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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려 깊은 애도, '생일'



영화

    [리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려 깊은 애도, '생일'

    [노컷 리뷰] 이종언 감독, 유족 곁 지키며 직접 보고 들은 것 영화화
    희생자 형제자매, 가족, 이웃,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살피는 섬세한 눈
    울음을 터뜨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살아내자'고 말하는 영화

    오는 3일 개봉하는 영화 '생일' (사진=NEW 제공)

     

    "저는 지금도 ('생일'이) 다 같이 붙잡고 아프자고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아픔을 딛고서 다시 잘살아 보자는 힘이 생길 수 있는 그런 영화였다고 저는 그렇게 믿어요."

    지난달 18일 열린 '생일'(감독 이종언) 언론 시사회에서 배우 전도연이 마지막 인사 때 전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영화는 그저 관객에게 거대한 슬픔을 전하고 '울리기 위해' 만들어지지만은 않았다.

    비수 같은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과시하는 못된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문도 모르고 잃은 남은 자들의 '치유'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픔을 어루만지고 나누고자 하는, '같이 살아내려고' 애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순남(전도연 분)은 아들 수호(윤찬영 분)를 세월호 참사로 잃고 딸 예솔(김보민 분)과 둘이 산다. 어떤 사정으로 그 큰일을 겪을 때 순남 곁에 없었던 남편 정일(설경구 분)이 돌아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순남은 돌아온 정일을 반기지 않는다. 집에 있으면서도 아무도 없는 척하고, 예솔과 함께 집안에 들어온 정일에게 조용히 이혼 서류를 내민다.

    떠난 아이들의 생일을 맞아 추억하는 자리를 만드는 '생일 모임'을 두고도 팽팽히 맞선다. 순남은 "그냥 싫어. 이유 없이 싫은 것도 있잖아!"라며 갈 테면 혼자 가라고 정일에게 말한다.

    '생일'은 너무 느리지 않게, 또 너무 빠르지 않게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가족과 이웃, 생존자와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이종언 감독의 사려 깊은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순남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외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인물이다. 수호의 졸업사진을 받고 싶어 잠시 엄마들 모임에 나갈 뿐, 매우 소극적이다.

    미수습자와 선체의 온전한 인양을 주장하며 서명운동을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음악을 켜고, 가슴은 무너지지만 슬픔에 잠기지 않으려고 애써 밝은 척하는 희생자 부모들에겐 "소풍 오셨어요?"라고 반문한다.

    전도연은 '생일'에서 세월호 참사로 아들 수호(윤찬영 분)를 잃은 엄마 순남 역을 맡았다. 오른쪽은 수호의 동생이자 순남의 딸 예솔 역을 맡은 김보민 (사진=NEW 제공)

     

    피해자에겐 한 치의 어긋남이라도 발견되면 '피해자답지 못하다'고 몰아붙인 사회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 가해자의 '가해자다움'은 틀지워지지 않았으나, 피해자는 슬픔을 드러내면 '유난 떨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고 진상규명 목소리를 내면 '순수한 유가족이 아니'라는 힐난에 직면했다.

    그런 의미에서 순남은 세월호 참사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기대하는 '피해자다운 피해자'는 아닐지 모른다. 수호는 죽었지만 일상은 계속되기 때문에, 그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무리에 끼지 않고 간신히 아픔을 누르고 산다.

    '알아서 적당히 조용히' 있지 않는다. 사무치는 슬픔이 밀려올 때 목 놓고 운다. 떠난 아이와 곁에 있는 아이에게 공평한 사랑을 주는 데도 힘들어한다. 수호에게는 철마다 새 옷을 사 주지만, 예솔은 언제나 뒤로 밀린다. 서운해하는 예솔에게 "오빠는 밥도 못 먹는데 반찬 투정을 해?"라고 소리친다. 이런 순남을 '민폐 이웃' 혹은 '나쁜 엄마'로 쉽게 규정할 수 있을까.

    '생일'에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하며 분노하게 만드는 절대 악인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거액을 받을 수 있다면 욕 먹는 거야 뭐가 대수냐고 하는 동료, 당연히 보상금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고 투자를 권유하는 친척 등 쉽게 흘리기 어려운 매정한 말을 던지는 이들을 등장시킨다.

    진상규명 활동에 함께한 사람, 하지 못한 사람, 피해자다운 피해자, 피해자답지 못한 피해자 등의 이분법을 넘어 우리가 미처 시선을 두지 못했던 부분까지 그저 묵묵히 보여준다.

    덕분에 관객들은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가 느끼는 소외감과 외로움, 사건을 직접 겪었음에도 그걸 굳이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조심스러운 마음,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과 미안함까지 다채로운 감정의 결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이종언 감독은 '치유공간 이웃'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해 유가족 곁을 지키면서 보고 들은 바를 꼼꼼하게 구현했다. 그러면서도 '눈물을 쏙 빼는' 것에만 몰두하지는 않았다. 얼마든지 더 '신파'로 갈 수 있었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끝없이 눈물이 흐른다면, 그건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라서 슬픔이 완전히 마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수호의 생일 모임을 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핵심이다. 생일 모임의 주인공이 수호 한 사람이 아니라, 수호를 기억하기 위해 모든 이들이라는 점을 보여주듯, 세월호 참사 역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와 떼 놓을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3일 개봉. 전체관람가.

    극중 수호의 생일 모임 장면 (사진=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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