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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에게 노란 리본은 "기억하는 작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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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경구에게 노란 리본은 "기억하는 작은 방식"

    [노컷 인터뷰] '생일' 정일 역 설경구 ②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설경구를 만났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설경구를 처음 인터뷰한 건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불한당'(감독 변성현) 때였다. 편안한 차림이었던 그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거기에 달려있던 노란 리본이 눈에 띄었다. 그날 가장 선명한 기억 중 하나였다.

    설경구가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문득 그 노란 리본이 떠올랐다. 물론 설경구는 '생일' 출연 여부와 상관없이 노란 리본을 단 것이었다. 큰 건 아니지만, 세월호를 기억하는 자기만의 방식이라며.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생일' 정일 역을 맡은 배우 설경구를 만났다. 인터뷰 말미 노란 리본 얘기를 꺼내자 그는 최근 임시완 전역 날 공개한 머리 깎는 사진 이야기를 했다.

    그냥 입대 전 머리 깎는 모습의 사진을 올렸을 뿐인데 그때도 노란 리본이 그려진 핸드폰 케이스가 같이 찍혔다는 내용이었다. 모르고 있다가 누군가 귀띔해줘서 뒤늦게 알았다며, 기자들에게도 본인의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노란 리본과 연결된 설경구의 기억이 이렇게 하나 더 늘었다.

    ◇ 전도연이 의외로 너무 힘들었다는 '이혼 서류' 장면, 설경구는?

    정일의 아내 순남 역의 전도연은 '생일' 인터뷰 때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려웠던 장면으로 정일에게 이혼 서류를 주는 걸 꼽았다. "오래 생각한 거야"라는 짧은 대사를 하기까지 꽤 힘들었다고.

    이 이야기를 전하자 설경구는 "저는 황당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라며 껄껄 웃었다. 그러곤 이내 "순남도 머리로는 (정일의 상황을) 알면서 용서가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아픔이) 지금도 감당 안 되기 때문에 알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설경구는 "정일이 거기서 서류를 받아버리면 (순남은) 더 쓰러지지 않을까. 사람은 그런 때도 있는 것 같다. 마음에 없는 소리까진 아니어도, (사정을) 알면서도 용서가 안 되는 그런 경우가"라고 말했다.

    '생일'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세상에 마음을 굳게 닫은 채 사는 순남(전도연 분)이 차츰 변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설경구가 맡은 정일은 영화의 등장인물이지만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사진=NEW 제공)

     

    이렇듯 정일에게 마음을 굳게 닫았던 순남은 세월호 참사로 죽은 아들 수호(윤찬영 분)의 생일 모임도 처음엔 거세게 반대한다. 하고 싶으면 당신이나 가라며 정일에게 차갑게 대하지만, 결국 딸 예솔(김보민 분)까지 온 가족이 생일 모임 자리에 간다.

    설경구는 이런 순남의 변화가 정일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바라봤다. 설경구는 "저한테 설득당했다기보단, 예솔이도 '엄마는 왜 오빠 생일 하기 싫어해?'라고 하고, 옆집에서도 (치유공간 이웃) 원장님도 끊임없이 하자, 하자 하면서 손잡아주지 않나. 저는 감독님이 얘기하고 싶었던 게, 우리가 손잡아줘야 한다는 거, 그게 모임에 데려간다는 의미 같다"고 설명했다.

    다 같이 모였기 때문에 나오는 '힘'의 의미도 이야기했다. 설경구는 "은빈이(권소현 분) 같은 경우는 세월호에 있었다는 것도, 수호의 친구였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도 거부하지 않나. 그 친구도 (결국 생일 모임에) 오는데, 그게 우리들, 우리 전체의 힘이 아닌가 싶다. 일어서서 어렵게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 조심스러웠지만 감독님만 '철석같이' 믿고 가다

    가볍지 않은 소재를 다룬 영화라고 해서, '배우 설경구'의 태도가 특별히 달랐던 건 아니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잃지 않고자 했던 신념이나 태도가 있는지 묻자, 그는 "매일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니었다. 저는 배우니까. 물론 이전 영화보단 조심스럽긴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에 관해서는, 이종언 감독을 굳게 믿고 갔다. 혹여 미숙하거나 과잉되게 표현된 게 있으면, 잘 걸러내 주리라고 믿고. 설경구는 이 감독을 "굉장히 딴딴했다"고 표현했다.

    고장 난 센서등, 여권 도장 받기 등 작품 안에 나오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실제로 있었던 데서 따온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건 정말 있었던 일이냐고 물어보면 즉각적으로 정확한 답이 나오니 신뢰할 수밖에 없었단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생일' (사진=NEW 제공)

     

    과거 인터뷰 때 모자에 달려 있던 노란 리본을 언급하자 설경구는 "세월호 참사 다음 해인가 사월 며칠이지,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되게 미안하더라. 마침 박철민 씨가 (노란 리본을) 꽂고 다녀서, 저도 그때부터 하고 다녔다. 가방에도 달았다"라고 답했다.

    이어, "'생일'이란 영화 때문은 아니었다. 그때 되게 미안했었다. 그건 저만의 안 잊으려고 하는 작은 거다. 저만의 작은… 기억하는 방식이랄까"라고 덧붙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어떤 책임이나, 역할에 관해 생각해 본 게 있냐는 질문에 설경구는 "그건 말 못 하겠다. 왜냐하면 그 말조차 위선 같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제가 (하려면) 말할 수 있어요. 근데 도덕책 읽을 것 같아요. 써둔 대로 읽을 것 같아요. 좋은 말, 멋있는 말 많으니 그걸 할 순 있지만 제가 그 말을 지키면서 못 살 것 같거든요. 그것조차도 위선이니까요."

    ◇ '지천명 아이돌'의 바람

    설경구는 2017년 개봉한 영화 '불한당' 이후 팬이 부쩍 늘었다. '불한당'이란 작품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의미를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즐기는 열성 팬들 '불한당원'이 그 출발이었다. 그러다 배우 설경구의 팬이 된 이들도 꽤 많다. 그는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생애 첫 팬 미팅을 열기도 했다.

    이제 설경구 이름 앞에 붙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식어 '지천명 아이돌'을 꺼내니 그는 "요즘엔 제가 뻔뻔스러워져서 인정한다"며 웃었다. 그는 "기자분들이 붙여준 거로 아는데, 나이가 50인데 강남역에 개인 광고판이 붙으니까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팬들을 '친구들'이라고 부르며 기회가 될 때마다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설경구는 "전 잘해준 거 없어요. 제가 뭘 잘해드려요. 저는 받기만 해서 죄송한데… 너무 받아서"라고 말했다. 이어,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 주시고, 베를린까지 오시고 감사하다. 항상 감사하다.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사하다. 다 좋다. 뭐가 싫겠냐"며 웃었다.

    배우 설경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불한당'도 해석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감독이 그렇게까진 생각 안 하고 찍었다는 데도… (웃음) 엄청난 분들이에요. 예고편도 진짜 잘 만들고요. 능력자들이 많아요. 깜짝깜짝 놀라요. 그림도 그리고. 재주 많은 양반들이에요. '우상' 같은 경우도 되게 난해하고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걸 n차 관람하시면서 답을 찾아내려고 하시더라고요. 열정이 대단해서 오히려 거기서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아요."

    설경구의 지금 바람은 자신의 팬들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 '생일'을 보는 것이다. 그는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시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유가족분이 '생일' 보신 후 인터뷰했을 때 (영화가) '힘이 된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손을 잡아주셔야 한다. 같이 관람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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