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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 세입자 죽음 뒤 벼랑끝 절망은 진행형…"밖은 용역, 집은 명도소장"



사건/사고

    화곡 세입자 죽음 뒤 벼랑끝 절망은 진행형…"밖은 용역, 집은 명도소장"

    • 2019-10-20 05:00

    재건축 지역 반지하서 세입자 극단선택…"벼랑 끝 내모니 없는 놈은 죽을 수밖에"
    상가 세입자도 같은 처지…"목돈 부어 자리 잡으니 이젠 보상 한 푼 없이 나가라"
    재건축 지역 세입자도 '재개발' 수준 보상 필요 목소리 높아져

    서울 강서구 화곡 1구역 재건축 단지 주택 문 앞에 '사용금지'가 적혀 있다.(사진=차민지 기자)

     

    "벼랑 끝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밖에는 용역들이 오가고 집에는 명도소송서류가 날아오는 데 절망을 안 할 수가 있겠냐"

    서울 강서구 화곡 1구역 재건축 단지에서 5년 넘게 살아온 주민 A(63)씨는 이같이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 4일 이 구역 한 주택 반지하 방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던 50대 남성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생활고에 더해 재건축을 앞두고 곧 거리로 내몰릴 처지가 되자 극심한 심적 압박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구역 주민들에게 "집을 비우라"는 뜻의 명도소장과 건물주의 압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지난 6월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현재 주민 상당수는 이주한 상태지만 여전히 떠나지 못한 이들도 있다. 대부분 보증금조차 당장 마련하기 힘든 사정의 궁지에 몰린 세입자들이다.

    A씨 또한, 계속되는 퇴거 요청에도 '떠나지 못한 이들' 중 하나였다. 최근 극적으로 임대주택에 계약할 때까지 우울증을 앓을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명도소송 서류가 날아오고 집을 구할 때까지 우울증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법은 모르니 가슴만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이어 "밖에는 용역이 감시하듯 지키고 있으니 무서워서 밤낮 문을 잠그고 살았다"며 세상을 떠난 세입자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동네에서 7년 넘게 살아온 세입자 박모(77)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영구임대 아파트에 당첨됐을 때 집주인이 계약기간을 핑계로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남을 수 밖에 없던 박씨는 이제는 이사비용 한 푼 없이 집에서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박씨는 "계약기간이 내년 6월까지라 조금 버티려 하니 집주인이 '고소고발하겠다', '돈을 안 돌려주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버티겠냐"며 "이렇게 내몰아대니깐 없는 놈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옆집에도 반지하에서 힘든 형편으로 살아가는 아저씨가 있는데 못 나가고 버티고 있다"며 "진짜 너무들 한다.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씩만 양보해주는 게 어렵냐"고 토로했다.

    이곳에서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버티는 건 단지 주택에 사는 세입자들만의 일은 아니다. 모아둔 목돈으로 작은 가게를 연 상가세입자들도 비슷한 처지다.

    직장생활로 번 돈을 '올인'해 부인과 함께 작은 애견샵을 차린 이모(46)씨는 이 곳에 자리잡은 지 4년도 채 안 돼 내몰릴 상황에 놓였다.

    이씨는 "3년 전 계약서를 쓸 때만 해도 재건축 이야기가 없었다"며 "인테리어를 시작할 때쯤 우연히 재건축 얘기를 들어 (건물주에게) 물었지만 '언제 할지도 모르니 그냥 마음 편하게 장사하라'고 말해 자리 잡았지만 이제는 10월 말까지 나가라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 1구역 재건축 지역 상가들 문 앞에 '출입금지'가 적힌 X자 노란 테이프가 붙어 있다.(사진=차민지 기자)

     

    몸만 옮기면 되는 주거세입자와 달리 장사를 하는 상가세입자들은 터전을 뜨기 더욱 어렵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씨는 "일반 주거 세입자 같은 경우 이사를 한 번 더 한다고 생각하면 이사비만 어떻게든 나온다면 (옮기기가) 아주 어렵지는 않다"면서 "인테리어를 비롯해 상가세입자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영업 못 하는 기간 등에 대한 법적 보상이 재건축지역 상가세입자에게는 하나도 없다"고 토로했다.

    끝으로 "지금까지 돈이 있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대출을 받아서 먹고 살자고 사업을 시작했다"며 "재개발이 아니고 재건축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상 없이 나가라고 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셈이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현행법상 이사비와 영업손실비용 등을 보상받는 재개발 지역 세입자와 달리 재건축 세입자는 별다른 보상을 받을 길이 없다.

    지난해 12월 아현2구역에서 철거민 고(故) 박준경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서울시는 재건축 사업시행자(조합)가 세입자에게 보상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마련했지만 강제 조항은 아니어서 실효성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재건축지역 상가세입자들은 재개발지역 세입자들과 상황은 같지만 어떠한 보상 없이 밀려나는 처지"라며 "재건축사업이 미치는 교통, 거주 등 주변 영향을 고려할 때 재개발과 마찬가지로 공익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재건축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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