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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전태일 외침, 지금은 실현됐나



영화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전태일 외침, 지금은 실현됐나

    [현장] 2019 서울노동인권영화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GV
    "인류가 존재하는 한, 모순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늘 있어"
    "노동은 멀리 있지 않아… 노동은 본인 일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노동인권, 사람은 상품-소모품 아니라 인간이라고 인정하는 것"

    사단법인 노동희망이 주최하고 서울특별시-인디스페이스가 후원하는 '2019 서울노동인권영화제-인터내셔널(INTERNATIONAL)이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 동안 열렸다. 올해는 '국제'를 주제로 해, 노동인권의 현재를 세계의 노동영화 눈을 통해 진단하고 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CBS노컷뉴스는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인터내셔널'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같이 생각해 보는 '관객과의 대화'를 옮긴다. [편집자 주]

    1995년 11월 18일 개봉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배우 홍경인이 전태일 열사 역을 맡았다.

     

    비 오는 날 거리에서 우산을 팔던 청년 전태일은 우연히 전봇대에 붙은 봉제공장 구인공고를 보고 그날로 재단사 보조가 된다. 창문도 찾기 힘들고 환풍기도 없는 공장 안은 먼지로 가득하고, 고된 노동이 장시간 이어지기에 꾸벅꾸벅 조는 이들도 적지 않다. 10대 초반의 어린아이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하지만 사장은 어떻게든 더 빨리 일을 해치우려고만 한다. 남들을 들들 볶고 쪼아대며. 화장실에 가려는 아이에게 "일을 좀 변소 다니듯이 열심히 해라"라고 무안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잠잘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들도록 주삿바늘을 꽂는다.

    하루는 폐병을 앓던 소녀가 기침하며 피를 토하는 일이 벌어진다. 곁에 있던 전태일은 놀라지만 다른 재단사는 '경자가 폐병인 거 몰랐어?'라며 분위기를 수습하려 애쓴다. 어린아이들마저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과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본 전태일은 죄책감에 빠진다.

    전태일의 아버지는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이 있다고 귀띔하고,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책을 사서 공부한다. 전태일과 친구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청계 피복 노동자들 사연이 신문에도 났다. 나아가 노동 실태를 직접 조사해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수집하고 시정을 요구하지만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전태일을 잡상인 취급한다. 사장들은 가장 간단한 요구인 환풍기 설치조차도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다며 회피하기만 한다.

    전태일은 노동 착취당하는 이들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바보'라 빗댔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행동가였다. 부당한 노동 현실을 인지하고 나서는 가만 있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을 보면서 공부하고, 기자들을 접촉해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했으며, 노동청의 문도 두드렸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결국 근로기준법 책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은 있는 힘껏 외친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인디스페이스에서 '2019 서울노동인권영화제'가 열렸다. 영화제 사흘째였던 27일 오후 3시 20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감독 박광수, 1995)이 상영됐다. 상영 후에는 안재성 소설가(전태일문학상 수상)와 이정기 서울봉제인 지회장이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사회는 '서울노동인권영화제' 강순영 프로그래머가 맡았다.

    각자 영화를 본 소감을 나누는 것으로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안재성 소설가는 "영화를 너무 무겁게 만든 것 같다. 저도 노동운동으로 청춘을 보냈고 죽음도 여러 번 봤지만 (사람들의) 대부분 시간은 자아를 실현하는 시간이다. 죽음 앞에서나 싸울 때는 굉장히 극단적인 상황이 되지만, 일반적으로는 노동법을 읽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정의를 실천하는 것, 옳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사람한테 행복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전태일 열사는 그런 걸(옳음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것) 아주 잘한 분이다. 친구들하고 많이 놀러 다니고, 사진도 잘 찍고, 많은 이야기를 너무 좋아했다. 근데 영화에서는 결단의 순간만 너무 어둡게 계속 유지시키는 것 같다. 노동운동이라고 하면 어둡고 힘든 거로 보고서 만들지 않았나 조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번에 또 만든다면 좀 더 리얼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인 안재성 소설가, 이정기 서울봉제인 지회장, 강순영 서울노동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김수정 기자)

     

    1987년부터 청계피복노동조합 노조원으로 활동했던 이정기 지회장은 "당시는 제가 너무 나이가 어렸다. 16살 정도였다. 노동운동이라는 개념이 있었다기보다는 형들이 하니까 따라 하게 됐다"면서 "내년이 열사 50주기가 되는데 (노동 현실은 그때가) 지금하고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고 전했다.

    이 지회장이 들려준 봉제 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이 지회장은 "노동집약적 산업은 싼 데를 찾아서 동남아에 간다. 현재 물량의 70~80%는 동남아로 간다. 전에는 중국에서 많이 했는데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많이 간다"고 말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이 다수이고 10인 이상 사업장도 직원 수가 많다고 할 정도로 봉제 쪽은 영세 사업장이 많다는 게 이 지회장의 설명이다. 평화시장을 비롯해 동대문 주변 상가에서 사 입는 옷들이 바로 이런 영세 공장에서 만들어진다고.

    물량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장시간 노동은 필연적이다. 이 지회장은 "제가 하루에 15시간에서 16시간 일한다"면서 "일 년에 꾸준히 일하게 되면 계획을 세우고 일할 텐데, 저는 아침 7시 반에 일어나서 딱 공장 들어가면 한 10시 정도까진 일했다. 요즘이 일철이기도 하지만 주 90시간 정도 일한다. 요즘 누가 그렇게 일하냐고 하지만, 서울 시내 다니다가 작은 건물에 밤 늦게까지 불 켜져 있으면 공장인 경우가 많다. 상황이 (1970년대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게 제가 일하며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감명깊게 본 장면을 물으니 이 지회장은 "다 좋긴 했는데 영화에서도 나오다시피 '인간 존중', '인간 사랑'이 보였다"면서 "전태일 정신은 노동 존중이고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안 소설가는 "첫 장면이기도 하고 마지막 장면이기도 한" 분신 장면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분신'에는 절대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역사만 보더라도 목숨까지 걸면서 싸울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안 소설가는 "너무 헌신적인 친구들이 꼭 그런 일을 한다. 너무 선한 사람들만 죽더라"라며 "여러분, 죽음으로 싸울 일은 없다"고 재차 말했다.

    청계천 피복 노동자들의 가혹한 노동 현실을 목격한 전태일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개선을 요구하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그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강순영 프로그래머는 "저는 이소선 어머니가 계속 눈에 밟힌다.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전태일 평전'을 읽다가 다들 너무 울어서 강독을 중단한 적이 있다. (전태일 열사의) 삶이 비참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서"라고 부연했다.

    강 프로그래머는 "노동인권이 다른 게 아니지 않나. 소모품이 아니고 상품이 아니고 하나의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전 열사가) 너무나 극적으로 순수하기 때문에 결말을 보면서 한 점 불꽃이 된 것"이라며 책 '전태일 평전'을 읽는 것도 추천했다.

    이 지회장은 무엇보다 '노동'이 특정한 소수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지회장은 "노동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거다"라며 "노동은 멀리 있지 않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노동은 자기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노동은 자기 일, 본인 일이라는 것,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라고 조언했다.

    안 소설가는 "나온 문제들을 끝없이 계속 해결해야 한다"면서 "전방위 투사처럼 뛰어다니면서 조금씩 힘을 보태는 거다. 그래서 고쳐나가다 보면 좋은 세상이 오는 거지, 완벽히 좋은 세상은 없는 것 같다. 있는 사회에서 조금씩 조금씩 고쳐나가자"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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