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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살에 깨친 한글... 세월아 조금만 기다주렴, 응?"



사회 일반

    "77살에 깨친 한글... 세월아 조금만 기다주렴, 응?"

    시 <세월아 기다려> 특별상 수상
    산골 8남매 맏딸..학교도 못 다녀
    지금은 중학생 "영어 산수 어려워"
    77살 내가 한글을..너무 행복하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안춘희(늘푸름학교 어르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세월은 내 인생을 싣고 훨훨 날아가네.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몰라주니. 세월아, 천천히 터덜터덜 나하고 가자꾸나.’ <세월아 기다려="">라는 시의 한 구절을 제가 읽어드렸습니다. 서울지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이라는 대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지은이는 올해 연세 77살의 안춘희 할머님입니다. 한글을 깨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쓴 시로 이렇게 큰 상을 타시게 됐다는군요. 오늘 한글날이어서 더욱 뜻깊은 만남이 될 것 같습니다. 화제 인터뷰. 늘푸름학교 안춘희 어르신 만나보죠. 안춘희 할머님, 안녕하세요?

    ◆ 안춘희>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축하드립니다.

    ◆ 안춘희> 감사합니다.

    ◇ 김현정> 특별상 타셨어요.

    ◆ 안춘희> 네.

    ◇ 김현정> 그 많은 분들이 출품하신 데서 ‘특별상 안춘희’ 이 소식 듣고는 어떠셨어요?

    ◆ 안춘희> 너무 기쁘고 떨렸어요.

    ◇ 김현정> 떨리셨어요.

    ◆ 안춘희> 너무 기뻤죠. 저는 상이라는 건 처음 받아봤기 때문에. 너무 기뻤습니다.

    ◇ 김현정> (웃음)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셨어요?

    ◆ 안춘희> (웃음) 네.

    ◇ 김현정> 볼도 막 꼬집어보시고.

    ◆ 안춘희> 그 정도로 기뻤습니다, 아주.

    ◇ 김현정> 아니, 그러니까 한글을 깨치신 지 얼마 만에 이렇게 상을 타신 거예요?

    ◆ 안춘희> 한글을 배운 연도수는 많았을 거예요. 제가 혼자 살면서 생계비도 벌어야 되고 했기 때문에 (공부하러) 복지관에 다녔는데 서울삼성초등학교에 모집한다 그래요. 그래가지고 작년 봄에 거기 들어 가가지고 1년 거기서 다녔어요.

    ◇ 김현정> 그러면 초등학교 졸업하시고 올해 중학교 들어가서.

    ◆ 안춘희> 올봄에 졸업하고, 올봄에 바로 3월달에요.

    ◇ 김현정> 그러니까 올봄에 중학교 입학한 학생이신데 이렇게 상까지 타신 거예요? 아니, 올해 연세 77살이시면 그럼 몇 년생이시죠, 할머님?

    ◆ 안춘희> 43년생이죠.

    ◇ 김현정> 43년생. 예전에 학교 못 다니신 건 다 사연이 있으시겠죠, 기막힌 사연들이.

    ◆ 안춘희> 저는 아주 시골 산골에서 커가지고 8남매의 맏딸이에요.

    ◇ 김현정> 산골 어디 사셨어요?

    ◆ 안춘희> 경북 예천이에요. 예천에서도 아주 산골에. 어른들 말로는 한 20리를 더 들어간다는 그 산골에서 컸어요. 그래가지고 동생들 많고 농사지으니까 동생들 업어 키우느라고.

    ◇ 김현정> 동생들이 줄줄이 있는데 어디 누나가 학교를 다녀. 그런 거네요.

    ◆ 안춘희> 못 다니죠. 그렇죠. 그리고 어디 계집애가 글을 배우느냐고. 우리 엄마, 아버지 말이에요, 그냥. 계집애는 글을 안 배워도 된다고. 살림만 잘하면 되지 이러면서. 그러다 보니까 학교에 아예 한 번도 못 가봤어요. 그랬는데 생계비를 벌어야 되고 그래서.

    ◇ 김현정> 무슨 장사하셨어요?

    ◆ 안춘희> 장사는 안 하고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니까 식당 같은 데 가서 막일했죠. 허드렛일 했죠, 그냥.

    ◇ 김현정> 그렇군요.

    ◆ 안춘희> 식당에 일하면서도 글을 모르니까 너무 힘든 일이 많았어요.

    ◇ 김현정> 어떤 일들이 있었어요? 허드렛일하면서도 사실 한글 모르면 이게 아주 기본적인 거라서 보통 불편한 게 아니셨을 텐데.

    ◆ 안춘희> 불편하죠. 재료가 떨어지면 적어주고 주인 보고 사오라 해야 되는데 그걸 못 했어요. 그런 걸 못 하고 그러니까 주방장한테 이야기하면 주방장이 그런 것도 못 적느냐고.

     

    ◇ 김현정> 무시하고. 그런데 지금 살아오신 행적을 굽이굽이 다 듣다 보니까 그러실 수밖에 없겠네요. 정말 고생 많이 하면서 사셨네요, 할머니. 그렇게 해서 공부를 초등학교 들어가서 해 보니까 잘 되시던가요?

    ◆ 안춘희> 한다고 하는데 너무 어려워요. 초등학교보다 중학교가...

    ◇ 김현정> 어렵죠. 어려워요, 그게.

    ◆ 안춘희> 영어하고 수학이 그렇게 어려운 거예요.

    ◇ 김현정> 영어하고 수학. 영어는 좀 재미있지 않으세요?

    ◆ 안춘희> 재미있고 어렵기는 한데 혀도 잘 안 돌아가고.

    ◇ 김현정> 할머니, 그러면 영어는 중학교 제일 처음에 들어가서 나는 안춘희입니다 이것부터 배우잖아요. 마이 네임 이즈 이거. 이거 조금 영어로 한마디 소개 어떠세요?

    ◆ 안춘희> 잊어버려서 지금. 옛날에 배운 게 있었는데 잊어버렸어요.

    ◇ 김현정> 헬로. 왓츄 어 네임. 이런 거 조금이라도. (웃음)

    ◆ 안춘희> (웃음) 헬로, 굿모닝, 굿이브닝. 이런 거 조금씩 배우고는 있는데 또 잊어버렸어요.

    ◇ 김현정> 잘하시네요. 그거 하시면 되는 거예요.

    ◆ 안춘희> 잊어버렸어요, 지금.

    ◇ 김현정> 아이고, 그렇게 영어 배우시고.

    ◆ 안춘희> 네, 그렇게 배우고. 그런데 산수는 죽어도 안 돼요. 지금도 안 되더라고, 산수는. 너무 기초가 없으니까요.

    ◇ 김현정> 원래 그래요. 수학은 젊은이들도 다 어렵다고 하는 건데 제가 지금 이 말씀을 쭉 나누면서 느껴지는 게 어려워요, 혀가 안 돌아가요, 산수는 못 해요 하시면서도 그냥 기쁨이 묻어나시네요, 그 목소리에.

    ◆ 안춘희> 너무 행복하죠. 이런 거 진짜 77살인 나한테 이런 건 생각도 못 했는데 기쁘죠, 그냥.

    ◇ 김현정> 할머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꿈에 그리던 학교도 가고 한글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고 문학도 배워서 이렇게 시로 상까지 타신 거잖아요. 그 시를 제가 아까 조금 맛보기로 좀 읽어드리기는 했습니다마는 우리 작가가 직접 낭송을 좀 해 주시면 어떨까요, 청취자들한테.

    ◆ 안춘희> 이것도 책도 읽는 규칙이 있던데 제가 아직도 그런 걸 잘 못해요, 그냥.

    ◇ 김현정> 그런 거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할머님의 그 목소리로.

    ◆ 안춘희> 괜찮아요?

    ◇ 김현정> 지은이의 목소리로. 저희가 음악을 이렇게 깔아드릴게요. 그러면 음악 들으시면서 쭉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읽으시면 돼요, 할머님?

    ◆ 안춘희> 네.

    ◇ 김현정> 출발.

    ◆ 안춘희> 지금 읽어요?

    ◇ 김현정> 지금이요.

    ◆ 안춘희>

    <세월아 기다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세월은 내 인생을 싣고
    훨훨 날아가네.

    너는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몰라주니.
    세월아
    천천히 터덜터덜
    나하고 같이 가자꾸나.

    몰랐던 걸 배우니 너무 기쁘다.
    이제야 조금씩 눈을 뜬 것 같은데.
    답답했던 내 마음이 조금 뚫렸는데
    내 몸은 이렇게도 아플까.
    세월아 기다려주렴, 응?

    ◆ 안춘희> 너무 이상하죠?

    ◇ 김현정> 아니, 아니에요. 가슴이 쿵 했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눈을 뜨는 것 같은데 내 몸은 왜 이리 아플까. 세월아 기다려줘’ 하고 ‘응?’ 하고 물음표. 여기가 백미네요, ‘응?’

    ◆ 안춘희> 그래요?

    ◇ 김현정> 어떤 마음으로 쓰신 거예요, 할머님?

    ◆ 안춘희> 이건 그냥 학교에서 그때 금방 시를 쓰라 해가지고 이렇게 쓰기는 했는데 이게 뭐 꼭 등수에 든다는 생각도 안 했고 그냥 그 당시에 이렇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내 몸도 또 너무 아프고. 그래서 어떻게 쓰다 보니까 또 이렇게 됐어요.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까지도 가고 싶은데.

    ◇ 김현정> 다리가 편찮으세요.

    ◆ 안춘희> 수술을 했어요, 지금.

    ◇ 김현정> 아이고, 관절염 수술하셨구나.

    ◆ 안춘희> 네, 관절염 수술을 했어요.

    ◇ 김현정> 할머님, 다리 좀 편찮으시더라도 저는 꼭 고등학교 마치시고...

    ◆ 안춘희> 그러면 너무 감사해요. 저도 막 그러고 싶어요. 그러면 이 마음이 또 북받쳐서.

    ◇ 김현정> 내친김에 대학까지 가셔야죠.

    ◆ 안춘희> 글쎄요. 아유, 대학 가려고 하면 되나. 이거 얼마나, 할 수 있으면 대학도 가고 싶어요, 진짜.

    ◇ 김현정> 가고 싶으시죠.

    ◆ 안춘희> 이번에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가지고 전부 선생님, 학생들, 교복 입고 사진을 찍어 보낸 게 너무 부럽고 막 울었어요, 그냥.

    ◇ 김현정> 수학여행을 다리 때문에 못 가셨어요, 편찮으셔서?

    ◆ 안춘희> 네, 못 갔어요. 하필 또 그때 너무 아프고 그때 수술을 막 한 상태였어요.

    ◇ 김현정> 아이고.

     

    ◆ 안춘희> 사진을 계속 카톡으로 올려주는데 너무 부러운 거예요, 그냥.

    ◇ 김현정> 너무 부럽고 속상하고.

    ◆ 안춘희> 네, 속상하고. 그래가지고 사진 보내줘서 너무 울었어요.

    ◇ 김현정> 지금도 좀 우시는 것 같아요, 우리 할머니.

    ◆ 안춘희> 네.

    ◇ 김현정> 눈물 좀 닦으시고요. 지금 좋아서 우시고 또...

    ◆ 안춘희> 맞아요.

    ◇ 김현정> 옛날 생각나서 우시고.

    ◆ 안춘희> 하나도 글을 모를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하나도 답답한 것도 없고. 그런데 이제 조금씩 알 만하니까 더 답답한 거예요, 이게.

    ◇ 김현정> 더 답답한 거예요?

    ◆ 안춘희> 네.

    ◇ 김현정> 알 만하니까 몸은 안 따라주고.

    ◆ 안춘희> 네, 맞아요.

    ◇ 김현정> 그래요. 할머니, 보니까 제가 짧은 대화 나눴지만 참 열정적이신 분 같고 이런 분이라면 얼른 털고 일어나서 고등학교, 대학교, 작가의 꿈도 이루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안춘희> 너무 감사해요. 진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지금도 생각하면 그래요. 어떻게 이게 당첨이 돼서 이렇게 또...

    ◇ 김현정> 할머니, 고등학교 가시게 되면 꼭 저희한테 연락 한번 다시 주세요.

    ◆ 안춘희> 그럴게요.

    ◇ 김현정> 건강하십시오. 오늘 고맙습니다.

    ◆ 안춘희> 네,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 김현정> 우리가 그냥 학교 다니고 글 배우고 뭐 이런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어떤 분에게는 이렇게도 어렵고 이렇게도 귀한 일이었네요. 올해 중등 과정을 다니면서 서울 지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이라는 대회에서 특별상을 시상하셨습니다. 77살의 안춘희 할머니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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