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故 전미선, 할수록 는다고 믿으며 늘 연기 '배웠던' 배우



연예가 화제

    故 전미선, 할수록 는다고 믿으며 늘 연기 '배웠던' 배우

    생전 노컷뉴스와 한 인터뷰로 돌아본 故 전미선
    원톱 주연 맡은 영화 '연애' 때는 "누가 내 영화를 봐 줄까?" 고민
    연기 '이외의 것'을 하는 데 서툴러 잠시 쉬기도
    2017년 '내게 남은 사랑을' 개봉 때 액션 연기 도전 바람 밝혀

    MBC 월화드라마 '위대한 유혹자'(2018)에서 설영원 역을 맡은 故 전미선 (사진='위대한 유혹자' 캡처)

     

    지난달 29일 하늘의 별이 된 배우 故 전미선은 어느 작품에서든 동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캐릭터, 상황, 배경에도 잘 어우러졌다. 중요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서, 오랫동안 제 몫을 톡톡히 해 온 배우의 가치를 체감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고인은 드라마, 영화, 무대를 오가며 60여 편에 가까운 작품에 출연했다. 극 초반부터 끝까지 나오는 배역일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때도 많았다. 하지만 시청자들과 관객에게 그의 연기는 쉽게 휘발되지 않았다. 목소리에서, 표정에서, 손짓과 몸짓에서 나오는 단단함이 맡은 배역에 현실감을 부여한 덕이다.

    원톱, 투톱 등 주연만 거듭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 온 배우는 아니었으나, 고인이 맡았기에 더 오랫동안 캐릭터가 분명히 존재했다. 물론 꾸준한 노력이 뒤따랐다. 고인은 '연기는 계속해야 는다'는 믿음을 갖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사람이었다.

    CBS노컷뉴스는 2005년부터 2017년까지 본지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전미선의 배우로서 삶을 돌아보았다.

    고인은 안양예고 재학 시절 우연히 오디션에 참여하게 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선배 배우인 천호진에게 연기 지도를 받았는데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귀까지 빨개진 채로 대본을 읽었다고 털어놨다.

    KBS 드라마 '토지'가 공식 데뷔작으로 알려졌지만, 한 해 앞선 1988년 MBC 드라마 '갯마을'에 캐스팅된 게 첫 발걸음이었다. 1990년에는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스크린에도 데뷔했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연기력으로는 두말할 것 없이 인정받았지만, 시련이 있었다. 자신을 위한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고인이 오롯이 극을 이끄는 영화 '연애'에 들어갈 적의 이야기다.

    故 전미선이 원톱 주연을 맡은 영화 '연애'(2005)

     

    고인은 2005년 9월 인터뷰에서 자신을 주저하게 했던 고민을 털어놨다. "누가 전미선의 영화를 봐줄까, 내가 과연 힘이 있나? 이름을 거니까 책임감이 커졌다. 원톱은 자신이 없었고 모험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었다. 설령 맡는다고 해도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중년 여성이 '연애'를 통해 성장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 당시 충무로에서도 도전적인 영화였는지, 개봉일자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촬영을 마치고 1년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자, 전미선은 '왜 개봉 안 하지? 왜 무시 당할까?' 하고 1년 동안 고민했다. 심지어 '밥값도 못 하는데 밥은 왜 먹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다행히 개봉일이 정해졌고, '연애'는 2005년 12월 9일부터 관객들을 만났다. 고인은 "지금까지는 관객이 원하는 역할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배우가 연기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란 걸 이제 알았다"고 말했다.

    '연애'는 고인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원톱으로 나선 첫 주연작이면서, 남편 박상훈 씨와의 인연을 맺어주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연애'를 촬영하며 연인 관계로 발전해 2006년 12월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KBS2 '황진이'에서 황진이의 어머니 진현금 역을 맡았던 고인은 신혼여행도 미루고 드라마에 전념했다. 결혼식 후에도 본인 촬영 분량이 없는 이틀만 쉬고 촬영장에 복귀한 것이다.

    고인은 이후에도 '에덴의 동쪽' 정자, '그저 바라 보다가' 차연경, '제빵왕 김탁구' 김미순, '로열패밀리' 임윤서, '오작교 형제들' 김미숙 등 장르와 배역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하는 작품이 족족 잘됐다. 특히 '제빵왕 김탁구'는 49.3%(닐슨코리아)라는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 2011년 시작한 KBS2 '오작교 형제들'은 36.3%, MBC '해를 품은 달'은 42.2%로 대성공을 거뒀다.

    윗줄 왼쪽부터 '황진이' 진현금, '제빵왕 김탁구' 김미순, '오작교 형제들' 김미숙, 아랫줄 왼쪽부터 '로열패밀리' 임윤서, '해를 품은 달' 도무녀 장씨, '구르미 그린 달빛' 숙의 박씨 역을 맡은 故 전미선 (사진=각 프로그램 캡처)

     

    하지만 정작 고인은 2012년 3월 '해를 품은 달' 종영 인터뷰에서 "사실 내가 좋다고 생각했던 작품은 대부분 캐스팅 과정이 어려웠다. 왜 이렇게 좋은 작품인데 (사람들이) 보지 못할까, 의아해하곤 했다"고 밝혔다. 다만, 좋은 작품 제안을 받았을 땐 그 행운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해를 품은 달'은 배우 본인이 생각하는 고정된 이미지, '지고지순함'을 탈피한 배역이 주어졌다는 점에서도 뜻깊었다. 고인이 연기한 도무녀 장씨(장녹영)는 조선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무당으로, 성수청 소속 국무였다. 세자빈 시해 사건에 대한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쥔 신비로운 인물이기도 했다.

    고인은 "다작을 하면서 쉬지 않고 달리니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면서 "만약 내가 스타를 꿈꿨다면 이 자리까지 못 왔을 것 같다"고 지난날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제대로 연기를 하게 된" 시점으로 '번지점프를 하다'(2001) 이후를 꼽았다.

    그는 "연기자 사회도 사회다 보니 현장에서 사교성도 있고 밝게 대화를 나눠야 했는데 나는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 인간적으로 부딪치는 게 힘들어졌고 연기도 점점 하기 싫어지더라"라며 "만약 연기만 하라 그랬다면 그만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연기는 계속해야 늘기 때문에 일부러 20분만 잘 때도 있다. 지금도 매일 배운다. 오늘 실수한 걸 내일 하지 말자, 내가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를 다른 후배들에게 주지 않게끔 노력한다. 간혹 역할이 작아서 힘들어하는 동생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네가 자신 있게 이 역할을 소화해내지 못하면 보는 사람들이 자신 없어 하는 너를 보게 된다'라고 충고한다."

    고인은 할수록 연기력이 는다고 믿음과 동시에,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한국 나이로 43살인데, 50대에 성숙한 연기를 하기 위해 계단을 만들어준 것뿐이다. 이제 참고 올라가야 한다. 지금까지 달려온 건 새 발의 피다. 내가 가진 연기의 그릇이 작기 때문에 커져가기 위해 단련을 시킨 것뿐이다. 난 지금도 연기를 배워나가고 있다. 열심히 의지대로 달려가자, 그게 내 신조였는데 이제 여러분들이 알아봐 주시는 것 같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봄이 가도' 신애, '나랏말싸미' 소헌왕후, '내게 남은 사랑을' 이화연, '숨바꼭질' 민지, '잘살아보세' 순이 역을 맡은 故 전미선 (사진=각 제작사 제공)

     

    2017년 10월 영화 '내게 남은 사랑을'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도 배우로서 변치 않는 그의 태도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인은 "연기는 계속해야 실력이 늘어나는 것 같다. 잠깐이라도 쉬면 항상 모자란다. 내가 연기를 해서 계속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재밌고 매력있는 작품이면 한 장면이라도 참여한다. 내 몸이 따라주는 한 액션 영화에 도전해 보고 싶다. 고정관념을 깨면 가능하다고 본다. 국내에서 배우를 보는 시각이 변한다면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고 부연했다.

    '내게 남은 사랑을'은 시한부를 소재로 한 영화였다. 이날 인터뷰에는 '마지막으로 짧은 생의 시간이 남았다면 어떤 계획을 세울 것인지 듣고 싶다'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한 고인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없더라도 가족들이 행복하게 있었으면 하니까 각자에게 편지를 남길 것 같다. 내가 지켜봤을 때 각자 다른 점을 알려주는 편지다. 그게 최선이지 싶다. 그리고 아마 그런 사실을 알리는 과정도 부부이기 때문에 영화와 똑같을 것 같다. 성인으로 열심히 살아왔을 때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은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누군가는 결국 남편이라고 생각하니까."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다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배우 故 전미선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