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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꾸밈 노동 강요, 후려치기… 여성 노동자가 겪는 수난들



문화 일반

    웃음·꾸밈 노동 강요, 후려치기… 여성 노동자가 겪는 수난들

    [현장] 성평등 주간 기념 '바스락 씨네토크: 청년여성노동 편'
    부지영 감독, 손경화 PD, 최서윤 작가, 지윤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워커 멤버 참석
    '나로서기', '노 스마일 워먼', '여자는 여자의 미래다', '카트' 관람 후 대화

    다큐멘터리 '노 스마일 워먼' 티저 예고편

     

    "영화('카트')에 그런 부분이 있잖아요. 립스틱 색깔 정해주는 회사 처음 봤다고. 홈OO 르포집에서 이 에피소드를 보고 제 눈을 의심했어요. 왜 마트 안에서 이런 걸 룰처럼 정해주는 거지? 하고요. 마트도 그렇고 영화관도 그렇죠. (다큐에서도) 화장을 마트에서 배웠다고 하잖아요? 남녀고용평등법에도 어긋나는데 왜 더 강화되는지… 법이 더 실효성이 없는 것 같아요." _ 부지영 '카트' 감독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7월 1일부터 7일까지 성평등 주간을 맞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1일 오후 서울시민청 바스락 홀에서 열린 '바스락 씨네토크: 청년여성노동 편-당신의 밥벌이는 안녕하십니까?'도 행사의 일부였다.

    다큐멘터리 '나로서기', '노 스마일 워먼'(No Smile Women), '여자는 여자의 미래다'와 극영화 '카트' 편집본을 함께 보고 '여성 노동자'로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나누는 자리였다.

    영화 '카트'를 연출한 부지영 영화감독, '여성이다,큐'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한 손경화 PD, '월간 잉여'를 발행한 최서윤 작가,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워커 클럽 멤버 지윤 씨가 참여했다. 손 PD가 사회를 맡았다.

    하는 일, 나이도 제각각인 네 명의 패널은 그동안 '여성 노동자'이기에 당연하다는 듯 강요된 것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본인 의사와 무관한 웃음, 꾸밈 노동 등이 대표적이다.

    ◇ 여성 노동자에게 '웃음'과 '꾸밈 노동'은 당연해?

    부 감독은 "사실 전 '노 스마일 워먼'을 보면서 반성했다. 청년 시기를 지나고 사회 경력이 쌓이면서 어느새 사회적으로 필요한 웃음을 계속 짓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웃음이란 게 정말 필요할 때, 자기가 원할 때 웃어야 하는 건데 요구되는 상황에 맞춰서 웃게 되지 않나. 저 영화를 보면서 (저걸) 만든 친구들은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구나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부 감독은 "제가 감독(일)하기 전에 마케팅 업무를 했는데, 술자리나 회식에 가면 그런(웃는) 역할을 해야 했다. 저도 모르게 내면화됐던 것 같다"면서 "직업 전반에 걸쳐서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그게(웃음)이 필수적인 것처럼 하더라"라고 부연했다.

    최 작가는 "'(여자가) 웃어야지 분위기가 좋아지는데~'라고 하지 않나. 어디서 그런 이상한 버릇을 들여왔는지…"라며 "술자리에는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주는 여성이 있어야 한다고도 하지 않나. 그런 게 심지어 (일반적인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화가 많이 난다"고 밝혔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지난 1일 오후 서울시민청 바스락 홀에서 '바스락 씨네토크: 청년여성노동 편-당신의 밥벌이는 안녕하십니까?'를 열었다. 왼쪽부터 손경화 PD, 최서윤 작가, 지윤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워커 클럽 멤버, 부지영 감독 (사진=김수정 기자)

     

    지윤 씨는 "더 예쁘게 웃기 위해 연습하기도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한테 사랑받을 수 있다면서. 입꼬리 필러도 나오지 않았나. 그런 걸 보면 참 씁쓸한 것 같다. 여성들에게만 웃음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꾸밈 노동'에 관해서는 더 다채로운 경험이 쏟아졌다. 지윤 씨는 "PC방 알바할 때 면접 자리에서부터 화장하고 오라고 얘기하더라. 남고딩한테 인기가 많아지면 자신들의 매출에 훨씬 더 큰 이익이 온다나? 그런 것 외에도 여성들은 외모 평가가 많이 뒤따르는 것 같다. 저는 남자친구가 화장(상태)을 관리한 적도 있고, 어떤 교수님은 (제게) '넌 이런 화장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라고도 했다"고 털어놨다.

    부 감독은 반대의 경우였다. 여성 감독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상황이다 보니, 본인 의지로 짧은 머리를 하고 화장을 덜 하는 게 마치 감독으로서 더 '여성답지 않은' 모습을 일부러 강조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고.

    부 감독은 "예전엔 제 머리가 쇼트커트였다. 제가 편해서 그랬다. 근데 그게 마치 감독이 되려면 되게 남성적이어야 하고 화장을 거의 안 하고 머리도 거의 삭발 수준이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머리를 기르게 됐다. 여자들에게 고정된 이미지가 영화 현장에서는 다르게 적용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 언제라도 잘릴 수 있다는 불안함 속 후려쳐지는 여성 노동

    네 명의 패널은 여성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최 작가는 "젊은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무례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상품처럼 여겨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으면 더 나아질까 했는데 여성은 나이 들어도 별로 존중받지 않더라"라며 "그 사람의 전문성이라든가 여러 가치를 폄하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었다"고 말했다.

    부 감독은 "영화 학교 마치고 나서 바로 결혼, 출산 겪으면서 5~6년 만에 현장에 돌아간 적이 있다. 데뷔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감이 지속됐다. 이런 현장은 이런 현장대로 여자를 감독으로 쓰는 것에 대해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있다. 그래서 일없으면 불안하고 언제 잘려도 잘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19년째 돌봄 노동을 하고 있지만 이건 전혀 모성과 상관없다고 본다. (돌봄 노동이 본능이라면) 즐겁거나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밖에서도 일하고 들어왔는데 안에서도 정신적인 에너지를 써 가며 누군가를 서포트해야 한다. 왜 그것도 나만?"이라고 반문했다.

    지난 2014년 개봉한 영화 '카트'. 대형 마트가 벌인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명필름 제공)

     

    부 감독은 여성 노동자가 파업의 주축이 된 영화 '카트' 내용을 언급하며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투쟁에는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남성 노동자 투쟁할 때는 (가족이) 현장까지 와서 '우리 아빠 힘내세요!' 하는데, 여성 노동자 투쟁 때는 오히려 집에 끌려간다. 경찰이 아니라 남편에게 끌려가는 거다.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할 땐 이런 식으로 훨씬 더 배척되고 배려받지 못하는구나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윤 씨는 "'카트' 대사 중에 '어차피 마트 일인데 힘들지 않아요'라고 (여성 노동자 스스로) 말하는 부분이 안타까웠다. 사회적으로 여성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여성도 자기 일을 폄하하는 게 내면화된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라고 거들었다.

    여성 노동자로서 '후려치기' 발언을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 작가는 "전 그때그때 많이 싸우고 다녔다. 서로 욕하고 다신 안 보는 사이가 됐다"면서 "더 어렸을 때는 (이게) 후려치기인가, 아닌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경험이 쌓이며 알게 되더라. (관계가) 수평적일 땐 싸우고 안 보고, 일터에선 그 일터를 안 나가는 걸 선택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지윤 씨는 "일터는 아니고 교수님이 후려치기를 자주 하셨다. 주변에선 그냥 웃으면서 넘기라고 하더라. 웃으면서 좋게 얘기가 가능하면 그냥 싸움의 여지를 만들지 않고 무시하는 게 답인 것 같다"고 전했다.

    손 PD는 "저는 20대 중반부터 영상 작업했는데 (그런 일이) 별로 많이 없었던 것 같다. 페미니즘 집단의 또래 친구들과 시끄럽게 돌아다녔더니 아무도 안 건드리더라"라고 말해 웃음을 유발했다.

    거세지는 백래시(backlash, 사회 변화 등으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영향력·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관한 언급도 나왔다.

    부 감독은 "우리가 외롭지 않으려면 친구가 있어야 하지 않나. 학교 안팎, 일터, 동아리 등에서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연대하면 어떨까"라며 "이렇게 즐겁게 연대하고 투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파급력이 있을 거라고 본다"고 제안했다.

    왼쪽부터 손경화 PD, 최서윤 작가, 지윤 한국여성노동자회 페미워커 클럽 멤버, 부지영 감독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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