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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이상근 감독이 잃고 싶지 않은 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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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시트' 이상근 감독이 잃고 싶지 않은 초심

    [노컷 인터뷰] '엑시트' 이상근 감독 ②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을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영화 '엑시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봉 8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은 아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엑시트'가 장편영화 데뷔작인 까닭이다. 하지만 그가 만든 단편은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베이베를 원하세요?'는 미쟝센 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영화제 10주년 때는 특별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명환이 셀카'는 2007 대구단편영화제 국내경쟁 대상을, '간만에 나온 종각이'는 2010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대구단편영화제에 공식 초청됐고, 2010 미쟝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특별히 영화감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내러티브(정해진 시공간 내에서 인과 관계로 이어지는 허구 또는 실제 사건들의 연속)가 있는 창작물에 관심을 뒀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방송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고, 영상 전공을 해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뻗어갔다.

    학부에서 영상을 전공한 그는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연출부로 일했다. 그 후 한예종에 붙어 대학원생으로 지냈다. 40대 초반,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데뷔한 편이지만 사실 조급하지 않았다는 이상근 감독을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일문일답 이어서.

    ▶ '엑시트'의 주인공 용남(조정석 분)의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 백수다. 어머니 현옥(고두심 분) 칠순 잔치 때 용남의 초라한 위치가 특히 부각된다. 본인의 경험을 녹인 부분도 있나.

    겪고 느꼈던 게 사실 많긴 하다. 저도 용남이처럼 꿈이 있고 현실화시키는 단계인데, 영화 감독님들 만나보시면 알겠지만 그게 쉽지 않은 길이지 않나. 남들이 보기엔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할 거다. 다른 친구들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취직하고 가정을 이뤘으면 좋겠는데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을 겪다 보니까, '아, 나는 나를 언제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놨던 게 영화 안에 재미있게 들어간 것 같다. 앙심을 품고 그런 건 아니었고 '보기에 재미있다' 싶은 감정을 나중에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 용남은 처음 스크린에 등장할 때부터 범상치 않다. 철봉 장면을 맨 앞에 넣은 이유가 궁금하다.

    뭔가 멋진 모습이 갑자기 반전되는 캐릭터, 거기서 나오는 유머가 필요했다. 사실 철봉 하는 건 용남이 본인에게는 되게 숭고한 의식 같은 거다. 근데 알고 보니 되게 조그만 동네 놀이터에서 하는 거였고, 주변 할머니들은 한심하게 바라보지 않나. 그 상황에 대한 아이러니를 주고 싶었다. 뒤통수 맞는 느낌이랄까. 거기서부터 (관객들을) 좀 풀어지게 만드는 거다.

    (철봉 씬은) 씨를 뿌리는 의미도 있었다. 이런 능력(근력)이 있다는 걸 보여드려야 관객들이 나중에 이해할 것 같아서. 그리고 저도 조카가 친구들이랑 있을 때 저한테 아는 척 안 한 경험이 있었다. (웃음) 부끄러운지… 저도 조카한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동네 바보'이거나 '저 사람 뭐지?' 하는 느낌을 주는 루저가 성공할 때 사람들이 환호하지 않나. 그 장르적 특성과 영화적 기법을 충실하게 따랐다.

    '엑시트'는 청년 백수 용남과 직장인 의주가 정체 모를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용기와 기지를 그린 재난 탈출 액션이다. (사진=외유내강 제공)

     

    ▶ 용남네 가족에서 가장 세 보였던 큰누나 정현(김지영 분)이 재난 상황에서 다치는 설정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가.

    (건물에) 갇혀 있다는 것만으로는 용남이의 동기가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누나도 애정이 있으니까 용남이랑 티격태격하지 않았을까. 가족 중에 누가 굉장한 위험에 처해 있어야 (용남이) 위험한 점프도 할 수 있다고 봤다.

    ▶ 용남 역에 조정석을 떠올린 이유는.

    정석 씨는 뮤지컬계에서 워낙 유명했지만 '납뜩이'(영화 '건축학개론')란 캐릭터를 보고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정극 연기도 굉장히 잘하시고. 무대 경험이 기본이 되는 데다가 (연기) 스펙트럼이 넓다 보니까, 다양한 연기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용남이라는 캐릭터가 무조건 웃기는 캐릭터는 아니다. 유머 자체도 페이소스가 있는 유머라서 정극 연기도 필요하고 감정 연기도 필요한데, 그 부분을 잘 표현해주실 것 같았다.

    정석 씨는 아이디어가 워낙 많으셔서 저한테 제안을 많이 해 주셨다. 신인 감독으로서 헤매는 부분도 있는데, 그 모자란 부분을 많이 채워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빈말이 아니고, 현장 나갔을 때 정석 씨가 있어서 영화가 흘러간다는 느낌, 되게 든든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 그래도 조정석 일정에 맞춰 오랜 시간을 기다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정석 씨 스케줄 문제로 1년은 더 기다린 것 같다. 제안은 2017년 초반에 했다. 근데 준비 기간도 필요했으니 상황적으론 잘됐던 것 같다. 보통 다른 영화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거기(기다림)에 대해선 '어떡하지' 이렇다기보다, 그동안 준비하자는 생각이었다. (정석 씨) 되고 나서 윤아 씨한테 제안했다. 윤아 씨 캐스팅은 아마 2018년이었을 거다.

    ▶ 예능 '효리네 민박'을 보고 윤아 캐스팅을 하게 됐다고.

    과거 천둥벌거숭이 때 TV에서 소녀시대 나오는 걸 봤었다. (웃음) 먼 거리에 있는 아이돌의 느낌이 강했는데 예능에서 윤아 씨의 되게 털털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의주 역할을 주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사람이) 되게 기대하지 않았던 조합이지 않나. 우리 영화 자체가 신인 감독에 일반적이지 않은 영화 지향하고, 신선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윤아) 회사랑 얘기 많이 했는데 회사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회사에서 먼저 윤아 씨 제안도 했다. 덕분에 충분히 밀고 나갈 수 있었고, 재미있는 시너지가 나왔던 것 같다. 하고 나니 두 분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 일이었을 거 같다. 케미가 워낙 좋아서.

    (캐스팅 땐) 체력에 대해 조사도 했다. 워낙 힘든 촬영이 많을 거라서… 주변에서 (두 분) 체력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대역을 많이 배제하고 싶었다. 달리는 모습을 편집으로 속일 수도 있겠지만 직접 보여드리는 게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다고 봤다. (제안에) 응해주셔서 수월하게, 열심히 잘 촬영한 것 같다.

    ▶ 배우마다 현장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고 자랑했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궁금하다.

    사실 현장은 힘들다. (웃음) 힘든 와중에도 감정 상하는 일이 있다든지 서로 민폐 끼치는 게 없어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다. 가족들이라 단체였는데, 연기자분들이라 거기(그 상황)에 빠지다 보니까 서로 진짜 가족처럼 지내기도 했다. 제가 성격상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구석에서 쭈그리고 불쌍하게 있으니까 '짠한 애구나' 하고 도와주시려고 했던 것 같다. 박인환 선생님 아들이랑 비슷한 나이기도 하고, 처음 시작하는 신인 감독 친구이니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하신 게 아닐까. 고두심-박인환 선생님이 아들처럼 챙겨주셔서 고마웠다. 다른 배우들도 신인 감독인데도 불구하고 잘 따라주셨다. 분위기는 되게 좋았다.

    용남과 의주 역은 각각 배우 조정석과 임윤아가 연기했다. 두 사람은 고강도의 액션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사진=외유내강 제공)

     

    ▶ 이번이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다.

    유년기부터 뭔가 내러티브가 있는 창작물에 대한 관심은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방송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고 그게 지속되면서 영상 관련 학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단편영화라는 장르에 심취하게 됐고, 작은 칭찬에 크게 반응하다 보니까 '내가 좀 하나?' 했다. (웃음) 그런 귀여운 생각으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험난한 길이 될 줄 모르고 도전했기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달렸던 거 같다. 대단히 오래 걸린 기간이었는데 계속 파다 보니까 물이 나오더라. 그래서 지금 기자님하고 인터뷰를 하는 그런 순간까지 온 거고. (웃음)

    ▶ 데뷔가 늦은 편인데 조급함은 없었는지.

    사실 조급함은 없었다. 워낙 성격이 그런가 보다 하는 타입이다. 나무늘보 같은 부분도 있고. 물론 절망하고 '왜 이럴까' 하는 순간도 있었는데 거기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글 쓰다 보면 누군가 알아주겠지 했다. 용남이가 맨날 철봉 하듯이 맨날 글 썼다. 겸손 떨고 싶어도, 솔직히 노력을 많이 했다. 어느 꿈을 갖고 작업을 해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뭐든 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감독이라는 꿈에 다가갈 수 있었다.

    ▶ 이번에 데뷔하고 나서 느낀 단편영화와 장편영화의 작업 방식 차이가 있는지.

    길이가 다르다 보니까 문법과 리듬감 자체가 좀 다르다. 단편은 짧고 굵게 한 방을 쳐야 하는데 장편은 끌고 가는 힘이 다르더라. 처음엔 타격법이 좀 잘못됐던 것 같다. 단편영화에서 하던 타격법을 긴 상업영화로 끌고 왔던 지점이 있었다. 또 단편 작업을 하면 바꾸겠지만. 제가 경험치가 없어서 (제 스타일이 장편 상업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오히려 재미있는 게 있었다. 아무래도 공동 작업이다 보니까 기획·개발하면서 상쇄해 나갈 수 있었다.

    ▶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어떤 걸 만들고 싶다는 한계를 짓지 않고, 재밌다고 생각하는 아이템이 있으면 개발시킬 예정이다. 이번에 영화 찍었다고 했을 때 너랑 닮은 영화일 것 같아서 기대된다고 많은 지인이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감독이 만들었을 때 (그 감독을) 닮은 영화가 나온다면 좋은 영화이지 않을까. 매번 신선하고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걸 한다기보다는, 익숙한 문법 속에서도 제 색깔이 들어간 영화를 하고 싶다. 이상근이라는 이름 들었을 때 꾸준하게 좋은 작품 만들어서 관객 여러분 찾아뵙는 사람으로 느껴졌으면 한다. 길게 오래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가늘고, 길게! (웃음)

    ▶ 잃고 싶지 않은 초심이 있다면.

    어쨌건 제가 재미있는 걸 하고 싶다는 게 제일 크다. 제가 재미없는 걸 억지로 하는 건 지양하고 싶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최대한 두고 싶지 않다는 것도 있고. 제가 좋아서 영화를 하긴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지 말라는 얘기도 있지 않나. 그러니 재미없어지게 하지 말자! 그게 쉽진 않지만, 내 재미를 위해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 마지막 질문이다. '엑시트'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한마디.

    (영화 찍으면서) 어떻게 하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고, 그러려면 체력이 필수겠다 싶더라. 운동을 열심히 하자! 국민 생활 체육 건강에 도움이 되는 영화가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엑시트'는 아마 재난 탈출 액션 영화라고 보도자료가 나가고 있을 텐데 그게 맞다. (웃음) 아마 기대하셨던 것보다 새로운 기분을 많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 여름, 청량감 느끼고 극장 문을 나설 수 있는 기분 좋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다. 일단 보면 아실 거다. (웃음) <끝>

    지난달 31일 개봉한 영화 '엑시트'는 개봉 8일 만에 400만 관객을 넘겼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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