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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양호 경영권 박탈, '자본시장 촛불혁명'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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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조양호 경영권 박탈, '자본시장 촛불혁명' 인가

    [구성수 칼럼]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제57기 정기주주총회에서 한 참석자가 의사진행 발언을 요청하며 의장을 맡은 우기홍 대표이사에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자본시장에서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27일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을 부결 처리했다.

    연임안은 64.1%의 찬성을 얻었지만 사내이사 선임 요건(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을 충족하지 못했다.

    그룹 총수가 적대적 M&A(인수합병)나 승계분쟁 없이 주주의 손에 의해 물러나게 된 것은 처음이다.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CEO(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한항공 경영권을 잃게 됐다.

    연임안은 마지막까지 치열한 표 대결 끝에 부결됐지만 결과는 2대 주주인 국민연금(11.56%)이 전날 수탁자 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에서 반대 의결권 행사 결정을 내리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다.

    이미 ISS 등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과 플로리다연금 등 외국인 투자자 3곳이 반대 의사를 표명한 데이어 국민연금까지 나섰기 때문이다.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주총 결과는 캐스팅 보트를 쥔 외국인 투자자와 소액주주들 상당수가 이들의 반대주장에 동조했음을 보여준다.

    국민이 주인인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쳐 조 회장의 연임을 저지한 셈이다.

    일각의 '자본시장의 촛불혁명'이라는 평가는 일리가 있다.

    조 회장이 경영권을 박탈당한 것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

    조 회장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대한항공 납품업체로부터 196억 원의 중개수수료(통행료)를 챙기는 등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이다.

    수백억 원의 횡령·배임 혐의로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권을 훼손한 사람에게 어떻게 회사 경영을 계속 맡길 수 있느냐는 것이 국민연금 수탁위의 판단이었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조 회장 일가의 잇따른 갑질 논란이었다.

    부인과 세 자녀가 2015년 땅콩회항 사건을 비롯해 물컵·물벼락 갑질 사건, 폭언·폭행 사건을 잇따라 불러일으키면서 회사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다.

    이것은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주주들이 들고 나서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황진환 기자)

     

    국민연금 결정 전에 이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한 목소리로 조 회장의 연임안에 반대하고 나선 것은 시장이 돌아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 연임안 부결 소식에 대한항공 주가가 크게 오른 것(종가 2.78% 상승)은 부결이 이러한 시장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연금의 결정은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당연한 것이지만 평가할 만하다.

    국민연금은 이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

    2015년 시장의 요구와는 반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잘못된 합병비율에 찬성함으로써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큰 손실을 입었고 이 합병은 이후 계속 문제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국민연금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때문이다.

    이로써 주인의 자산을 맡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가 주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 기울이는 것처럼 국민연금이 돈을 맡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재계는 크게 긴장할 수밖에 없다.

    상당수의 대기업에서 국민연금은 제2, 3의 대주주이다.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상장 기업이 약 300개,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도 90여개에 이르고 있다.

    이들 대기업에서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한다면 제2, 제3의 조양호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다음 타겟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은 횡령·배임으로 재판 중이고 2심에서 일부 유죄가 인정된 만큼 국민연금이 다음 주총 때 이재용 부회장의 연임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재계는 이미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연금사회주의로 가게 된다며 크게 우려하는 입장이다.

    그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몫이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조직과 결정과정에서 정치색을 빼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취지처럼 국민의 이익을 높이는데만 주안점을 두고 결정한다면 그에 대한 우려는 점차 사라지고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무럭무럭 자라게 될 것이다.

    이것은 국민의 노후생활 안정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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