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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대전

    도산 안창호 선생,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서리 겸 내무총장으로 활약할 당시의 도산 안창호 선생.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안창호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28일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도산(島山)안창호 선생은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칠리 봉상도(일명 도롱섬)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신학문을 3년간 수학한 이후 독립협회의 민권운동에 참여하면서 국가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국민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독립협회 해체 후에는 교육과 전교활동에 전념하며 본격적인 교육학 공부를 결심하게 됐고, 1902년 이혜련과 결혼한 다음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12년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에서 오렌지를 수확하는 안창호 선생.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안 선생은 한인들의 생활태도와 여건을 개선하고 한인친목회를 결성해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이 단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안 선생은 귀국후 대성학교를 설립하고 청년학우회를 조직하는 등 다방면의 민족운동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신민회 활동을 통해 국권회복을 전개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국내에서의 독립운동 전개가 어려워지자 1911년 미국으로 돌아와 활로를 모색했다.

    3․1운동 이후 수립된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서리 겸 내부총장으로 취임한 안 선생은 독립운동세력의 통일을 역설하며 임시정부의 체계를 세우고 임시정부 통합을 이끌었다.

    1932년 윤봉길 의거와 관련해 연행된 후 2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뒤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수감되며 지병 악화로 1938년 3월 10일 순국했다.

    정부는 민주주의적 민족국가의 수립을 위해 헌신한 안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1921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임시의정원 의원의 신년축하기념.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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