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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침묵하지 않겠다"…9분짜리 강렬한 '미투 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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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는 침묵하지 않겠다"…9분짜리 강렬한 '미투 호러'

    [노컷 리뷰] 영화 '릴리(Lili)'/잎케 반 베르켈라어(2019)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8' 프로그램

    영화 '릴리'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 이 기사에는 영화 '릴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성은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에도 침묵해야 했고, 침묵하도록 강요받았다. 여성은 피해자가 된 상황에서도 '피해자다움'을 강요받았다. 작은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저항의 역사는 이어졌고, '미투 운동'(나도 고발한다 #MeToo)을 계기로 여성의 목소리와 성폭력의 심각성이 조명받게 됐다.

    영화 '릴리'는 네덜란드 출신 여성 감독인 잎케 반 베르켈라어의 '미투 호러'다. 9분의 짧은 시간에 남성이라는 권력 앞에 선 여성의 현실과 이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매우 강렬하게 선보인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배우 오디션에 지원한 릴리는 최선을 다해 연기에 임하지만, 릴리를 지켜보던 남자는 하나둘 요구를 더해가다 결국 불필요한 요구를 하기에 이른다. 인물과 연기에 대한 몰입을 높여야 한다며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남자가 생각하는 '팜므파탈'은 성적 어필이다.

    영화는 특별한 장치나 공간의 전환이 없다. 한 공간에서 릴리의 모습이 전부다. 엔딩에 가서야 남자의 얼굴 일부와 손이 나오지만, 카메라는 릴리의 상반신을 비춘다. 남자는 대부분 목소리만으로 영화에 등장한다.

    이러한 연출이 영화 '릴리'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다.

    여성인 릴리가 우월적 지위에 있는 남성에게 '일'을 핑계로 무리한 요구를 받고, 그 요구를 물리치는 과정이 남성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영화 내내 릴리는 관객을 마주하고, 관객은 릴리를 마주한다. 관객의 시선은 '남자'의 시선이다. 관객은 남자의 눈높이에서 릴리를 바라보고, 남자의 요구에 따라 연기를 하는 릴리를 보게 된다. 무리하고 불필요한 요구에 릴리가 불편해하고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남자의 눈높이에서 계속 보게 된다. 남자의 눈으로 본 릴리의 당혹스러움, 피해 여성의 현실은 제3자적인 시선으로 마주할 때보다 더 불편하게 전해진다.

    영화 '릴리'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미투 호러'라는 수식어만큼 영화 엔딩에서는 반전이 있다. 남성은 무리한 요구를 거듭하다가 결국 릴리에게 손을 대는데, 인간 외 존재인 릴리가 남성을 물어뜯는 결말을 통해 관객에게 강렬한 충격을 전달한다. 남성의 시선에서 릴리를 바라본 관객에게 이 같은 엔딩은 제대로 된 충격 요법이 된다.

    이 충격적인 엔딩에는 길고 긴 시간 침묵과 함께 피해자로 살 것을 강요당한 여성들의 현실에서 벗어나 보자는 영화의 주제가 담겨 있다. '물어뜯는다'라는 호러적인 수사는 더 이상 참지 않고 강렬하게 저항하겠다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함축된 장면이다.

    잎케 반 베르켈라어 감독은 GV(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에서 "'릴리'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여성이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영화 내내 마치 남자가 여성을 기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성이 그 남자를 계속 속이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해서 표현하고 싶었다"라며 "강렬하고 불꽃 튀기는 엔딩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고, 필요하면 '너를 물어뜯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라고 설명했다.

    감독의 말처럼 '릴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백하고 강렬하다. 여성을 기만해 온 남성에 대해 여성은 더이상 참지 않을 것이며, 남성 중심적 문화와 사회 구조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은 강렬하리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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