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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만든 여성지도자…이희호와 엘리너 루즈벨트



국회/정당

    대통령을 만든 여성지도자…이희호와 엘리너 루즈벨트

    이희호·엘리너, 여성운동 이끈 1세대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일하는 영부인상' 만들어
    남편 서거 뒤에도 사회활동에 매진…이희호, 김정일 조문하기도

    "그와 악수하던 손의 따뜻한 감촉이 생생하다. 나는 UN 세계인권선언을 주도했던 그를 존경했으므로 뜨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는 여성과 흑인 등 소수자 그룹의 인권을 위해 헌신한 이였다."

    이희호 여사는 자신의 자서전 '동행'에서 1957년 미국 유학 시절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자 여성인권 운동가였던 엘리너 루즈벨트를 만났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두 사람은 닮은꼴 영부인이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 참모진을 중심으로 이희호 여사를 위한 '엘리너 프로젝트'가 추진됐을 정도로 두 사람의 삶은 닮았고, 이 여사는 가장 존경하는 영부인으로 엘리너를 꼽기도 했다.

    ◇ 엘리트 여성 페미니스트 그리고 정치적 동반자

    (사진=연합뉴스)

     

    이희호 여사와 엘리너 모두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대에 진학해 학업을 마쳤고, 대학 졸업 후엔 인권·여성운동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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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여사는 1952년 여성계 지도자들과 함께 '여성문제연구원'을 조직했고 1959년 YWCA와 함께 '혼인신고를 합시다' 캠페인을 벌였다. 이 여사가 참여했던 남녀차별 철폐운동은 훗날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엘리너는 여성직업연합동맹(Women's Trade Union League)을 창설해 여성도 최저임금제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뿐만 아니라 뉴욕 민주당 여성부(Women's Division of the New York State Democratic Party)에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여성 인권 운동에 헌신했다.

    여성운동을 개척한 1세대 페미니스트였던 그들은 남편이 정치적 고난을 겪을 때마다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운 동지이기도 했다.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옥바라지하며 곁을 지켰듯이 엘리너도 남편인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곁을 지켰다.

    엘리너는 1920년 남편이 당내 경선에서 패배해 대통령 후보에 지명되지 못해 낙담에 빠졌을 땐 부통령 후보직 수락을 권유했고, 루즈벨트에게 소아마비가 발병했을 땐 요양을 권유해 정치적 재기를 도왔다.

    ◇ 선거유세 다니며 "여성이 마이크 들어야 할 때"…당선 뒤엔 '일하는 영부인'

    (사진=연합TV 영상 캡처)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으로는 일종의 내조에만 전념한 숨은 그림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일하는 영부인상'을 정립했다는 점이다.

    엘리너는 당시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등 대선운동에 동참한 첫 영부인이었다. 또 여성의 표를 규합하면서 선거캠프와 불화를 겪고 있던 일부 선거인단도 다독여 이탈을 막는 등 표 관리에도 기여했다.

    백악관에 입성한 뒤엔 봉사에만 국한돼 있던 영부인의 활동을 확장시켜 처음으로 사회개혁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행정비서관을 뒀다. 아울러 브리핑에 출입하지 못하던 여성 출입기자들을 위한 브리핑도 정례화하는 등 여성인권 향상에 안팎으로 기여했다.

    이희호 여사도 비서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엘리너처럼 선거 유세를 다니며 연설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였던 이석현 의원은 11일 이 여사의 장례식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운동 하는데 여사님이 마이크 들고 연설을 다니셨다"며 "비서진들이 그때 정서로만 볼 때 여사님이 마이크 들고 연설을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정색하고 '지금은 여성이 마이크를 들어야 하는 시대'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 난다"고 전했다.

    이희호 여사와 엘리너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 가져간 영부인이었다. 남편 사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비슷하다.

    이 여사는 처음으로 해외 단독 순방을 다녀왔고 정례화했다. 각료의 배우자를 임명장 수여식에 초청해 함께 참석하게 하는 관례도 정착시켰다.

    이 여사는 또 김대중 정부 시절 여성을 위한 법과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 냈다. 1998년 가정폭력방지법과 1999년 남녀차별금지법이 제정됐고 2001년엔 여성부(현 여성가족부)가 신설됐다.

    특히 남녀차별금지법은 엘리너는 물론 이후 활동적인 미국 영부인들도 제정에 실패했던 평등법(Equal Rights Act)의 한국판으로, 그 의미가 더 남다르다.

    ◇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 지킨 마지막 동지

    두 사람은 대통령 서거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엘리너는 여성 최초로 UN 총회의 사절단으로 임명됐고 UN 인권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뒤에도 북측과 교류를 이어오며 남북 평화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2011년엔 조문을 위해 방북해 김 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북측의 새 지도자를 처음으로 만난 남측 인사였다.

    이 여사는 2015년에도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으로 방북길에 올라 평양산원과 옥류아동병원 등을 방문하고 묘향산에 있는 국제친선박람관과 보현사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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