시 낭송을 맡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의 이유를 묻자 그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2014년 4월은 전 국민이 무기력한 때 아니었습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어른이 되어서 너무 미안했어요. 누구는 (저더러) 소신이 있다 그러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어른이라는 게 너무 부끄럽고, 아이들에게는 해명할 시간도 없었으니 반성하는 의미죠. 어떤 때는 세월호 배지를 떼는 게 어떠냐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도 어떨 땐 안 하고요. 글쎄요. 그래도 위로가 안 될 거예요. 뭐로 보상이 되겠어요. 전 목소리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목소리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러기 위해서 작업하면서 주인공을 하는지도 몰라요. 단역 땐 아무리 외쳐도 안 봐줘요. '이런 거 아닙니까?' 하면 '응, 좋은 생각이야' 하고 말죠. 지금은 (제) 얘기를 들으려고 하거든요. 제작사나, 감독님이나."

    조진웅은 "어떤 기자님이 양민혁 같은 선택을 할 거냐고 하시더라. 너무 힘들겠지. '암살'에서 되게 와닿는 대사가 있었다. '독립운동? 그거 3년은 열심히 합디다. 이게(돈이) 있어야 하지'라고. 양민혁은 3년은 버틸 것 같다. 저는… 한다고 해야지. 한다고 할 거다. 되게 힘들게 살겠지만 굶어 죽기야 하겠나"라고 말했다.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비릿함 없는 사람. (사람에게) 비릿한 게 보이면 저는 상종 자체가 일단은 어려운 거 같아요. 그냥 정직하게 '이거 봐봐' 하면 되는데, 막 에둘러서 이걸 안 보면 안 되는 상황처럼 만드는 게 이상해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제 에너지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못 들어와요. 좋은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좀 작년보단 덜 비겁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또, 죄지은 게 아니라면 당당하게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에 와서 겁나는 건 많이 없어요. 제가 무슨 권력을 가져서 겁나는 게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잘못한 게 아니면 무서울 게 없는 거예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벌벌 떨어야 할까요? 많은 사람이 이유 없이 그러더라고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반성할 건 반성하고, 그래서 좀 안 비겁해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양민혁처럼 살진 못 해요. 그렇게 정의롭게 살지 못해요. 건들면 달려는 들죠, 어떻게든. 아무튼 조금 더 정정당당하게, 소신껏 좀 살면 어떨까 싶어요." <끝>

    배우 조진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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