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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가 본 '생일'은, 주장하지 않고 위로 건네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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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경구가 본 '생일'은, 주장하지 않고 위로 건네는 영화

    [노컷 인터뷰] '생일' 정일 역 설경구 ①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설경구를 만났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은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들 수호(윤찬영 분)를 그리워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희생자 생일날 가족, 친구, 이웃 등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고인을 추억하는 '생일 모임'을 소재로 했다.

    설경구가 처음 '생일'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는 자기가 이 작품을 하게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영화를 촬영하고 있어, 일정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는 오히려 주저함이 덜했다. "그냥 해야 될 것 같았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설경구를 만났다. 설경구는 '생일'이 일방적이지 않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고,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다고 말했다.

    ◇ 아픈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 위로하는 따뜻한 영화

    설경구는 '생일'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유가족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데, 끝까지 책을 읽다 보면 많은 사람 이야기가 담겨 있다"며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그 안에서 따뜻함도 느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직접 겪은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참사로 인해 영향받은 모든 '이웃', 즉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설경구는 "단지 그분들(세월호 희생자-생존자 가족 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상처 있는 분들이 꽤 있지 않나. 이웃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이 책은 되게 범위가 넓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종언 감독은 안산 '치유공간 이웃'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생일 모임을 접했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많이 힘들 텐데, 깡이 있으면 해 봐라"라고 힘을 준 건 유족들이었다. 설경구는 "그게 쉬운 과정은 아닌데, 그걸 잘 버텨서 책으로 나왔다"고 부연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좋았어요, 일방적이지 않고. 제 생각에 (남은 사람들의) '치유'는 불가능해요. 그분들을 들여다보는 게 중요했어요. 평범한 이웃들이잖아요. (이야기를) 들어봐주고, 위로해주고 손 한 번 잡아주고. 그런 게 이 영화의 역할이 아닌가 해요. 주장하는 것도 없고요, 이 영화는. 저는 작은 위로라고 생각해요. 작은 위로란 게 그분들한테는 손 한 번 잡아주는 거고, 그것도 힘이 되지 않을까 해요. 함께해주시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되는 것 같고요. (유가족들) 인터뷰 보면 큰 거 바라시지 않거든요."

    설경구가 맡은 정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가족 곁을 지키지 못했던 가장이다. (사진=NEW 제공)

     

    '생일'은 유족들과 함께하는 상영회를 연 바 있다. 설경구는 "그때 주로 말씀하신 게 고맙다는 거였다. 그게 참, 고맙다는 말을 우리가 들어도 되나 싶었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전도연 씨가 많이 울고 힘들어했다. 인사하러 가는 것도 힘들어했고"라고 덧붙였다.

    ◇ 정일은 등장인물이면서 관객과 같은 '관찰자'

    설경구는 '생일'에서 세월호 참사 때 가족들과 떨어져 있었던 가장 정일 역을 맡았다. 영화는 정일이 비행기로 귀국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정일은 자신을 거부하는 아내 순남(전도연 분)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동생 정숙(이봉련 분)에게 순남의 성격이 이상해졌다고 할 만큼 슬픔의 중심에서 벗어난 느낌으로 그려졌다.

    설경구는 그게 감독의 주문이자 계산된 설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참사 5주기(2019. 4. 16.)가 가까워져 오지 않나. 아마 많은 사람이 잊고 살 거다.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다들 일상을 살아야 하니까"라며 "애써 잊으려고도 했고, 국민적 트라우마를 안긴 어마어마한 참사이니까 이야기 중심에 훅 들어오지 않고 정일을 통해 서서히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일이 관객이라는 거죠. 주변부터 서서히 들어가다가, 이야기 중심에서 정일과 관객이 만났으면 하는 설계가 있는 거예요. 정일은 당사자이자 관찰자입니다. 감독님의 계산이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이야기가) 훅 들어오게 되면 관객들이 어어~ 하시니까, 예솔이(김보민 분)부터, 제 동생과 처남부터 해서 들어오는 거죠. 감독님의 의도가 있는 캐릭터였죠."

    설경구는 "'그래도 한 번 (생일 모임)해 보세요'라고 하는 관객의 마음을 정일이 대신 얘기해 준 것 같다. 보시는 분들이 순남에게 '그래도 거기 가 봐'라고 하고 싶은 말을 정일을 통해 던진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정일의 오열

    극중 정일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생일 모임' 장면에서는 소리 내어 울고 만다. (사진=NEW 제공)

     

    이종언 감독도, 순남 역을 맡은 전도연도 '생일'을 찍을 때 특히 자기감정이 앞설까 봐 돌아봤다는 말을 많이 했다. 설경구 역시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해 관객을 앞서가는 것을 경계했다.

    설경구는 "저는 관찰자이기도 한데 제가 감정을 다 써 버리면 보는 사람들이 황당할 수 있다. 이건 다큐가 아니고 영화이기 때문에 저는 (표현의) 수위를 많이 신경 썼다"고 밝혔다. 과잉되지 않게 정일을 그리는 것이 그의 숙제였다.

    이어, "저는 사실 그냥 감독님 딱 믿고 갔다. 워낙 이 글을 쓰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막 써내려간 글이 아니고, 진짜 고민하고 고민해서 한 줄 한 줄 썼기 때문에 아주 단단한 게 있어서 촬영할 때 든든했다. 저는 작품에 대한 걱정은 안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런 정일도 수호의 생일 모임에서는 소리 내서 울고 만다. 그 장면을 언급하자 설경구는 "터져버렸죠"라고 곧장 답했다. 책에도 '굉장히 오열한다'고 쓰여 있긴 했으나, 설경구는 완성된 영화를 보고 자기가 저 정도로 울었을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현장에선 그렇게까지 나올 줄 몰랐어요. 그게 이제 참아서… 저도 피가 안 고였겠어요. 썩은 게 터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피가 고인 게 썩어서 삐져나온 것 같은? 왜 울고 싶지 않았겠어요. 예솔이를 보자마자, 순남을 보자마자 왜 울고 싶지 않았겠어요. 글쎄, (감독님이) 정일한테는 좀 가혹한 설정을 준 것 같아요. 2, 3년 후에 돌아왔으니. (참사 때 곁에) 있어도 죄의식이 있을 텐데 더 못 돌아온 거였잖아요. 거기에 죄의식을 또 주다 보니 슬픔을 표현해도 '인제 와서 슬퍼?'라는 염치없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발산 못 하고 꾹꾹 눌러야 했죠. 아예 (감정을) 저 밑으로 두고 애써 꽉꽉 누르다 보면 머리와 가슴이 분리되는 상태를 느껴요."

    배우 설경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이 있는지 물으니 "저는 시간이 지나버리면…"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설경구는 "피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닥치면 그냥, 견뎌야 하는 것 같다. 이미 나에게 온 것이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통스럽지만 (슬픔이) 온 걸 어떻게 하겠나. 물론 그건 남을 거다. (어떻게 한다고 한들) 참사의 유가족분들이 치유가 될까. '살아내야 한다'는 표현을 하셨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유 찾는 게 생일 모임이라고"라고 부연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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